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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08. 2022

우아하게 일하기

# 우아하게 일하기


여기저기에서 팡팡 터지던 수많은 업무들이 꼭 꿈같다. 정신없는 연말과 연초를 보내고 드디어 방학을 맞이했다. 교사에게 방학 전이란 시기는 많은 업무를 제시간에 마무리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의 시기이다. 그걸 잘 알면서도 막상 그 시기가 되면 몸과 마음이 너무 소란해져서 감당하기가 힘들다.


참 신기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중대했던 일, 나에게 압박감을 주었던 일들이 며칠 지나니 왜 그리 별 거 아닌 일들처럼 보일까? 모든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꼭 어린애들 소꿉장난 같이 시덥지 않게 느껴진다.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면 마법처럼 모든 것이 힘을 잃는 것일까? 그래서 그날 하루의 걱정은 그날에만 족하다는 말이 있는 걸까?


오랜만의 복직이라 정처 없이 업무 사이에서 표류했던 한 해를 보냈다. 많은 업무 속에서도 평온함을 잃지 않던 교무부장님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지금의 부장님은 아마도 내가 이제까지 보았던 모든 교무부장님 중 가장 우아하게 업무를 처리하시는 분 같다. 한 번도 업무에 찌든 표정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매번 교무부장님께 어떻게 그렇게 우아함을 잃지 않으시는지 자주 여쭤보지만, 부장님의 대답은 늘 신선하지 않다. 어쩌면 그게 너무나 당연한 정답이기에 신선하지 않은 걸까.


"그냥 일이 닥쳐오면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받아들여. 너무 잘하려 하진 않아. 주말에는 신나게 놀면서 잊어버리기도 하고."


올해 나는 좀 엉뚱한 목표를 세웠다. '일을 잘하자.'가 아니라 '일을 우아하게 하자.'로. 제시간에 내 업무를 문제없을 정도로 처리하되 마음의 고요함을 잃지 않을 것. 쉽지 않은 목표이다. 나는 내 곁에 온 모든 사람을 만난 이유가 다 있다고 믿는 사람인데, 아마도 교무부장님을 만나게 된 이유가 이런 업무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 년 동안 곁에서 배운 것을 이제 하나씩 시도해봐야겠다.


이왕 일을 해야 한다면 일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일이란 녀석의 고삐를 잘 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이 휘몰아칠 때면 생각보다 별일 아닐 거라며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독이는 담대한 사람이었으면 한다. 이제 복직 2년 차이니 올해는 조금 일이란 녀석을 요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나의 우상


성경에서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그렇게 따지면 나는 우상이 많다. 어쩌면 산다는 건 평생 내 안의 우상을 하나씩 버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나의 우상에 대한 정리 작업을 잘 마치면, 다른 우상이 찾아온다. 내 마음에 드는 바람들, 욕심들. 산다는 건 왜 이다지도 많은 바람과 욕심들로 점철되는 것일까. 나는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생각하며 살고 싶은데, 세상은 내 마음을 끝없이 흔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눈 뜨면 제일 먼저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만 사랑하게 해 주세요." 여린 풀 같이 매일 흔들리는 나이지만, 그 기도에 기대어 또 하루를 살아본다.




# 견고한 취미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취미가 있다면 독서이다. 아무리 나를 소란하게 하는 일이 있어도 책을 잡는 그 순간만큼은 고요함 속에 취할 수 있었다. 책은 나에게 현실을 잊게 하는 술 같은 존재였고, 다른 세계로 잡아끄는 여행 같은 존재였다. 우울한 날에도 난 책을 읽었고, 기쁜 날에도 책을 읽었다. 외로울 때도 책을 읽으며 나의 오랜 친구의 존재에 새삼 감사해하며 지냈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해 자주 태연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친구가 항상 똑같은 자리에서 내 곁을 든든히 채워주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내가 새롭게 좋아하는 일은 바쁜 틈새 속에서 잠시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고 오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책과 나만 만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주어진 시간이 30분밖에 없어도 과감하게 카페에 들어가 잠시라도 책을 읽고 나오면 마음이 금세 행복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며칠 전 영은 선생님과 이야기하다 취미가 없다는 영은 선생님의 말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때 잠시 상상을 해봤다. "내 삶에 독서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마치 내 삶의 동반자가 없어진 황망함이 순간 느껴졌다. 독서라는 건 이제 취미를 넘어서서 내 삶에 너무나 깊게 스며진 존재가 된 것 같다. 아무리 중독된다 해도 내게 무해한.... 참 고마운 존재이다.


견고한 취미가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지를 생각한다. 언제라도 펼치면 바로 즐거워지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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