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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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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02. 2023

[감사일기] 1월 2일

1. 할머니, 울어?

   야, 너도 있는데 내가 울면 안 되지.

     

자꾸만 울먹거리시는 할머니가 걱정되어 여쭤보니 할머니는 내가 불쌍해서 못 울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식 잃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살겠냐고 한탄한다. “할머니, 그럼 안돼. 내가 있잖아. 오래 사셔야 해.” 내 이야기에 할머니는 대답을 안 한다. 할머니가 나를 봐서라도 좀 힘내시면 좋겠다. 할머니에게 아직 내가 남아 있어 다행이다. 감사하다.     


2. 할머니가 길에서 주웠다며 8,000원을 주셨다. “너 좋아하는 커피 사 먹어.”, “그래, 할머니. 주운 거니까 오늘 안에 다 써야겠다!” 무릎도 아프신 양반이 돈을 보고 얼마나 재빠르게 주웠을지 슬픈 와중에도 깔깔 웃음이 나왔다. 나는 할머니 덕분에 오늘 커피 2잔은 너끈히 먹을 수 있겠다. 할머니가 어제는 불쌍하다며 5만원을 용돈으로 줬다. 나이 41인데도, 할머니가 용돈과 길에서 주운 돈을 준다. 감사하다. 몇 배로 불려서 다시 용돈으로 돌려드려야겠다.     


3. 엄마가 남편의 꿈에 나타나 호두를 만나고 갔다 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할머니 꿈에는 나와 동생이 소복을 입고 있었다 한다. 엄마가 가시긴 가려나보다. 가족들 꿈에도 나타나고. 얼마 전 삼촌의 꿈에는 가장 예쁜 시절의 엄마가 나타나 인사를 해줬다 한다. 차근차근 엄마의 장례를 준비하는 나만큼이나 엄마 또한 차근차근 자신의 죽음을 준비 중이구나. 엄마, 황급히 가지 않아 줘서 고마워. 덕분에 내가 덜 충격받을 수 있어서 고마워.      


4. 제발 12월 31일, 1월 1일에는 돌아가시지 말기를 바랐는데, 정말 엄마가 그 시간들을 넘겨주었다. 너무 고맙다. 평생 한 해의 마지막 날과 한 해의 시작날을 슬프게 보낼까 걱정했다. 엄마는 사실상의 뇌사 이후 2주간 꿋꿋이 버텨서 1월 2일까지 살아계시다. 힘겹게 삶을 연장하며 강하게 이겨나가고 있는 나의 엄마를 존경한다. 나도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도 다시금 힘을 내어 끝까지 버텨내야지. 끝까지 강인한 우리 엄마, 마지막 모습까지도 내게 많은 귀감이 되어 준다. 엄마, 사랑해. 너무 고마워.     


5. 이 슬픈 와중에도 나는 병원 지하 카페 한쪽 구석에서 열심히 생활기록부를 작성 중이다. 마음이 너무 심란해서 손을 못 대고 있었는데, 이렇게 방치하다간 정말 큰일 날 것 같아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린다. 끝까지 나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자. 그게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준 모습이기에. 부모님 딸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자. 마음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내 할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기운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6. 학교에서 교무 부장의 수많은 업무를 나의 동료들이 나누어 해결해준 덕분에 교무 부장 업무는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다시 돌아가면 동료들을 위해 열심히 업무 지원을 하자.      


7. 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무조건 연가를 써라, 무조건 엄마에게 가라고 해주시는 교장, 교감선생님께 감사. 교장, 교감선생님의 장단점에 대해 따져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것만으로도 현재 나의 교장, 교감선생님은 내게 큰 은인이다. 그분들에게 인간적으로 예의를 다하자, 그분들의 마음을 다독여드리는 후배가 되자 생각한다. 서로를 감사해하며 살 수 있어 감사.      


8. 왕복 3시간 거리를 운전하며 고생한 나를 위해 이모가 저녁과 아침을 계속 차려주며 위로해 준다. 사실 이모와 나는 성향이 정반대라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이모가 대표적인 인싸 성격이라면 나는 자발적인 아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위해 힘을 합쳐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빠 돌아가실 때도 가장 먼저 달려와 우리 가족을 도와준 건 이모였다. 이모에게 정말 고마워해야 한다. 이모, 너무 고마워. 살면서 차근차근 갚을게.     


9. 갑작스러운 엄마의 부고에 놀랄 나의 오랜 친구들을 위해 여건이 되는대로 전화하거나 카톡을 보내 차분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려 애쓰고 있다. 이건 그들에 대한 나의 존중이다. 내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존중을 표현할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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