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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r 26. 2019

동굴 속의 엄마

"답답하지 않아?"

오후에 친구가 통화를 하다 묻는 말에 답답하지 않다 답했습니다. 답답해서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말입니다.


친구가 말한 답답함과 저의 답답함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친구의 답답함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답답함을 의미했고, 나의 답답함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답답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아는 이런 상반된 이야기가 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해 답답할 수도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아기와 언제나 함께여서 외롭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른의 대화를 나누고 싶고, 아기와 언제나 함께이기에 혼자의 시간이 절실합니다.


아마도 외향성, 내향성의 성향 차이 때문이겠지요. 사람을 만날 때 에너지가 채워지는 사람이 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에너지가 채워지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는 완벽한 후자인지라 아기와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도 늘 혼자만의 시간을 갈구했습니다. 혼자서 사색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런 시간이 제게는 영혼을 살찌우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난 1년의 육아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기를 재우고, 집안일을 모두 끝내면 10시, 11시일 때가 부지기수였지만, 단 1시간이라도 온전히 나로 존재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 시간이 아까워 자꾸만 자는 것을 미루다보니 새벽 2시나 되어야 잠들 때도 참 많았습니다.


보통 남자에게 동굴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남자들 중 많은 수가 동굴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자들도 동굴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와 남편은 각자의 동굴이 필요한 사람이기에 서로의 동굴에 들어가있을 때는 암묵적으로 건들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동굴을 사랑하는 저이기에 남편의 동굴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동굴은 참 애매한 존재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아이가 동굴보다 좀 더 세상으로 발돋움하며 컸으면 좋겠는데, 고작 1년 밖에 안 키웠지만, 이미 동굴인의 냄새가 나는 저희 아기네요. 동굴인과 동굴인이 만나 동굴인을 낳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텐데, 부모의 욕심이란!


저를 만나는 사람은 제가 내향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의 저는 외향적인 사람에 가까우니 말입니다. 이것은 제 부모님의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제 사회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졌겠지요. 저 또한 저희 동굴인의 싹이 보이는 저희 아이에게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르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야겠단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기본 성향은 변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저는 여전히 혼자 있을 때 가장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이니까요. 아이에게 대인관계의 기술을 가르치되 아이의 동굴을 인정해주어야겠죠.


10대 시절에는 무리에 혼자 떨어져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내가 소모됨을 알면서도 인간관계에 목을 매었고, 20대 시절에는 왠지 인맥 넓고 능력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자신의 성향을 누르며 억지로 관계를 넓혀 갔습니다. 30대가 된 저는 가장 자연스러운 저의 모습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내어줍니다. 물론 사회적 동물이란 본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저도 사람이 좋습니다. 하지만 사람도 좋고, 혼자 있는 시간도 좋을 뿐이죠.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이 잘 균형잡혀 있을 때 저는 행복을 느낍니다.


동굴 속의 엄마로서 아이를 양육해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외향적인 사람이 육아에 더 유리하단 사실은 분명해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디에서도 배울 것입니다. 그것을 믿기에 제 동굴이 부끄럽진 않습니다.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더 이로운 공부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제 동굴을 사랑하듯 아이의 동굴을 존중해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 동굴을 만들 나의 아가야. 너의 동굴 안에서 너도 충만히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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