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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r 30. 2019

우리에게는 주방이 필요합니다

나를 위한 치유, 요리에서 시작하기

7년의 난임. 흔한 경험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누구나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이었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7년의 터널을 돌아보면 고통의 끈을 꼭 쥐고 산 것 같진 않다. 감정의 무뎌짐 때문인지 일상의 바쁨 때문인지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 조차 잊고 살았을 때가 많았고, 그렇게 하루하루의 조각이 모아지다 보니 어느덧 7년이 되어버렸다.


난임 6년 차에 접어들 때쯤 나는 요리를 배우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요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기본적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요리는 내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살면서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술이다. 우리는 누구나 음식을 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 음식을 요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매번 다른 사람의 손길을 빌려야 한다는 의미다. 마치 기성복처럼 이미 정해져 있는 맛 중에서 내게 맞는 맛을 골라야 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맛을 잘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이다. 요리 초보라면 아직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맛을 구현해내기가 어려울 테지만,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다면 분명 자신만의 맛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맛을 찾아내고, 그 맛을 맛본다는 것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행복 중에 하나 아닐까.


이런 나의 개똥 철학 때문인지 나는 늘 요리를 배우고 싶었다. 직장일에 치여 엄두를 못 내는 시간이 계속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우연히 난임 6년 차에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요리 선생님은 단순히 요리만 가르치시는 분은 아니었다. 요리는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기본 철학을 가지신 분이었고, 질 좋은 요리 도구, 질 좋은 재료, 현명한 레시피의 선택 등으로 몸에도 마음에도 좋은 요리를 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주셨다. 첫 날 수업에서 선생님께서는 건강한 먹거리에 대한 철학이 담긴 식생활 관련 책을 추천해주셨고, 그곳에 나오는 구절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는 집에 있는 모든 냄비를 스텐 냄비로 바꾸었고, 코팅 프라이팬을 스텐 프라이팬으로 바꾸었다. 나무 도마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보관 용기를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바꾸었다. 그렇게 몸에 이로운 주방 도구로 바꾸는 것에서부터 나의 요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나중에 내 사정을 들으시고, 조심스럽게 '집밥부터 회복하세요'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영양제보다 난임 시술보다 우선 집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하셨다. 건강한 집밥이 회복되어야 내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내 몸이란 집이 잘 갖추어져야 아기도 찾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나는 집밥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벌써 2년 전의 이야기다. 우연의 일치인지 정말 집밥의 위력은 대단한 것인지 나는 그 이후로 반년만에 아기가 생겼고, 지금 그 아기는 집밥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엄마에 의해 먹방 요정으로 자라나고 있다.


물론 나 또한 몸이 너무 아프고 지칠 때는 배달 음식에 의지하기도 한다. 가급적 집밥을 만들어 먹으려 노력할 뿐이다.


아기를 낳고 난 이후 삶에서 시간이 멸종되는 경험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는 시간을 쪼개 나를 위한 간단한 요리라도 만들어 먹는다. 반찬 가게도 좋고, 배달음식도 좋지만, 나를 위해 방금 만든 뜨끈한 음식은 나의 몸뿐만 아니라 내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는 느낌이다. 단, 스스로 지치지 않도록 짧은 시간, 되도록 적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선택한다. 요새는 워낙 인터넷에 좋은 레시피가 많아 간단 레시피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때론 마음보다 몸이 더 먼저일 때가 있다. 내 몸을 스스로 잘 챙기고 보듬어줘야 내 마음 또한 위로를 얻는다. 우리에게 주방이 필요한 까닭이다. 힘들고 지친 날에 배달을 위한 전화기를 들지 말고, 앞치마를 들어보자. 10분 안에 할 수 있고, 재료 하나만으로도 할 수 있는 훌륭한 레시피도 많다! 10분 요리를 위한 체력과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다. 10분이 주는 만족감과 행복은 1시간을 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위한 요리를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위한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를 위한 존중이 깔려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존중이 회복될 때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주방이 필요하다. 삶이 힘겨운 날에는 더욱.





+ 글 내용의 실천을 위한 간단한 양배추 덮밥 요리를 소개해본다.


고유의 레시피가 아니라 아마로니 블로거님의 레시피를 조금 변형해보았다.






1. 양배추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식초 넣은 물에 7~8분 놔두면 잔존 농약이 제거된다고 함)

2.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넣고 마늘 기름을 만든다.(대파로 파 기름도 가능)

3. 양배추와 고춧가루 1스푼 정도 넣고 달달 볶는다.

4. 양념장을 두른다.(아빠 수저로 간장 1, 맛술 1, 멸치액젓 1 올리고당 0.5, 액젓 없으면 패스)

5. 밥과 비벼 먹는다.



약간 닭갈비에서 양배추만 빼먹는 느낌이 난다.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소고기를 추가해 먹어본 적도 있는데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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