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Apr 09. 2019

51%의 행복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남편과 아기에게 화가 많이 났다.


아기 태어난 이후 남편과 시원하게(?) 한 판 붙은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나도 주변 분위기에 유달리 예민한 아기가 혹시라도 주눅 들고, 눈치 볼까 봐 분노의 감정을 꾹꾹 누르고 차분히 해결하려 노력했다. 화가 나는 감정을 카톡 메시지에 실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남편에게 전달하고는 했는데, 남편이 정말 싫어했다. 그렇게라도 싸우지 않으면 화병이 생길 것만 같아 내 소리 없는 아우성은 1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그러다 주말에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겨 아기 잠든 사이에 남편에게 크게 화를 냈다. 남편이 분명히 잘못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내가 화를 내는 거 자체가 서운해서 화를 냈다. 출구 없는 이 분노를 둘 다 해결 못하고, 아기가 깨어나 다시 육아 전선에 뛰어들었다.


시간적 여유, 정신적 여유가 없는 돌쟁이 엄마, 아빠의 감정밭은 모든 곳이 지뢰밭이다. 조그만 압력에도 곧 폭발해버리는 무서운 밭. 평화로운 DMZ가 그립다.


남편과의 갈등과 상관없이 계획되어 있던 친정행. 조금 떨어져서 남편을 생각하니 왠지 미안하다. 남편이 많이 노력한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나는 내 자신이기에 또 미안하다. 남편도 미안한지 본인의 일상을 공유하며, 은근한 사과의 운을 띄운다.


남편뿐만 아니라 아가에게도 화가 많이 났다. 밤에 안 자겠다고 1시간 넘게 뻗대다가 이앓이로 밤새 깨고, 5시부터 일어나고 싶다고 칭얼대다 6시에 완전히 기상하셨다. 나 또한 밤새 깨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 비몽사몽인데, 아기는 쌩쌩하다.


위험한 것 투성이에 울타리, 매트가 없는 친정 곳곳을 신나게 쏘다니고, 끊임없이 부수고 부딪히고 운다.


눈은 자꾸 감기는데, 열렬히 모험을 펼치는 이 꼬마 탐험가 덕분에 한 눈을 팔아서는 안된다.


친정 식구들 모두 직장을 다니기에 장소만 바뀐 육아이다. 아니 아기 용품들이 없기에 더 위험하고, 더 불편한 육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행을 기다리는 이유는 남편의 야근으로 틈만 나면 24시간 독점 육아가 보장되는 생활과 달리 이곳은 모두 칼퇴를 하기 때문이다.


더 위험하고, 더 불편해진 육아와 밤새 못 잔 피곤한 몸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나 보다. 열심히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아기의 공부에 뜬금없이 화가 났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도 불합리한 분노인 것 같아 침묵해버렸다. 육아에 있어서도 침묵이 금이 될 때가 많은 것을 믿기에 말이다. 눈치가 빠삭한 녀석의 분위기도 다소 침체됐다.


입을 꾹 다문 채 녀석을 업고, 설거지를 하는데, 등 뒤가 조용하다. 아기가 잠든 것이다. 어지간히 피곤하긴 했나 보다.


잠든 아기의 얼굴은 엄마의 고해성사를 부르는 영감의 대상이 된다. 왜 그리 화가 났던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그저 아기는 새로운 것들이 많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진 친정의 생활에 흥분되었던 것뿐일 텐데 말이다. 머리로는 아는데, 피곤한 몸이 자꾸만 이성을 흔든다.


어젯밤, 퇴근한 엄마와 남동생, 올케가 아기의 작은 행동에도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 행복했다. 각자 밥벌이의 고단함, 각박한 가정 경제의 어려움, 인간관계의 피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노곤한 몸과 마음이지만 잠시 아가를 보고 기쁨과 평화를 나눴다.


어릴 때는 100%의 행복만이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51%만 행복해도 진정 행복하다 생각한다. 49%의 비행복은 어쩌면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1%의 무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제는 안다. 이 작은 아기가 온 가족의 1%의 행복을 능히 책임져준다는 것도.


아이로 인해 행복하고, 아이로 인해 화가 난다. 아이로 인해 행복하고, 남편과 여러 인간관계, 여러 삶의 문제로 화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주는 지금의 행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잊지 않으며 살고 싶다.


어른들은 다들 나에게 지금이 좋을 때라 한다. 기억의 능력은 대단하다. 힘듦은 희석하고, 기쁨은 증폭시키니 말이다. 그분들 모두 아기 어릴 때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힘들어하실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도 왜 그리 말씀하셨는지도 분명히 이해가 간다. 나 조차도 몸은 많이 힘들지만, 그저 존재만으로도 행복을 뿜어주는 아기의 시간이 얼마나 찰나인지 알기 때문이다.


난 지금 51% 행복하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최선이자 최고의 행복인지 느낀다. 태어나줘서 고맙고, 존재해줘서 고마운 내 아가가 감당해주는 1%가 눈물겹게 고맙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 긋기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