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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03. 2022

나를 감싸 안는 포기

과자 봉지를 뜯을 때 가위를 쓰기 시작했다.

# 나를 감싸안는 포기



예전부터 난 포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매일 수없이 겪어야 하는 도전의 순간 속에서 체력과 정신력이 다할 때까지 도전했다. 결국 끝까지 해봤자 실패하는 일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미련이 없을 때까지 도전해봤으니까. 끝까지 해보며 실패하는 태도는 다음 날의 내가 다른 도전을 해야 할 때 꽤나 유용했다. 내가 삶에서 이룩했던 많은 것들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들로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자봉지를 뜯는 작은 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려 노력했다. 부족한 악력에도 불구하고 손이 좀 아파도 끝까지 뜯어보려 시도했다. 사소한 일이라도 혼자의 힘으로 잘 해내고 싶었다. 험한 세상을 살려면 혼자의 삶을 스스로 빼곡히 채울 수 있어야 하기에. 가족과 친구들이 있지만, 나는 항상 혼자만의 삶을 준비했다. 언제든 혼자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41살의 나이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채 혼자가 된 엄마의 삶이 그런 생각을 만든 것 같다.


과자봉지 뜯는 것조차 진심인 내가 최근 가위를 쓰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악력을 부려보지만, 적당한 순간에 깨끗이 포기하고 가위를 든다. 안 그래도 힘든 삶, 이런 것에 너무 애쓰지 말자 생각해버린다. 편안하게 가위로 자르고 과자를 먹는 순간, 안도감이 든다. 너무 애쓸 필요는 없었어. 고생했어, 그동안.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해본다.


그동안 싫게만 느껴졌던 포기라는 단어가 요새 친밀하게 느껴진다. 끝까지 도전하는 삶보다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는 삶이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끝까지 도전하며 모든 것을 소진해버리는 삶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버린 걸까. 적당히 포기하고 내가 가진 소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눈치챈 걸까.


하루에도 수많은 상처의 순간들이 지나간다. 이제는 상처를 딛고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는 것보다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어루만져주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포기가 나를 감싸 안는다.





# 관계의 정원


난 내 삶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최선의 존중을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드는 찰나의 순간에 만나는 이라도 예의를 지키려 한다. 귀찮은 일이지만, 예의를 다하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내 기본 태도 자체를 그리 만든다. 그러다 보면 의식하지 않고도 누군가를 향한 존중이 자연스레 배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는 말들이 그 사람의 귀에 부드러운 실크 같이 마음을 감싸안는 말이 되길. 봄날의 미풍처럼 왠지 잠시나마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남길. 문을 열어주는 작은 배려에 그날 하루의 시작이 상쾌해지길. 작은 마음을 담아 말과 행동으로 존중을 전해 본다.


학교에서 나를 만나는 모든 이에게 존중을 담는다. 때론 그 존중은 무례함이란 예상치 못한 답장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무례함에 다시 예상치 못한 존중으로 답을 보낸다. 그 사람에게 전한 존중은 그 사람을 향했다기보다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내가 소중하다. 누군가를 존중하는 것은 내가 소중하기에 나를 둘러싼 환경들을 아름답게 매만지는 일 중 하나일 뿐이다. 마치 나의 정원을 가꾸듯.


요즘 내 업무가 복잡해지다 보니 수많은 인간관계의 실타래 한가운데에 있을 때가 많다. 그 관계 속에서 머리 아파질 때가 많지만 한 가지만 잊지 말자 다짐한다. 누가 나에게 어떻게 대하든 나는 사람들을 향한 존중을 놓지 않기로. 그 존중은 그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기로. 그렇기에 너무 그들의 행동을 마음에 담아 두지 말자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내 관계의 정원이 아름다워지도록 꽃삽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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