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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Nov 15. 2023

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

삶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매일 새로운 문제가 팡팡 터져 나온다. 앞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나를 얼마나 어렵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미래를 향해 단 한 발자국도 옮길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 맨 정신으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연예인들은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는 것일까.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

 

그 한문장을 보는 순간 머리를 한 대 두드려 맞은 듯 멍했다. 노작가는 알고 있었다. 인생은 절대 뜻대로 되지 않을 거란 걸. 아무리 내가 컨트롤하려 해도 제멋대로 흘러가버리는 것이 인생임을. 그저 나란 작은 존재가 인생을 향해 엿먹일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그 정도일뿐이라는 걸.

 

인생이 아무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씨도 뿌리지 않은 땅에 싹이 날 순 없는 법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성실을 소중한 덕목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하루라는 시간에서 내게 떨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부지런히 엉덩이를 떼고 움직이며, 눈앞의 일에 집중한다. 그렇게 쌓인 일초, 일분, 한 시간이 결국 다양한 분야의 내 실력이 된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기에.

 

올해 나는 환경 동아리 아이들과 기후 위기에 대해 꾸준히 이런저런 활동을 해왔다. 보고서를 쓰기 위함도 아니고, 이런 활동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복잡한 학교 사정이 있지만, 말이 길어지니 거두절미하기로 하고, 어찌 되었거나 누군가는 환경 교육을 아이들에게 꾸준히 시켜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반 학생들도 아니고, 강사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적당히 하면 되었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차피 보내야 하는 시간들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과 기후 위기에 대해 연구하여 프로젝트 연구를 진행하고 발표해보도록 하기도 하고, 거리로 나가 캠페인 활동도 해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스 체험을 위한 환경 축제도 준비 중이다.

 

끝없는 삽질이라 생각했던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연말이 되어가니 무언가 보이지 않는 성과들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하는 걸 보기 어려운 아이가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기후 위기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을 보았다. 방과후 시간 내내 휴대폰을 하는 모습이 자주 보여 걱정스러웠던 녀석이 파워포인트 만드는 것에 진심인 모습도 보았다. 나 또한 앞서서 이끌다 보니 활동을 구성하고 계획하는 것, 수준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 아이들이 열광할 수 있으면서도 교육적인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에 점점 달인이 되어가고 있다.

 

신기하다. 쓸모 없다 생각했던 시간의 콘크리트 사이에 서 우리 아이들과 나의 마음이 민들레가 되어 콘크리트를  뚫고 자라났다. 마음이란 놈은 그런 거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진심을 다하기 시작하면 어떤 곳에서도 자라나는.

 

내년 업무 분장은 어찌될지 벌써부터 떨린다. 또 얼마나 새로운 문제가 골머리를 앓게 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인생이 되는대로 흘러가더라도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에만 성실하자는 마음 하나만 꼭 붙잡는다. 알 수 없는 상황에 인생이란 놈이 날 내동댕이 쳐도 그 마음 하나만 꼭 붙잡으면 연말에 또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진심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코끝 시린 겨울이다. 겨울에 만난 진심들 덕에 춥지만은 않다. 올해 겨울은 이 진심들도 버텨야겠다. 아무도 모르지만, 이렇다 할 보이는 성과는 없지만. 내가 알고 있으니 어쩌면 가장 좋은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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