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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19. 2021

너와 내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동생이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에는 꽤 큰 사고이다. 30여 년 넘게 집안에서 트러블 메이커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동생.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동생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내 앞에 분노한 엄마와 하염없이 우는 올케가 앉아 있다. 엄마의 큰소리보다 올케의 눈물이 더 무섭다. 이제 고작 서른. 나는 서른 살에 무척 철 없이 지냈던 거 같은데, 올케는 제 몸보다 더 큰 불행을 짊어지고 있다. 우는 올케의 어깨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동생은 벌써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었다. 집에서 누나를 제일 무서워하는 녀석인데, 내가 온다니 얼마나 겁났을까.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고 연약한 엄마 대신 나는 매서운 악역을 도맡아왔다. 이번에도 나는 악역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했다. 냉정함보다 감정이 더 앞서는 엄마, 감정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올케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에게는 무시무시할 법한 이야기들을 차갑게 전했다. 동생이 가장 싫어하는 우리 집안의 어떤 친척 얘기였다. 너는 네가 가장 싫어하며 경멸하는 그의 노후를 닮아가고 있다고. 결국 너도 그렇게 곁에 아무도 없이 외롭게 늙어가게 될 거라고.


곧 쓰러질 듯 분노에 싸인 엄마가 진정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 드리고, 울음을 멈추지 않는 올케에게 그저 미안하다 사과했다. 뭔 소리가 필요하겠는가. 그냥 그 아이가 내 동생이라…. 그냥 내 피붙이의 잘못이 꼭 내 잘못 같아서 올케에게 다 미안했다.


전쟁터 같은 친정을 뒤로하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혼자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쳤다. 펑펑 내리는 눈으로 점점 시야가 가려졌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것이 꼭 내 삶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하나의 불행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음이 쓸린 듯 생채기로 아팠다. 이 생채기에 살이 차오르면 또 다른 불행이 다시금 찾아오겠지.


동생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동생에게 누나란 존재는 평생 동안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산 모범생이었다. 누나를 무서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던 나의 동생. 동생에게 정말 하고 싶던 이야기는 누나도 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누나는 다만 너 같은 실천력과 의지가 없었을 뿐. 사람은 그저 연약한 존재라고. 누나도 나쁜 마음먹었을 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사실은 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동생을 이해한다 말해주면 계속 정신을 못 차리게 될까 봐 차마 전하지 못했다.


아픈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이면 아무렇지 않게 나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고, 업무를 결재 맡아야 할 것이다. 그게 어른의 삶이니까. 하루만큼의 아픔을 견뎌내며 내 앞에 놓인 일들을 어른스럽게 해내야 할 것이다.


괜찮다 싶다가도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내 가족들의 삶. 그들의 삶이 나는 너무나 아프다. 이 아픔은 또 다시 누군가를 이해하는 통로가 되겠지. 그 사실을 소중히 손에 꼭 쥐며 또 하루를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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