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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Sep 16. 2022

고마운 공기

아이의 수술이라는 큰 언덕을 넘은 다음 날 밤. 거짓말 같이 나는 어제 전신마취로 죽은 듯 누워 있던, 자꾸만 떨어지는 맥박이 불길한 징조일까 봐 몇 번이나 내려앉는 심장으로 바라보던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편의점에 다녀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공기는 미지근했고, 아이와 잡은 손을 흔들 때마다 느껴지는 공기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고마운 공기. 그렇게 밖에 표현되지 않는 공기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아이가 가장 힘들 때 곁을 지켜준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지.”


병원을 가기 몇 주 전 하영 언니가 내게 건넨 말은 공기처럼 늘 주위를 맴맴 돌았다. 5살 인생이 겪는 가장 어두운 시간의 파도를 온몸으로 앞에서 함께 맞아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은 의미 있는 것일까. 아이의 수술을 바라보는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그냥 그 시간을 함께 온전히 맞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깨닫는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금세 눈물이 차오르다가도 앞에 서있는 아이만 보면 눈물이 쏙 들어간다.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마음이 여려 터진 마음 앞에 선다.


긴긴밤을 지나 고마운 공기를 가르고 있는 아이와 나. 여전히 우린 이 터널을 다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 터널에 들어서기 전보다 삶의 밀도가 더 높아졌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어둠을 헤치며 나아갈 때 내게 묻은 건 어둠의 흔적이 아니라 더 절실해진 삶의 간절함임을. 어둠을 품은 삶은 더 오묘한 색을 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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