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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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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28. 2023

1월 27일 (금) 감사일기

찬란하고 누추한

1. 어렸을 때부터 이런저런 형식으로 꾸준히 글을 써왔다. 초등학교 때는 일기를 썼고,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편지를 썼다. 대학교 시절 유행한 SNS 싸이월드는 내게 처음으로 ‘공개적 글쓰기’의 장을 열어준 곳이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에 일기를 매일 썼는데, 친구들이 일기가 참 재미있다며 자꾸 홈피에 들어왔다. 아마도 내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체감했던 시기 같다. 두 번째로 확 와닿았던 계기는 네이버의 한 온라인 카페를 통해서 인데, 그곳에서 나의 글을 좋아해 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요즘도 나는 글을 쓴다. 따지고 보니 글을 30년 동안 쓴 거다. 요즘 내가 쓰는 글은 오로지 내 자신을 위한 글이다. 내 안에서 고요히 똬리를 트는 생각들을 밖으로 꺼내어 볕 바른 곳에 놓으려 글을 쓴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몽땅 글에 쏟아 넣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30년 동안 글을 쓰며 내 자신을 위해 이렇게 진지하게 글을 쓴 적이 있었는가. 어쩌면 지금 난 가장 소중한 글쓰기의 본질을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2. 내가 감사일기를 쓴 지도 4년 정도가 흘렀다. 호두를 낳고 산후우울증으로 이러다 내가 정말 큰일 나겠다 싶을 때부터 시작했다. 그때 살고 싶어서 잡은 동아줄이었던 감사일기가 어쩌면 지금의 내 슬픔을 감당키 위한 작은 씨앗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씨앗은 이제 자라 무성한 나뭇잎을 자랑하는 나무가 되었다. 깊은 슬픔을 가진 나이지만, 오랫동안 삶의 구석구석 숨겨진 감사를 샅샅이 찾았던 습관은 이제 몸의 일부가 되어 극한 상황에도 감사할 것부터 찾는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최근 어떤 설교에서 슬픔과 우울을 이겨낼 좋은 방법이 삶의 감사를 찾는 일이라 했다. 공감했다. 나는 오랫동안 감사를 찾는 방법으로 크고 작은 파도를 헤쳐왔다.


매일 실패해도 매일 감사일기를 시도해 본다. 때론 아이폰 메모장에 한 줄 쓰고 잠드는 날도 있다. 아무에게도 공개 못하고 한 줄 두 줄 정도로 묻히는 감사일기가 많다. 그래도 도전하고 또 도전해 본다. 나는 감사로 일어설 것이다.


3. 밤이 되면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하루동안 미뤄왔던 숙제 같은 슬픔이 긴 촉수를 뻗어 내 몸을 휘어잡는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 말이 단순한 관용구라 생각했는데,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통증이 느껴지는 거 같이 아프다.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감각으로 느껴지는 슬픔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참 울다가 호두에게 할머니가 보고 싶다 말했다. 호두는 자기도 보고 싶다 말했지만, 내가 느끼는 절절한 감정들을 모두 공감해주진 못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밤에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호두와 외할머니를 함께 그리워하다 잠이 든다.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호두가 있어 감사하다. 매일 울고 힘들어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거짓말 같은 새 힘으로 또 당도한 문제들을 잘 헤쳐나가는 씩씩함을 주셔서 감사하다.


우울이 심해지면 약을 먹고 상담을 다니며 전문가에게 몸과 마음을 맡기면 된다. 내 자신의 마음을 자주 살피며 스스로를 살뜰히 돕는 내가 되자.


엄마 돌아가시고 자주 들었던 말이 ‘너는 강인하니까 잘 이겨낼 거야.’라는 말이었다. 나는 강인하지 않고, 설사 강인하다 하더라도 갑작스레 부모를 잃고도 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오히려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언제든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더 안전한 일 같다.


나는 약하다. 언제든 우울의 늪에 빠져 일상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도 스스로를 섬세하게 돌보도록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의 모든 감정을 맡겨본다.


언젠가 먼저 엄마를 잃은 친구가 말했다. 결국 그 슬픔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라고. 많은 친구가 위로해 주지만, 나는 심한 고독을 느낀다. 왜냐하면 정말 슬픔은 온전히 혼자만의 몫으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이다. 춥고 아픈 길이지만 걸어가 본다. 어떤 길이든 끝이 있으니까. 비록 몇 년에 걸친 기나긴 길이겠지만, 호두를 위해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간다. 오직 끝없이 걸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니까. 한 걸음 떼내려는 용기와 의지가 있어 감사하다.


4. 호두의 까만 눈동자와 고사리 손을 사랑한다. 특별히 잘하는 것 없이 평범한 아이이지만, 호두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늘 빛이 나기에 나는 호두가 늘 자랑스럽다. 그저 숨 쉬는 호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 지금 내가 호두에게 느끼는 이 감정 그대로 하루하루 그저 아이에게 고마워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벅찬 마음으로 한 존재의 삶을 바라보자 생각이 든다. 그 사실만으로도 자녀를 낳아 키우는 일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순수한 벅참이다. 그 벅참을 인지하며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하다.


5. 날씨가 너무 춥다. 살이 에이는 추위에 내가 들어올 나의 집이 있고, 틀기만 하면 나오는 따뜻한 물이 있어 감사하다. 나는 스스로를 늘 부자로 생각한다. 집과 따뜻한 물만으로도 나는 부자다. 지구에서 이 정도의 조건을 편안히 누릴 수 있는 이가 몇 프로나 될까. 나는 부자 맞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주는 사람이 되자. 복이 넘치니 그 복을 나누어주는 게 맞다. 항상 감사하며 살자.


6. 아랫집 하성언니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와 나는 아이들로 인해 오랫동안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지만,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훌륭히 자란 언니는 단 몇 마디 만으로도 내게 좋은 통찰을 준다. 언니의 몇 마디가 내게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언니에게 또 표현하지 못했다. 잘 모아두었다가 언젠가 한 번 이야기해야지. 언니가 있어 좋다.


7. 같은 학교 선배 서영, 연아샘과 만날 날도 며칠 안 남았다. 오늘은 꽤 긴 얘기를 나누었다. 나를 많이 아껴주는 선배샘들이 있어 심정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는데….. 연아샘과는 이제 헤어져야 해서 슬프다.


두 선배는 내게 진정으로 교사들을 위하는 관리자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통찰을 심어준다. 때론 그 통찰들이 부담스레 다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때론 쓰게 느껴져도 결국 나에게 보약 같은 말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친언니처럼 늘 내 앞날을 걱정해 주고, 내가 바른 길을 걷도록 죽비소리가 되어주는 나의 언니들. 내가 엄마 일로 학교를 비웠을 때 자발적으로 교무 대행을 하며 나의 우산이 되어주었던 언니들. 소중한 마음들이 있기에 내가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엄마 닮아서 받은 은혜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갚는 사람이니 두고두고 갚아나갈 거다. 나도 언니들이 힘든 시기에 대가 없이 언니들의 우산이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지혜로워지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 배워나가자.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8. 꽃을 보며 나는 생생하게 살아  쉬는 생기와 터질  부풀어 오르는 아름다움, 결국 찬란한 영광을 모두 잃은 누추함을 깨닫는다.  삶도 그리 되겠지. 찬란하게   있다면 누추함도 괜찮다. 아예 피지도 못한  몽우리로  바에야…… 찬란하게 피고, 용감하게 누추해지며, 깔끔하게 떠나자. 앞서 나간, 존경하는  부모님들이 내게  교훈이다.    너무나 삶을 사랑했고,  진지했으며, 사람들을 깊이 사랑했다.  분이 떠난  고통스러워하는 많은 이들이 도리어 내게 위로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9. 방학이어도 매일 출근하지만, 수업이 없기에 나는 마음의 부담 없이 이렇게 늦게까지 글을 쓰기도 하고 틈틈이 책도 읽는다. 모름지기 확 놀지 않고 짬짬이 놀아야 더 소중하고 맛있는 거랬다. 글 쓰고 책 읽는 방학. 참 소중하다.


10. 너무너무 사랑하는 한정원 작가가 신간을 냈다. 와….. 너무 좋다. 어제 그 사실을 알고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고민도 않고 당장 샀다. 한정원 작가는 무슨 문장으로 내 마음에 별을 새겨줄까. 정원 작가가 내게 심어 놓은 별빛으로 지난 시간을 살아왔다. 작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작가가 내는 책을 기다리는 삶. 정말 근사한 삶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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