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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pr 12. 2022

내가 좋으면 된 거다

'하나님도 날 안쓰러워하실 거다.'


새벽 2시 50분. 한 문장의 일기를 남기고 잠이 들었다.


내 속에 잠잠히 가라앉고 있는 슬픔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책을 읽다 오랫동안 잠을 못 이루고 서성이던 새벽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 탓일까. 평상시에는 잘 버텨왔던 여러 문제들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 터져 나와서 내 마음을 마구 흔들었다.


슬플 때는 철저히 자신을 고립시키곤 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슬픔에 대해 자세히 말한다는 건 내게 꽤 어색한 일이다. 한참 지나서 아무렇지 않아 졌을 때라면 모를까. 아직 생채기가 아린 상태에서는 한 마디만 툭 내뱉어도 금세 눈물이 터져 버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마음이 슬픈 새벽은 칠흑 같은 어둠이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내일도 이런 슬픔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골똘히 나의 슬픔을 응시하는 일. 어떤 순간에도 나와 함께 해주는 책 속 언어들을 붙잡는 일. 그때 내 마음속에 불쑥 떠오른 한 문장. 어쩌면 하나님도 나를 무척 안쓰러워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에 기대어 겨우 잠이 들었다.


변함없이 아침은 다시 찾아왔다. 어제보다 더 아파진 목을 느끼며 나는 류시화의 시집을 미음처럼 떠먹었다. 밥보다 시가 더 고픈 아침이었다.


나는 기도한다.

"고마워요,

빛을 다 쓴 반딧불이처럼 부서진 나를

온전히 빛나게 해 줘서."

신이 말한다.

"너는 부서진 적 없어.

언제나 온전한 반딧불이였어."

- 류시화, <이보다 더 큰 위안이 있을까> 중에서


시를 읽고 한참을 먹먹한 마음으로 있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져버린 것 같은 내 마음을 보며 그 모습 그대로 너는 온전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어떤 순간에도 너는 너이고, 너의 영혼은 여전히 빛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 슬픔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의 영혼을 이토록 지치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수많은 이유 너머의 이유를 생각해본다. 그 어떤 문제가 나를 괴롭게 한다 해도 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지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소리들 속에서도 나는 나의 고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시 하나로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나는 내가 시라는, 어쩌면 아무 값어치도 없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마음이 나아지는 사람이란 사실이 참 좋았다.


누가 뭐래도 내가 좋으면 된 거다.







https://youtu.be/AiJ7CXPd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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