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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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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Apr 18. 2023

4월 18일 (화) 감사일기

1. 삶은 꼭 매일 내게 새롭게 얽힌 실타래를 던져주는 듯하다. 어제까지 좀 풀릴 것 같던 실타래를 쥔 상태에서 새로운 실타래를 받는다. 모든 실타래를 완전히 풀려는 욕심 자체를 버려본다. 그런 욕심 자체가 교만이니까. 나는 신이 아니다. 그저 실타래를 풀어보려 노력하는 그런 시도들이 의미있는 것일뿐 애초에 풀릴 수 없는 것이란 내려놓음은 내 정신 건강에 유용하다.   

   

교장선생님은 여러 가지로 악명이 높으신데, 내가 가장 많이 들은 것은 실무자들은 쥐잡듯이 잡으시나 실무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온화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으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일을 꽤 자주 당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도 매우 단호하게 나에게 교사들에게 무리가 될 수 있는 일들을 해오도록 요구하셨고, 무거운 마음으로 교장실을 나와야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선생님들에게 전달해야 할지, 또 강한 반발들을 중간에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오늘은 좀 큰 실타래를 받은 느낌이다. 하지만 선생님들과 같이 협의해나가며 이런 어려움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생각해보아야겠다. 뭐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닥쳐진 상황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시간의 흐름과 하나님께서 마침내 흘러가게 하실 강물의 흐름, 선생님들에게 주실 지혜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올해 나의 가장 큰 목표는 그 어느 것에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물처럼 유유히 흘러 12월이란 섬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곳까지 헤쳐나갈 나의 유영이 너무 힘겨워보이지 않고 우아해보였으면 좋겠다. 나는 부모님께 그렇게 배웠다. 힘든 일을 당할 때 그 일에 파묻히기 보다 유유히 유영하기. 부모님께 받은 정서적 유산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자. 기도하며 그저 흘러가자.      


2. 오늘 연수 참여 출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내가 아는 두 선배님을 만났다. 두 분은 매우 상반된 성격을 가지신 분이다. 한 분은 자신의 완벽한 업무 성사를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분이고, 한 분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마음으로 둥글게 둥글게 자신과 주변을 만들어가는 분이다. 그리고 나는 그 두 분과 모두 근무했다. 연수가 끝난 후 한 분은 쓸쓸히 자리를 지키시고, 한 분은 사람들로 북적북적이는 모습을 봤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두분이 업무 앞에 있을 때는 이런 미래까지 생각하시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업무 스타일로 인해 두분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두 분의 모습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하루였다. 무엇이든 관찰하고 깊게 사유하면 좋은 지혜가 된다. 감사하다. 그리고 오늘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 학교 업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3. 요즘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많다.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좀 더 들어줄만한 이야기도 다 들어주지 못한 것 같다. 우는 시호와 지웅이를 가르치기보다 좀 더 다독여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걸..... 아직 유치원생의 티를 벗지 못해 아기처럼 엉엉 우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 계속 남는다. 이렇게 아픈 저녁은 내일 아이들에게 더 잘해줄 밑거름이 된다. 많이 아파하고 내일은 더 잘해주자. 그렇게 반성하고 나아지자. 감사하다.      


4. 오늘은 출장으로 인해 학교에서 일찍 나와 호두의 발레 수강 시간을 기다려주며 발레 학원 밑의 카페에 와서 글을 쓴다. 원래 5분 정도 걸어가야 있는 스타벅스를 주로 애용했다. 왜냐하면 개인 카페에 비해 좀 더 건조한 분위기라 방해받지 않을 수 있으며, 여러 인파에 파묻혀 군중 속의 1인이 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좀 더 용기를 내어 발레 학원 바로 밑에 있는 카페에 왔는데 거리가 가까워 좀 더 편안하기도 하고, 사장님과 너무 가까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항상 새로운 것들에 시도해보는 내 모습이 좋다. 다음 주 내가 어디로 갈지는 발길이 이끄는대로 결정해야겠다. 어찌되었거나 오늘의 새로운 시도 좋았음! 감사!   

  

5. 커피는 어느 곳에서든 마시기만 하면 작은 안식처를 만들어 준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의 여유가 참 좋다. 쉴틈 없이 바쁜 일상이지만 커피를 마시며 숨도 돌리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감사.      


6. 오늘 출장 가면서 산을 바라보니 같은 초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좋은 충격을 받았다. 하나님은 참 아름다운 예술가이다. 자연에는 정말 같은 초록이란 게 없다. 저마다의 다른 초록 색감으로 눈이 한시도 지루하지 않다. 결국 자연을 많이 바라보는 것이 아이의 창의성과 예술 감각을 키우는 데에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호두를 어떻게 키워나가야할지 늘 고민이 많지만, 매일 실패하고 깨달으며 조금씩 나의 육아 방식을 조정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완벽하게 세팅된 것보다 이렇게 협의하고 조정하면서 아이에게 맞춤형 엄마가 되어가는 이러한 방식이 참 좋다. 우리 아이를 세상이 말하는 성공으로 가게 하는 방식을 나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행복하고 속이 꽉 찬 어른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희미한 기대를 가져본다. 왜냐하면.... 적어도 나는 행복한 어른으로 자랐으니까. 내가 행복하니 아이도 행복하게 자랄 거라 믿는다. 감사하다. 사실 지금 내 여러 조건은 행복할 수가 없는 조건인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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