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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Feb 28. 2022

고작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무척 암울했다. 아버지의 불안정한 직업으로 인하여 4번이나 전학을 다녔다. 1,2년마다 학교를 바꾼 꼴인데, 가뜩이나 내성적인 내게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의 추억은 대부분 잊었거나 남아 있다 해도 빛바래고 희뿌옇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유독 선명하게 남는 장면이 있다.


5학년, 3번째 전학. 경계심과 호기심이 섞인 아이들의 눈빛은 매번 당할 때마다 생경했다.  학교에서는 얼마나 정을 붙일  있을까, 이제 전학은 끝이려나. 복잡한 생각으로 3월을 시작했 같다.


나는 또래보다 좀 어렸다. 11월생이기도 했고 워낙 과잉보호를 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지라 아기 같았다. 순진과 순수의 그 어디쯤이었다. 생각도 늦게 트이는 편이었다. 그 당시 나와 놀아준 아이들은 우리 반에서도 2차 성징이 좀 빨리 일어나는 언니 같은 아이들이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아이들과 수다를 떨 때면 나는 가끔 엄마가 방문을 열고 기습적으로 들어오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다. 언니 같은 아이들이 하는 남녀의 연애 이야기는 마치 금기시되는 말을 듣는 듯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서로 어떤 남자아이를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사춘기도 오기 전이라 이성에 대해 생각이 없어 좋아하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 아이는 ‘진웅’이었다. 잘생기고 축구도 잘하며 반장인 진웅이는 우리 반의 소위 ‘인기 있는 남자애’였다.


그때 당시 나는 진웅이의 짝이었다. 나는 그 애와 짝을 하며 차마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계절은 여름. 점심시간마다 축구를 하고 오는 진웅이는 땀냄새를 잔뜩 몸에 밴 채 자리에 앉았고, 나는 5교시 내내 땀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져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얼른 짝이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이들이랑 이야기하며 그런 진웅이와 앉고 싶은 아이가 무척 많다는 것에 놀라웠다.


발렌타인데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같이 나누어 먹으려 초콜릿을 사갔는데, 현관에서 진웅이를 만났다.


“너 이거 누구 주려는 거야?”


내성적이라 친하지 않은 아이들과는 데면데면한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진웅이가 갑자기 초콜릿을 낚아채어 도망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황당했지만, 그마저도 쫓아갈 용기가 없어 발길을 돌렸다.


집에 있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몰려왔다.


“야, 진웅이가 남자애들한테 자기가 누구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했대! 근데 그게 너래!”


나를, 왜? 기분이 좋은 것보다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나는 눈에 띄는 아이도 아니었고 어디 한구석에서 책이나 읽는 아이였다. 정말 친한 친구들과 조용히 속닥거리는 게 전부인 나의 어떤 면을 좋아하는 걸까?


그날 발렌타인데이는 정월대보름과 겹치는 날이었다.


“남자아이들이 갑천(당시 내가 살던 지역의 가까운 하천)에서 쥐불놀이할 거래. 진웅이도 온다니까 한 번 가볼래?”


친구들은 본인들 일 마냥 들떠있었다. 얼떨떨했지만 친구들을 따라나섰다. 겁도 없이 불을 만지며 노는 아이들 사이에 진웅이가 있었다. 진웅이는 어정쩡 서있는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내 손에 불을 쥐어주며 어떻게 돌리는 건지를 한참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불을 무서워해서 설명을 듣고도 전혀 돌리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진웅이는 열심히 불을 돌리며 주황 동그라미를 만들어주었다.


진지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 진웅이가 때때로 짖궂은 장난을 나에게 칠 때마다 내 속에 가득 들었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진웅이는 그렇게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곤 하던 진웅이. 진웅이의 눈빛은 항상 경계의 눈빛을 감당하며 살아가던 내가 처음으로 느낀 호감의 눈빛이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좋아해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고마웠다. 암울했던 시기에 예쁜 추억을 만들어줘서. 아이들 사이에 잘 드러나지 않던 나란 사람을 발견해줘서.


이주일 뒤 나는 4번째 학교로 떠났고, 고작 1년 있던 학교였기에 그 학교의 모든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인연이 끊어졌다. 진웅이의 소식은 그 이후로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마 알 수 있었다 해도 굳이 진웅이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을 거 같다. 내 머릿속에 남은 어린 소년의 모습인 진웅이를 그대로 남겨두고 싶어서이다.


그때 나는 사랑이 뭔지 몰랐다. 진웅이에게 내가 느낀 감정은 아마도 ‘고마움’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고마움이 힘든 시간들을 아름답게 잘 덮어주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며 피식 웃을 수 있는 추억 하나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삶은 소유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추억으로 채워지는 것. 나의 5학년 삶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채워준 12살 소년에게 진심으로 고마워진다. 나 또한 하루하루 누군가의 삶을 아름답게 채워주는 사람이

되자 생각해본다. 우리가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그것뿐이다. 그리고 고작 그것은 삶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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