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Dec 25. 2021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

# Happy birthday, Jesus


오늘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의 생일이다. 20대 때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무조건 특별하고 화려하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크리스마스의 진짜 주인공이 빠진 크리스마스 문화에 내가 너무 들뜨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그때부터 크리스마스가 오면 진짜 주인공인 예수님에 대해 묵상하게 된다.


올해는 스스로의 부족함과 바닥을 많이 느낀 한 해였다. 스스로가 못나 보일 때마다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면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뻗으셨던 예수님.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는데, 누가 너를 정죄하냐고 되묻던 주님. 내 스스로 나를 비난할 때마다 기도하고 나면 예수님이 나를 꼭 감싸주시는 느낌이었다.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신 날. 나 또한 예수님처럼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더 눈이 머무는 사람이 되자 다짐해본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이 되어 보자고.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한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어 참 감사하다. 부족함은 축복이란 말의 의미를 천천히 되뇌어 보는 날이다.




# 복잡하고 미묘한


업무가 있어 행정실에 들렀다가 실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와하하 웃어 버렸다.


"OOO 선생님은 청순가련한 스타일 같아요."

"처.... 청순가련이요?"


아마도 내 가족과 친구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얼마나 배를 잡고 웃었을지. 우리 집안에서 나의 별명은 '철의 여인'이라는 걸 실장님은 알고 계실까. 한 해동안 함께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장님께 켜켜이 오해를 쌓고 있었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순가련하다는 말의 어감이 예뻐서 기분이 좋은 오후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의지가 강하고 야무진 성격이라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있으나 사실 나는 혼자 있을 때 좀 자주 우는 울보이다. 주로 내가 울 때는 슬플 때보다 감동받을 때인데, 좋아하는 책에서 마음이 일렁이는 대목을 만났을 때, 음악을 듣다가 감정이 벅차오를 때 우는 편이다. 남들을 당황시키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눈물을 꾹꾹 참는 편이어서 울보라는 걸 아직 들키진 않은 것 같지만.


때론 나는 상반된 평가를 듣기도 한다.


"OOO선생님은 일을 꼼꼼하게 참 잘하네요."

"OOO선생님은 참 은근히 허당이야, 그렇지?"


불과 며칠 간격을 두고 후배와 선배님께 들은 말이다. 재밌게도 둘 다 나와 어울리는 말이라 생각이 든다. 나는 중요한 일에는 매우 긴장하며 한 번, 두 번, 세 번 스스로 검토를 하면서 철두철미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내 정신력을 보호하기 위해 중요치 않은 일이라 생각이 들면 안테나를 꺼두고 설렁설렁 일을 하곤 한다. 구멍이 나면 누군가 눈치채고 이야기해주겠지 하면서 말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 '고르고 고른 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다차원의 부산물이고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존재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그 고차원의 존재가 명랑, 행복, 대범 같은 단어 한두 개로 규정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을 인식할 때는 어떤가. 나를 대할 때의 풍부한 사유와 도량은 남 앞에서 인색해진다. 타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납작하고 또 납작하다. 인간이라는 다층적인 존재는 '나'라는 필터를 거쳐 삽시간에 밋밋해진다.....(중략)..... 나를 설명할 때는 많은 서사를 끌고 들어와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타인은 게으르게 헤아린다. 현상만 보고 가볍게 판단하고, 손쉽게 재단한다.  - 홍인혜, '고르고 고른 말' 중에서 -


나에 대한 평가를 자주 듣지만, 그런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흔들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얽매이기에는 복잡 미묘한 존재니까. 내향적이지만 외향적이며, 한 없이 여리지만 한 없이 강한 나라는 복잡한 존재를 단어 하나에 묶어두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사람 또한 나의 말로 함부로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그에 대해 꼭 참을 수 없이 말하고 싶은 면이 있다면 정말 좋은 부분을 고운 단어로 말해주자 마음먹는다.


청순가련할 때도 있으며, 일을 꼼꼼하게 잘할 때도 있지만, 어쩐지 허당인 내가 좋다. 어느 단어 하나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라서 참 좋다.



# 영혼에도 생김새가 있다면


퇴근할 무렵 소연 선생님을 마주쳤는데,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깜짝 놀랐다. 왜인지 여쭈어 보니 올해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나기로 한 어떤 선생님 때문이라 하셨다. 헤어짐에 대해서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는 소연 선생님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사실 그 이야기를 먼저 들었던 나는 '음, 학교를 떠나시는군.' 정도의 생각만 했다. 내가 너무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그분을 대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연 선생님을 보며 신규교사로 학교에 부임했던 첫 해 여름이 떠올랐다. 힘들게 일하고 맞는 방학이라 무척 반가웠지만 몇 주가 지나고 이내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애달퍼하던 스스로에 어이가 없었다. 그때 아마도 나는 아이들에게 내 모든 정을 겁 없이 줬던 것 같다.


마치 그때의 나처럼 겁 없이 정을 주고 그 정 때문에 힘들어하는 소연 선생님을 보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찡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정 주는 걸 겁내기 시작한 것이. 결국 연말이 되면 헤어지고 아파할 걸 알기에 나는 누군가에게 정을 주는 일을 무척 두려워했고, 그런 태도들이 지금의 무미건조함을 만든 건 아닐까 싶었다.


영혼에도 생김새가 있다면 소연 선생님의 영혼은 분명 예쁜 모습일 거 같다. 정 주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소연 선생님이 참 부럽다. 부러우면서도 따라 하기가 겁이 난다. 얼마나 아픈지를 경험해봤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만나는 새로운 동료들과 겁 없이 친해져 볼까 한 번 고민해보는 나이다.




# 내가 나를 낳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 퍼즐 맞추자!"라며 달려오는 호두. 아직 복잡한 퍼즐은 어려운 4살이라 퍼즐 맞추기는  나의 노동이 된다. 옆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는 호두는 내가 70% 정도 맞추었을  마치 처음부터 본인이 맞추고 있었던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잡는다. 마지막 하나의 퍼즐만이 남은 순간. 퍼즐 맞추기의 묘미는 바로  순간이란 사실을 호두도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그것이 호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에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호두가 퍼즐 조각을 나에게 내민다.


"엄마가 맞춰봐."


아..... 얘는 정말 너무나 나 같구나. 호두를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자신이 즐거울 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즐거운 모습을 볼 때 더 즐거운 사람이다. 나로 인해 누군가 웃을 때 더 진한 행복을 느낀다. 호두는 아마도 그래서 내게 퍼즐 조각을 양보했던 것 같다. 자기가 퍼즐을 완성할 때 행복했듯 엄마도 행복할 거라 믿으며.


나를 너무도 닮은 호두를 보면 기쁨보다 왠지 모를 서글픔이 든다. 호두의 엄마로서 호두가 좀 더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개인주의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아마도 모든 엄마가 비슷한 마음일 것만 같다. 자신보다는 나은 삶을 자식이 살아가길. 그런데 호두는 엄마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꼭 내가 나를 낳은 기분이 든다.


한 가지 희망은 호두가 어른이 되면 내 삶을 좀 더 많이 이해해줄 거란 생각이 든다. 호두는 나를 꼭 닮았으니 내가 했던 여러 실수와 부족함들이 왜 그랬었는지 알아줄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나를 닮은 다정한 친구를 한 명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심으로 호두의 삶이 나보다 낫길 바란다. 아마도 나는 그렇게 되도록 호두를 키우는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호두가 엄마와 같은 선택을 한다 해도 그 선택 또한 응원해주어야겠다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호두 마음이 편하면 되는 거다.




# 가장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오셨다. 나에게 갖다 주어야 할 것이 있어 급히 오셨기에 깜짝 방문이다. 잠깐 놀러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이는 족족 집안일을 마다하지 않는 엄마. 빨래를 개며 나에게 신상 '양말 개는 방법'을 전파한다.


"이렇게, 이렇게 개면 양말이 늘어나지가 않는대. 어때? 괜찮지?"


딱지 접듯 요리조리 양말을 접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마치 엄청난 비법을 알려주듯 뽐내는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어 괜스레 귀찮은 마음을 뒤로하고 함께 양말을 접어 본다.


심란했던 마음도 엄마를 보면 차분해진다. 엄마가 오면 공기가 달라진다. 그곳이 어디든 고향 같은 진한 그리움이 서린다. 엄마가 만진 물건들, 엄마가 지나간 흔적들은 모두 정겹다. 엄마는 마치 걸어 다니는 고향 같다.


엄마의 방문은 그 어느 것보다 기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엄마는 아실까? 쑥스럽지만 이 마음을 메시지로 전해보아야겠다 생각이 든다.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엄마는 정말 기뻐하실 거 같다.  



# 진심이 만나는 순간


내가 맡은 업무 중 하나가 '교사 연수'이다. 한 해 동안 선생님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드리고 싶어 참 많이 노력했다. 주로 예술적인 경험을 많이 시켜드리고 싶어 문학,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연수를 준비했다.


며칠 전 이번 올해의 마지막 연수가 있었다. 내가 참 재밌고 의미 있게 읽었던 '어린이라는 세계'를 주제로 함께 독서 나눔을 했다. 작은 학교라 선생님들께서 모두 바쁘셔서 도서를 사드려도 완독률이 적어 독서 나눔이 매번 참 어려웠다. 그래서 책을 조금이라도 읽고 의견을 나누시는 분께 커피 쿠폰을 드리기도 했다. 이번에는 마지막이라 좀 특별한 공약을 세우고 싶어 고민했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주시는 분께 제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드리겠습니다!"


별 거 아니지만 정성껏 쓸 거라 의외로 받으면 기분 좋을 수도 있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뒤 독서 나눔 연수를 하는데, 생각보다 여러 선생님께서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어 주셔서 기뻤다. 완독 해주신 분도 두 분이나 되었다. 그때 한 나이 드신 선배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 카드 받으려고 열심히 완독 했어요!"


그 말을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려는 작은 선물에 온 힘으로 응답해준 그 마음이 예뻐서 마음이 일렁였다. 퇴근하는 길에 카페에 들러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카드를 썼다. 이내 마음이 행복해졌다.


학교에서 업무를 하다 보면 차갑고 무미건조한 마음들과 부딪혀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사회생활이란 원래 이런 것이지 하며 모든 기대를 접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가끔씩 만나는 이런 진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하나의 업무에 정성을 다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누군가와 진심이 마주치는 순간을 참 좋아한다. 업무를 하면서 그런 순간을 만날 수 있어 왠지 감사한 날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와 내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