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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n 26. 2022

예정된 불행, 만들어 갈 행복

원치 않는 캠핑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캠핑에 꽂혀버린 남편의 불도저식 일 추진에 말려든 것이다. 요즘 캠핑이 유행이라 혼자 캠핑을 즐기는 여자들도 많다는데, 나는 정반대의 유형이란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어릴 적 캠핑이 어렵던 시절, 아빠가 자식들을 위해 추억을 만들어 준다며 열심히 노지 캠핑을 데리고 다니셨다. 아빠의 열정과 자식 사랑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그저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오랜 노지 캠핑 생활로 캠핑에 학을 떼 버렸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캠핑을 시작해야 한다니……!


나의 지인들은 위로를 하며, 요즘 캠핑은 워낙 발달해서 예전 노지 캠핑과 다르다 한다. 나는 발달을 떠나 그저 꿉꿉하고 진득한 바깥의 공기 속에서 잠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우울할 뿐인데 말이다. 캠핑을 시작하기 전부터 시작된 우리의 갈등은 한 번 꽂히면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그의 열정으로 인해 해결되지 않았다. 내가 포기하든, 그가 포기하든 둘 중의 하나여야 했으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결코 이 불꽃이 사그라들 수 없음을. 사그라들기까지 얼마나 지난한 싸움으로 내가 피폐해져야 하는지를.


남편은 내게 이기적인 엄마라 했다. 대부분의 엄마가 아이의 행복을 위해 캠핑을 기꺼이 시작한다 했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엄마인 것일까. 슬퍼졌다. 나를 내려놓는 게 호두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인가.


이야기를 들은 정신과 의사 혜성 언니의 말은 그 와중에 나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네가 깊은 사람이라 그래. 그래서 살기 어려운 거야.”


내 자신을 내려놓기에 나의 세계는 너무 깊고 푸르다. 난 호두의 엄마이기 전에 그저 나일뿐이다. 내가 나로서 행복할 때 호두도 행복할 것이다.


이 갈등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그가 캠핑을 내려놓기까지. 내가 나를 내려놓기까지. 아이에게 언제까지 갈등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일 수도 없다.


오늘 내게 주어진 잠깐의 쉬는 시간 동안 좋아하는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강아솔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이슬아의 책을 읽었다. 잔잔한 물결이 나를 감싸안는 기분이다. 당분간 주어질 피로 앞에서 나는 나를 이렇게나마 보호한다.


좋은 엄마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나의 길을 가고 싶다. 잠깐의 시간만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지 않으며, 아직은 팔딱팔딱 생생하게 살아있는 등 푸른 고등어 같은 내 자아에 산소마스크를 끼워주며……. 그렇게 빗소리인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아는 가장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다.


글을 쓰다 눈물이 핑 돈다. 울 일이 많은 요즘이다. 당분간 예정된 불행 앞에 작은 행복을 만든다.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도 연습이 많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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