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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pr 07. 2019

선 긋기 연습

나와 당신, 나와 사회 사이

어느 날 지인의 카톡 프로필 문구를 보게 되었다.


'선 긋기 연습'


왜 '선 긋기 연습'으로 문구를 정했을까? 다른 프로필 문구와는 다른 독특한 느낌의 구절에 마음이 갔다.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에 관심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의 방향이 그쪽으로 향했다.


얼마 뒤 지인과 대화할 기회가 생겨 문구에 대해 물어봤는데, 중의적인 의미라 답해서 더 놀라웠다. 남편이 선을 그어야 하는 일이 있어 지인에게 부탁을 했는데, 말 그대로 그렇게 선 긋기 연습을 하다가 인간관계의 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내 생각과 달리 정말 실제로 선을 긋는 연습을 하다가 추상적 선에 대해서 넘어갔다는 것이 더 놀랍고 좋았다.


선. 나는 선에 대해서 참 자주 생각한다. 난 본디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라 나를 둘러싼 선이 분명하다. 타인이 그 선을 침범했을 경우 매우 싫어하는 편이고, 자주 침범할 경우에는 싫다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이렇기에 나 또한 타인의 선을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 민감한 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멀찍이서 그 사람을 대하며 그 사람의 선에 대해서 더듬더듬 찾아보고는 한다. 반복적으로 만나며 점점 가까워질수록 선은 분명해지고, 선에 대해서 확실히 알게 될 때는 그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친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나와 타인이 선에 대해서 더듬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내 뱃속에서 나온, 이제 겨우 1년 산 내 딸도 분명한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어가면 바로 고양이처럼 할퀸다. 아기를 보면 그 야성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아직 어린지라 녀석은 엄마의 선을 모른다. 본인은 마구대로 선을 넘나들며, 본인의 선은 넘지 말라니 이 무슨 이기적인 처사가 있단 말인가. 아기보다 30배는 더 많이 산 시간이 부끄러워 참을 뿐이다.


타인의 선을 얼마나 분명하게 인식하는지를 우리는 사회성이라 부른다. 사회성이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선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의 대인관계를 맺는다. 그저 활발하기만 한 사람을 사회성이 좋다 부르기는 어렵다 생각한다. 사회성이 좋다는 진정한 의미는 그만큼 타인의 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의 선을 더듬기 전에 가장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내 선을 분명히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분명히 내 선을 허락도 없이 침범하였는데, 대체 내가 왜 기분 나쁜지 모른다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을 침범하여 기분이 나쁘다 표현하는 연습 또한 자꾸만 하여 타인으로부터 침범되지 않을 내 고유의 영역을 분명히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고유의 영역이 잘 지켜질수록 그 안에서 내 마음 또한 평안할 수 있고, 그 평안함이 유지되어야지만 내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아기에게 가르쳐야 할 많은 것 중에 바로 이 선 긋기 연습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둘러싼 선을 인지하는 능력, 타인의 선을 이해하고, 그 선을 넘나 들지 않는 예의, 여러 사람들의 선이 서로 중첩되고 겹칠 때 그 안에서 서로가 가장 평화로울 수 있는 선을 다시금 그을 수 있는 지혜. 이 세 가지의 조화를 잘 가르친다면 자신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


선 긋기 연습은 중요하다. 나에게도 아기에게도. 어쩌면 일생을 다해 가르쳐야 할 공부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아직도 배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지인과의 대화 말미에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부정적 표현을 하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자식을 낳고 보니 아들이 당하는 무례함 앞에서는 용기가 생기더라고. 그래서 그 무례함에 내가 기분이 나빴음을 솔직하게 용기 내어 말해보았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남에게 부정적 표현을 솔직하게 말하는 데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인데, 내 딸이 무례한 언행을 당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히 용기를 내야겠지. 그래야 딸 또한 자신이 겪는 모든 무례함에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선 긋기 연습의 최종 목적은 단지 선을 긋는 것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선을 넘지 말아 주세요 라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선 긋기 연습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돌이 될 것이다. 소극적인 자신을 극복하여 아닌 건 아니라고 표현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용기를 내야겠다. 내 자신보다 딸을 위해 말이다. 사랑은 허다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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