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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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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pr 16. 2023

4월 16일 (토) 감사일기


1. 호두를 아침에 봐주겠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호두가 학교를 따라간다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두고 갔다. 점심 즈음 전화한 호두는 엄마가 가버린 걸 알아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고 전했다. 나 또한 오늘 비가 와서 호두가 아침 내내 집에서 티비만 봤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고 많이 속상했다. 남편이 잘 놀아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에 데리고 가서 함께 놀아줄 걸 그랬다. 집보다 넓은 공간,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호두도 즐거웠을텐데 말이다.


미안한 마음에 호두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서 놀아주려고 노력했다. 호두는 신나게 뛰어놀다가 너무 피곤해서 초저녁부터 잠이 들었다.


하루종일 거의 쉬지 못해서 많이 피곤하지만, 호두가 아직 어릴 때 많이 놀아줄 수 있어 다행이다. 많은 돈을 벌진 못해도 저녁 시간, 주말에는 아이와 놀아줄 수 있는 직장을 가졌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2. 엄마 돌아가신 뒤 한동안 장문의 글을 멀리하고 살다가 최근에서야 점점 장문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금 장문의 글을 시작한 나에게 구독자들이 보내주는 피드백이 참 감동적이었다. 세상에 몇 사람이나 되든 내 글을 기다려주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나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도 글을 쓸 수 있다.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한 사람 이상 있다는 그 사실 자체에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내가 글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고, 아주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하다.


3. 아이패드를 살까 말까 1월부터 계속 고민해왔지만 핸드폰만 오래 봐도 편두통이 와서 아이 패드 사는 건 다시금 접었다. 그것보다 종이에다 연필로 글씨 쓰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정신 건강에 더 좋겠단 생각이 든다. 또 마음이 언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덥석 사지 않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태도에 감사.


4. 삼촌이 엄마 일 이후로 내가 겪고 있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연락해주셨다. 엄마 사후에 생긴 채무와 재산으로 인해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서 지혜롭게 처리해야할지 고민이 많다. 머리가 좀 아픈데 삼촌께서 어려운 일들을 도와주고 싶어하셔서 감사하다. 그래도 하나님께 더 기도하며 가장 좋은 방법을 보다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다. 채무만이 아니라 채무를 감당할 조금의 재산도 남겨주셔서 내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해주신 엄마께 감사.


5. 큰맘 먹고 냉장고를 정리했다.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오랫동안 미루어온 일을 열심히 처리한 내가 대견하다. 고생한 나에게 좋아하는 블랑 맥주 한 캔을 선물해줬다. 조미된 것들 먹는 것을 별로 안좋아해서 사실 안주도 없이 먹는다. (그냥 아무 조미 없는 오징어는 좀 먹고 싶은데 팔지를 않는다.) 술을 잘 먹지도 그닥 좋아하지도 않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맥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6. 오늘 짬짬이 남는 시간에 빠르게 공문을 처리했다. 갈수록 속도가 붙는다. 수많은 공문을 처리하면서 일의 우선순위를 배울 수 있어 좋다. 교무 2년차. 여전히 내가 감당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지만, 그래도 학교의 대부분의 일을 다 경험해보며 젊은 날 경험치를 많이 쌓을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나는 좋은 스승에게 좋은 과외를 받고 있는 거다.


7. 진아가 사준 블루투스 키보드. 복직할 때 예쁜 키보드 쓰라고 사준 건데,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요즘 최고 잘 쓰고 있는 거 같다. 감사일기 쓸 때 자기 전에 화장대에서 마구 키보드를 두드린다. 키보드가 있어 휴대전화로 감사일기를 빠르게 많이 쓸 수 있어 감사.


8. 요즘 수국과 작약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정말 기쁜 일이다. 꽃을 볼 때 내 마음이 환해진다. 내 마음의 불을 켜주는 존재가 있어 감사하다.


9. 어제부터 종종 허송세월을 보낸다. 그래도 평일의 미칠듯한 치열함을 벗어나 노닥노닥 거리는 내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좋다.


10. 이제는 성능이 가물가물한 나의 전자책. 4년은 족히 넘은 거 같다. 긴 세월동안 나의 독서 생활을 든든히 지원해준 나의 전자책이 있어 감사하다.


11. 행정사님은 까칠한 성격이시지만 나에게는 잘해주신다. 한참 어린 성격이니 내가 늘 낮은 자세를 취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마음에 드시는 건가 싶다. 우리 학교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시간동안 행정사님과 서로 고마운 기억을 많이 남기고 싶다. 이 부분을 두고 기도해야겠다.


12. 기도 덕분에 토요 돌봄 강사님들을 모두 좋은 분들을 만난 거 같아 기쁘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시고, 늘 도와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13. 토요돌봄에서 학부모로 인해 가끔 껄끄러운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정식적인 절차의 소중함을 학부모님에게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상할 때가 많지만, 정도를 지키려는 내 노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욕심내지 않고 그 정도로도 만족해서 다행이다.


14. 최근 나의 직업은 여러 매체에 대두되며 많이 까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교사 하기 힘든 시절이라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며 직장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고 내가 이 자리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한다. 사회의 시선이 어떠하든 나는 내 갈 길 가면 되는 거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 감사.


15. 올해 계획된 밴드의 공연이 무려 12개라는 것에 입이 떡 벌어졌고, 아니 이렇게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돈 주고 노래 부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노래부르는 곳에 사람들이 와준다는데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하니 또 괜찮다. 정 어려우면 호두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냥 즐겁게 일년 보내려 한다.


박혜란 박사님의 영상이 힘이 됐다. 바쁜 엄마라서 미안해 하지 말고, 엄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라고.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호두가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펼치며 영혼을 마음껏 펼친 채 살아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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