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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y 13. 2022

You first

정신적으로 막다른 길목에 다다랐다는 판단이 들 때 꼭 떠올리게 되는 문장이 있다.


마스크가 내려오면 노약자와 유아를 동반한 승객은 본인 먼저 착용해주세요.’


맨 처음 이 비행기 안전 수칙을 들었을 때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맞는 말이었다. 일단 내가 살아야 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니까.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조언을 하면서 이 비행기 수칙을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정작 내 생활에는 적용도 못하면서 말이다. 내 스스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일을 입만 살아서 잘도 말하곤 했다.


며칠 전 나는 퇴근 무렵 너무 지쳐버렸다. 원래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며 내 상태쯤이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기 일쑤였는데, 그날은 왜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릴 아이에게는 미안했지만, 이 마음으로는 아이에게 웃어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학교에서, 쌓인 업무도 외면한 채 음악을 틀고 멍하니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그저 모든 게 멈춰버린 것 같은 그 시간과 공간에 있는 것이 좋았다. 쏜살같이 내달리는 시간의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비밀 공간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나를 규정하는 수많은 역할에서 빠져나와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그 시간이 위로가 되었다.


1시간 정도 그렇게 가만히 음악을 듣다가 퇴근했다. 별 거 없이 싱거운 시간이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스스로의 감정을 보살피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었다. 퇴근 이후 저녁 내내 꽤 기분 좋게 지냈다.


You first.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린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 나의 정서적 산소마스크는 중요하다. 나의 정신 건강을 지켜줄 산소마스크들이 필요하다. 어떤 것들이 나를 채워줄지 내 스스로에 대해 좀 더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소중한만큼 더욱더.


올해 내가 찾아본 방법은 이렇다. 책에서 마음을 흔드는 문장 찾기, 음악 듣기, 커피 마시며 생각에 잠기기, 스스로에게 꽃을 선물하기.


나의 산소마스크 리스트들을 하나씩 채워가며, 지금의 퍽퍽한 일상을 조금은 말랑하게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늘 실수투성이지만, 씩씩하게 또 하루를 살아온 내 마음을 어루만져본다. 매일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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