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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l 16. 2023

언어는 왜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일까요

‘랑과 나의 사막‘


친구가 별말 없이 2월에 선물해 준 책을 7월에 되어서야 읽었습니다. 먼저 읽은 친구에게 재밌었냐 물으니 그저 씨익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틀 만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슴이 뻐근해진 상태로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져옵니다. 뭐라도 써야지만 이 뻐근함이 멈출 것만 같습니다.


어떻게 언어는 이다지도 아름다운 것일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번역하여 종이에 내어놓는 모든 작가들을 사랑합니다. 요즘 전 천선란 작가가 내미는 문장의 아름다움을 탐독하며 진심으로 언어의 아름다움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슬프고 절망적인 순간, 어쩌면 저급하고 단순한 욕 한 마디로 끝내도 될 그 순간을 소설가들은 끊임없이 사유하며 귀한 언어로 변환합니다. 때론 한 문장으로, 때론 한 권의 책에 달하는 분량의 문장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많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언어의 아름다움을 다음 인류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책 속에서 보았던 보석 같은 빛들을 저는 제 딸에게 대화로, 책으로 넘겨줍니다. 그 아이의 머릿속에 그 보석들이 알알히 들어박혀 그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길. 그 말을 들은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말을 전하길. 그래서 세상이 마치 공기처럼 조금씩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차오르길.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고, 나의 입으로 흘러나오게 할 수 있기에…. 저는 독서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한 책을 만난 저녁은 행복감을 이불 삼아 덮고 잠들곤 합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서.


(스포가 없으니 이 책을 읽을 분들이 안심하고 읽으셔도 괜찮아요.)


이 책의 주인공은 로봇입니다. 사막이 되어버린 미래의 지구에 살며 자신의 반려인인 ‘랑’의 죽음을 이제 막 겪은 로봇 고고. 고고는 사막 어딘가에 있다는 과거로 가게 해주는 홀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어린 왕자처럼 고고는 여정 속에서 중간중간 여러 존재를 마주치며 자신의 사유를 완성해 갑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모래 폭풍우와 뜨거운 태양볕을 뚫고 언제 멈출지 모르는 몸으로 점점 과거로 데려다준다는 홀을 향해 나아가는 고고. 고고가 정말 그 홀을 발견했는지, 결말은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해 드릴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어요. 이렇게 결말을 만들 수 있는 천선란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며.


요몇주 저는 좀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는데, 그럴수록 소설을 자주 읽었습니다. 실제로는 그 어떤 여행을 할 수도 없는 학기 중이지만, 저는 자주 소설 속 여행을 하며 또 다른 차원에서, 다른 존재가 되어 세상을 헤매며 다녔어요. 작가들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언어의 우주 속을 여행하며 차츰차츰 현실의 고통을 소중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은 꼭 현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하는 마취 주사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언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대한 감탄으로 시작했던 글이 횡설수설 끝이 납니다. 그래도 꼭 랑과 나의 사막이란 근사한 책을, 제가 생각하는 독서의 의미를 꼭 나누어보고 싶었어요.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요일 저녁입니다. 그래도 책을 사기 위해 돈을 더 벌 수 있어 감사하다 생각해 봅니다. 책을 사기 위해 씩씩하게 월요일 출근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아름다웠던 문장들을 아래에 남겨 놓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단계를 마구잡이로 뛰어넘고 순서를 뒤바꾼다. 하지만 이건 위험하다. 거치지 않은 감정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몸에 쌓인다.


’마음에 드는 걸 가져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마음에 드는 걸 선물해야 해. 그래야 너한테 준 걸 내가 보고 싶어서 자꾸 너를 보러 오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랑은 내게 내민 조개껍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랑이 준 조개껍질을 받아 다시 랑의 손바닥에 올려주었다.

’그럼 랑이 이걸 가져야지. 나도 이게 마음에 들거든.‘


단 한 번에 애처로워질 수 있는 저 눈은 인간의 무기다.


선명했던 랑의 마음은 점점 알 수 없는 세계로, 피와 살로 이루어지지 않은 나 따위는 접근할 수 없는 복합적인 세상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랑은 몇 번이나 자신을 분리했다 멋대로 조합했다. 이 표현을 쓴 건 조이다. 조가 나에게 말해준 것이다.

‘랑은 스스로를 다시 맞추고 있는 거야, 진짜 자신의 형태가 무엇인지, 어떤 형태가 자신과 더 잘 어울리는지 알기 위해서’


‘속에 주먹만 한 알갱이가 있어.’

조가 죽고, 야외 의자에 두 다리를 끌어안은 자세로 앉아 있던 랑이 말했다. 반나절 만에 처음 꺼낸 말이었다.

‘그 알갱이가 내 속을 막 두드리면서 돌아다녀. 나는 그게 무척 거슬려. 고고, 이게 뭔지 알아? 이게 울음덩어리야. 나오고 싶어서 난리가 났지. 근데 버틸 거야. 울지 않을 거야, 나는.’


밖으로 흐르지 못하는 눈물은 체내에 흡수되어 몸을 무겁게 만든다. 그리울 때 랑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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