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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08. 2023

인생이란 밸런스게임

기억의 조각들



엄마에 대해 조금이라도 골똘히 생각하는 일은 내게 아직 너무나 따갑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퍼도 힘이 되는 기억이 하나 있다. 그 기억마저 없다면 내가 더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은 기억의 조각.


응급실에 도착할 당시의 엄마는 휴대폰 문자를 쓸 수 없을 정도로 손을 조작하는 게 어려웠고, 말을 매우 어눌하게 했다 한다. 뇌경색이 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엄마는 중환자 응급실로 옮겨졌고, 죽어가는 사람들과 마치 죽음의 카운트 같이 느껴지는 기계음 속에서 맨 정신으로 꼬박 하룻밤을 보냈다. 그때까지도 엄마의 인지는 상당 부분 보전되고 있었다. 중환자실이라 하루에 1회, 17시, 1명만 면회되는 덕에 전날 밤 시누이에게 소식을 들은 나는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겨우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엄마는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마도 면회 시간이고, 가족이 들어올 거라는 걸 알고 계셨기에 기다리고 계셨던 듯하다.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엄마에게 ‘엄마’라고 나지막이 외쳤다. 급하게 고개를 돌리고 동그랗게 놀란 눈으로 나와 눈이 마주친 엄마는 갑자기 왕하고 울어버렸다. 그렇게 어린아이 같이 우는 엄마를 처음 보아서 깜짝 놀랐다. 엄마를 껴안고 말했다.


“엄마, 나 왔어.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엄마 아무 걱정 마. 돈이 얼마가 들든 내가 다 고쳐줄게. 엄마 나 능력 있는 거 알지? 아무 걱정 마.”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몸이 약해 언제 돌아가실까 걱정스러웠고, 겁이 많아 작은 일에도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한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는 저절로 당차 졌던 것 같다. 조용하고 순한 성격과 달리 종종 다부지다는 소리를 들었던 까닭은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내게는 아빠가 부재할 시에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다. 순둥이 같이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누구든 엄마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엄마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물어뜯을 듯 달려들었던 것 같다.


그날도 꼭 그랬다. 나는 궁지에 몰린 엄마를 도우러 간 지원군이었다. 엄마는 간호사에게 다음 날도 다른 가족 말고 꼭 딸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한다. 엄마는 아마도 알고 있던 거 같다. 자신의 머리에서 폭죽처럼 핏줄이 조금씩 터져나갈 때마다 점점 급속도로 안 좋아지고 있는 몸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느낌들.


이후의 기억들은 지우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아팠지만, 엄마의 수호천사가 되어준 그 저녁만큼은 지금도 내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가 보내준 온전한 신뢰의 눈빛. 내가 기억하는 그 빛은 수많은 죄책감과 아픔을 어루만져 준다.


어차피 기억은 항상 편집된 채 존재한다. 그때 그 상황에 대한 완벽하게 사실과 닮은 기억이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기억의 조각을 가장 큰 조각으로 붙잡고 살고 싶다. 그 조각을 손에 꼭 쥐며 오늘 느껴야 할 양만큼의

아픔을 또다시 견뎌본다.




인생이란 밸런스 게임


6시 10분에 소아과 앞에 도착했지만 8번째라니. 심지어 익숙한 듯 간이의자까지 자연스럽게 펼치는 사람을 보며 기함했다. 다들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소아과가 귀한 우리 동네의 진료 조건은 부모의 부지런함이다. 아이의 기침이 시작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연스레 새벽 기상을 떠올리며 슬퍼진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차라리 공평하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진료의 조건이 돈이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라면 나는 서글펐을까. 새벽 기상이라는 노력이 가능한 조건이기에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다. 참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30분 줄 서느라 아팠던 허리도 조금은 괜찮아진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거울 땐 마음의 브레이크를 살짝씩 밟으며 차분함을 조금씩 찾으려 노력해 본다. 마음이 너무 우울해 곧 바닥에 닿을 것 같은 날은 소소한 즐거움의 매트를 차근차근 쌓는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너무 좋고 너무 싫은 일들은 나를 출렁이게 하니까.


순도 100%의 물질이 별로 없듯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짜증 나고 사랑스러우며 진절머리 나고 재밌는 거 같다. 거의 한 가지 특성만 가지고 있진 않기에 너무 짜증이 날 때는 한 번 두 번 계속 그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티끌만 한 좋은 점이라도 가지고 있을 테니. 아니면 그냥 경험 하나 추가했으니 됐다 생각해 보면서.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벌써 지옥이 되어 작은 불씨에도 활활 타올랐을 거다. 뭐라도 건졌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순간부터 그나마 버틸만해지곤 한다.


새벽부터 바쁜 하루였지만, 평화로운 저녁이 서서히 찾아온다. 달라지는 빛색깔에 마음이 조금은 노곤해진다. 사실 평화로울지 자신할 순 없지만, 언젠가 찾아올 평화의 순간을 기다린다. 기다리면 곧 찾아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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