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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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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28. 2023

1월 28일 (토) 감사일기

1. 겨울에는 입을 열 때마다 뿜어지는 하얀 입김 덕분에 평상시는 보이지 않던 나의 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결처럼 퍼져가는 나의 숨을 바라보는 게 신기하다. 겨울이 있어 감사.


2. 비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눈은 모든 것을 덮어준단다. 드러내야 할 때가 있고, 덮어야 할 때가 있다. 나는 덮는 것이 더 좋다. 때론 알면서도 덮어주고 보듬어 가면 시간이 지나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실수와 부족함이 덮일 때가 있었으면 한다. 내가 그렇게 행동할 때는 대개 몰라서이거나 알아도 고치지 못하는 상황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사람보다 스스로 고칠 때까지 기다리고 덮어주는 사람이 되어보자. 차가움 보다는 따뜻함이 좋으니까.


3. 사람이 가득 차 앉을자리가 거의 없는 카페에서 긴 테이블의 남은 빈 자리에 겨우 앉았다. 얼마 뒤 나와 의자 한 개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던 20대 남자분이 둘이 함께 앉고 싶은 노인들의 부탁에 옆자리로 바짝 당겨 앉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자를 옆으로 끌 타이밍을 놓쳤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탓이다. 커피를 마실 때 그분의 팔꿈치와 내 팔꿈치가 종종 맞닿았지만, 한참 지난 타이밍에 의자를 옆으로 밀기가 괜히 미안했다. 본인도 원치 않은 자리로 강제 옮긴 당한 건데, 내가 싫어하며 피하는 느낌을 주는 거 같았다. 그냥 방향을 살짝 옆으로 틀어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팔꿈치가 닿지 않았다. 어차피 스케줄 때문에 20분간 잠시 머무는 카페였으니까 상관 없었다.


내 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곰곰이 스스로의 행동을 분석하는 걸 좋아한다. 아마도 나는 그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고 싶었던 거 같다.


가끔 나와 대화할  그렇게까지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해야  필요가 있나 하는 질문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그분은 잠깐 스치는 사람이고, 정작 그분은  행동에 신경도    같다. 예전에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스스로 너무 피곤하게 사나 자괴감이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성향 자체가 매우 섬세한 사람이고, 작은 행동 하나도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작은 것까지 남을, 스스로를 배려하며 산다. 본디 태어난 모양새가 그렇다.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던 시기를 거쳐 나는 이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행동을 부정하는 누군가에게  성향을 이해시키는 일을 어느 정도 포기했다. 오해를  수 있는 속내는 나를  이해하는 친구들에게만 나눈다.


남을 보이지 않게 섬세히 배려할 때가 많기에 나는 남들의 보이지 않는 배려 또한 매우 예민하게 읽는다.  행동 너머에 있는  사람의 깊이를 순식간에 읽는다. 나는 나의 이런 점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분별력을 준다 생각한다. 그게 삶에 보탬이 된다. 좋은 사람을   분만에 알아보는 감각을 가졌으니까.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감각은 거의 맞았다. 남을 아주 작은 거까지 배려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 정신이 건강한 사람일 때가 많다. 그런 배려는 남에게  보이거나 호감을 얻기 위한 배려와 색깔이 다르다. 몸에서 친절과 선함이 배어 있어서 거의 자동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난 섬세한, 혹은 예민한 사람이다. 이제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하려 노력한다. 숨을 필요 없다. 잘못한 거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 살아서 피곤한 거보다 얻은 게 훨씬 많은 사람이니까. 이 글을 읽는 예민 보스들이 힘을 얻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성격은 장단점이 모두 있고, 모든 성격이 플러스 마이너스 =0이란 게 내 인생 모토다. 무던하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무던해서 아쉬운 점도 분명 있는 거다.


점점 나 자신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내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감각을 더해갈 수 있어 감사하다. 나이든다는 건 그런 의미로 참 좋은 거다. 스스로를 혐오했던 20대의 내게 그 힘든 시간을 견뎌줘서 고맙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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