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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27. 2023

1월 26일 (목) 감사일기

1월 26일(목)

1. 밀린 업무의 양으로 따지면 방학 내내 출근해도 모자라는 상황이다. 그만큼 교무의 구 학기 마무리, 새 학기 준비 업무는 방대하다. 그동안 반쪽짜리 교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제야 진정 교무 업무의 맛을 음미하고 있다. 많은 압박감이 나를 누르지만, 하나씩만 생각하며 스스로를 매일 위로하며 나아가고 있다.


교무로서의 색깔을 가지고 고민이 많았지만, 나는 참 교사가 아니기에(!)….. 나는 그저 관리자가 바라는 이상향과 선생님들이 바라는 아주 본질적인 단순한 것들의 간극을 맞추며 나와 일하는 선생님들이 힘들게 살지 않도록 완충재가 되어주는 교무가 되자 마음먹었다. 교무로서 내 이상적 교육(?) 같은 건 없다. 난 진짜 교육은 교사들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한다 생각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편안하게 해 준다고 해서 노는 사람 없다. 다들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특별한 무언가(?)를 원하는 관리자들에 의해 교사들의 일상은 크게 흔들린다. 나는 이상적인 교육 같은 건 바라지 않고, 그저 내가 함께 일하는 교사들의 일상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러려면 많은 지혜와 실력이 필요하다 생각이 든다. 일찍 교무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언젠가 교무부장을 해야 한다면 실력을 잘 갖추고 싶었다. 배우는 게 부끄럽지 않고, 질문하는 게 자존심 상하지 않을 나이에 하고 싶었다.


하루하루 새로운 일들이 튀어나와 나를 자주 당황케 한 2022학년도가 점점 마무리되고 있다. 많이 놀랐으니 두 번 겪는 일들엔 무던해지겠지. 내 최고 단점은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내 최고 장점은 두 번 겪는 일은 유비무환 정신으로 잘 준비하고 유연히 대처하는 것이다.


2년 차 교무의 생활은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생각들이 내겐 위로가 된다. 감사하다.


2.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펑펑 왔다. 운전하기 위험할 거 같아 오늘은 집에 있기로 했다. 호두도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면 생활이 불규칙적이게 되어 나와 호두가 싸울 일이 많아져서 힘들지만, 하루종일 호두가 흥얼거리는 종달새 같은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길거리에서도 남들이 자신을 쳐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채 자기 흥에 겨워 춤을 추는 호두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엄격한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한 나는 한 번도 호두처럼 그렇게 흐르는 흥에 몸을 맡긴 적이 없던 거 같다. 나와 달리 자신 안에 흐르는 음악에 따라 몸을 맡기는 호두의 삶이 자유로워 보였고 부러웠다. 가끔 매섭게 변하는 나의 기세에도 꺾이지 않고, 제멋대로 크는 호두라서 참 감사하다.


3. 호두가 오늘 여러 번 외할머니 얘기를 꺼내서 내가 몇 번 듣기 힘들어서 그만해달라 했는데도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 이야기했다. 듣는 게 고통스러워서 그만해 주길 바랐지만, 생각해 보니 호두도 할머니를 추억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는데 내가 억압한 건 아닌지…. 나중에는 그냥 포기하고 들었다.


오늘도 이런저런 일을 할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는 순간이 많아 참 힘이 들었다. 이렇게 힘든 나날을 오래도록 보내야 한다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무섭고 힘이 든다. 그래도 내일 하루의 견딜 수 있는 작은 고통만 견디며 또 하루 살아내 보자. 야금야금 살아가다 보면 시간이 분명 흘러가 있을 거고, 조금은 견딜 마음의 근육도 생기겠지. 오늘 하루 견디게 하신 은혜 감사.


4. 친구 은이(가명)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서로 각자의 이유로 너무 혹독한 겨울을 보내느라 마음의 살이 쏙 빠진 느낌이 든다. 그래도 씩씩한 은이 목소리를 들으니 나까지 힘이 생겼다. 은이가 힘듦을 잘 헤쳐나가고 있어 감사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마음이 행복할 수 있어 감사하며, 우리에게 서로를 위해 기도할 아버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때론 내 기도보다 은이에 대한 기도가 더 간절했음에 감사하다. 사랑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고, 내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부분이라 생각한다. 사랑이 있음에 감사.


5. 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고 있어 감사하다.


6. 유네스코 학교에 지정된 것, 새 학년도 특색교육 과정을 환경 관련으로 할 거라는 것. 이 두 가지를 중점으로 학교 교육과정의 판을 다시 짜야하니 머리가 너무 아프다. 도무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본 영상에서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가 자기가 완벽히 무언가를 아는 상태였다면 절대 페이스북은 탄생하지 않았다고, 무엇이든 부딪히며 알아가는 거라 말했다. 처음부터 판을 완벽히 알고 짜내는 사람은 없다고… 그 말이 너무 힘이 됐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계속 부딪혀보며 나의 부족함을 배움으로 채워나가자. 나는 아직 초보 교무이고, 아직 어리니 부족해도 괜찮다. 마음을 좀 더 편히 먹으니 한결 낫다. 좋은 마음 주심 감사.


7. 너무 바쁜 엄마라는 것이 아이에게 커다란 죄스러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나름대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어와 육아 사이에서 허덕이는 엄마가 세상에 무수히 많을 거란 믿음으로 캄캄한 길을 걸어본다. 걷다 보면 나에게 꼭 맞는 나만의 길을 분명 찾을 것이다. 내가 예전에 비해 스스로에게 점점 친절해지고 있다는 것에 감사. 말로만 듣던 워킹맘의 비애를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하고 있어서 감사.


8. 아토피와 비염이 있는 호두라 자기 전에 치러야 하는 루틴이 참 많다. 크림을 듬뿍 발라주고 코 안에 코를 다 빼주고 코 세척하고 비염 오일도 발라주고 면역력 높아지라고 이런저런 건강식품 챙겨주면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린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옆에서 자고 있는 호두의 숨소리가 편안해서 다행이다. 코가 꽉 막히면 듣는 내가 더 불편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건강하게 잘 커주니 감사하다. 챙기느라 피곤한 만큼 나는 이런저런 경험을 풍부히 해보며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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