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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pr 04. 2019

진주의 시간

당신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당신은 어떤 시기를 이야기할 것인가. 아마도 많은 엄마들의 대다수는 어린 아기를 키우던 시절을 꼽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육아를 경험하며, 살면서 내가 이렇게 자유 시간을 갖기가 힘든 삶을 살아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1시간 조차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시간이 없었던 하루도 많다. 고시 공부도 해봤고, 업무 강도가 매우 높은 부서에서 일한 경험도 많지만, 이렇게 정말 단 한 시간도 자유함이 없던 적은 없었다. 차 한 잔의 여유와 천천히 먹는 밥을 경험한 적이 언제인가. 아기를 키우며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은 오롯이 내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의 부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인생을 살면서 가장 답답하고 버거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기가 내게 주는 기쁨이 결코 작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기는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예쁘고, 눈물 나게 사랑스러운 존재다. 그러나 그와 비등하게 엄마의 답답한 시간 또한 뒷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사랑스러움, 답답함의 감정이 동시에 내 마음속에 움튼다는 사실이 놀랍다. 육아는 그렇게 놀라운 일이다.


사람은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가 넘칠 때는 글이 잘 안 써진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며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아가곤 한다. 삶이 각박해지고, 마음이 퍽퍽해지면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힘든 현실을 자꾸만 머릿속에서 되새김질하느라 통찰이 늘어가고, 그 안에서 자꾸만 의미를 찾게 된다. 넘쳐나는 생각을 주체를 못 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나는 힘들 때마다 여러 편의 글을 쓴다.


글 쓸 여유가 하나도 없는 바로 이 시점이 나에게는 가장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시점이란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생각이 충돌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주체를 할 수가 없다. 글 속에 탈탈 털어놓으면, 또 생각통이 자꾸만 채워지는 경험을 반복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놀라운 생명체가 주는 영감과 힘든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여러 삶의 교훈이 어우러져 머릿속이 참 시끄럽다.


이 글감 폭발의 시기를 허투루 넘어가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든다. 작가 지망생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고유의 생명체를 키우는 고유의 육아를 하고 있고, 고유의 삶을 고유의 언어로 표현해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 고유의 그 무엇들은 자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기록할 수 없다.


오늘 계속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는데, 류시화 작가의 신간에 이 문장을 읽고,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아서 마음이 찌르르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생의 작가입니다. 우리의 생이 어떤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들이 무슨 의미이며 그다음을 읽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한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 뿐입니다.



나는 나의 생의 작가이다. 책 출간을 떠나서 아기와의 이 유일무이한 시간을 치열하게 기록해야겠단 생각을 다시금 했다. 행복해하면서도 괴로워했던 내 젊은 날과 내 아이의 어린 날을 기록하고 싶다.


자신의 소명을 사랑하면 필시 세상도 사랑하게 된다. 그 밤에 비를 맞으면서 나는 온 영혼을 다해 소리 내어 시를 외웠다. 그리고 나 자신이 '오갈 데 없는 처지'라거나 '공동체에서 쫓겨난 마귀'가 아니라 시인이라고 생각하자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빗줄기에 춤추는 옥수수 잎이, 촛농이 떨어지는 창턱까지도 축복처럼 여겨졌다. 그런 시적인 순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엄마로서, 작가 지망생으로서의 내 소명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온 영혼을 다해 아이를 키우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러다 보면 이 힘듦이 축복 같이 느껴지곤 한다. 류시화 작가가 말했듯 나는 지금 시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힘껏 웃어주는 축복 같은 아이와 스스로를 위로해주는 나의 글과 함께 말이다.


진주의 시간을 보내며, 단지 내 힘듦이 힘듦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운 진주처럼 아름다운 결과를 맺기를 바란다. 지금의 이 기록들이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믿는다.


진주의 시간, 나와 아기와 글이 있던 그 시간. 어쩌면 오래도록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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