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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02. 2023

나는 미움의 옷을 입고


평안한 주말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아침마다 이불 밖이 두려운 것을 보니 방학이 가까워져 오는 건 맞나 봅니다. 저는 지난주에 누군가와 갈등을 겪으며 마음이 불편한 시간들을 지냈습니다. 그 시간들을 마음속에 알처럼 품으며, 그 시간 속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지도 모르는 거절이 제게는 며칠 동안 크게 숨을 몇 번이나 쉬고 마음을 먹어야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네요. 어려운 일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요. 이 글은 거절을 통해 제가 배운 것들을 적어본 글입니다. 저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저는 이 업무가 제가 할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해야 하나요?”





인간관계에서의 불편함보다는 차라리 일을 하나 더 하고 말았던 나의 성격과 정반대의 말을 했다. 어쩌면 이 불편함은 앞으로 오래도록 신발 속 모래처럼 직장에서의 삶을 까끌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했다. 최선이었다.





서이초의 막내 선생님. 선생님을 보낸 지 4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교실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그녀의 소식은 교사로서의 나, 선배로서의 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으로서의 나에게 여러 가지로 충격을 주었다. 





한 교사 커뮤니티의 댓글이 잊히지 않았다. 지금 거절하지 않은 나의 선택은 뒤에 올 누군가에게 돌을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불편해도 꾹 참았던 시간. 미움받을 용기가 차마 없어 차라리 나 자신이 힘들고 말았던 순간들. 그때의 내 선택들이 후회스럽다. 





그녀를 보내고 나는 다짐했다. 순하고 헌신적인 품성을 타고났지만, 후배들을 위하여 좀 더 합리적이고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내 뒤에 올 누군가의 미움을 먼저 감당해 주고, 그가 받을 미움을 조금은 가벼이 만들어주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최근 행정과 교무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생각되는 새로운 업무의 공문이(그러나 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당연히 행정의 업무인) 올 때마다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실장님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걸음이 내 업무에도 다다른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업무를 요청하는 실장님의 선 넘은 메시지를 받고 답장하지 않았다. 한참 생각하다가 3일 뒤에 늦은 답장을 보냈다.





“교사의 업무가 아니라 생각하기에 하지 않겠습니다.”


“엑셀 열어 보셨나요? 정말 간단한 협조 업무입니다. 이것도 못해주시겠다는 건가요?”


“예. 업무의 양은 상관없습니다. 제 업무가 아닌 업무는 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이 업무를 맡게 될 교사들을 대표해서 말합니다.”





실장님이 요청한 것은 간단한 업무 협조일지 모르나 내가 볼 때는 그동안 행정실에서 해오던 이 업무를 결국 교사에게 넘기려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나를 해주다 보면, 둘, 셋을 요구할 것이고, 이제까지 보였던 실장님의 행보라면 결국 내 업무의 담당자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 업무의 상당 부분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럼 이 업무를 누가 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건 저도 모르죠. 실장님도 실장님 업무가 아니라 하고, 저도 제 업무가 아니라 생각하니까요.”


“(한숨) 교감선생님과 상의해야겠군요.”





업무로 갈등을 겪은 사람들과 인사조차 섞지 않는다는 그녀의 성격을 생각하면 앞으로 행정실과 꽤나 불편하게 지내야 할지 모른다. 아쉽게도 내 업무는 예산이 많아 상당 부분 행정실과 협업을 해야 하는 성격을 가진 업무이다. 





마음속에 ‘미움받을 용기’를 끊임없이 외쳤다. 누군가에는 미움받을 용기가 스스럼없는 것일 수 있겠지만, 나같이 마음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꽤나 어려운 선택이다. 그러나 그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나는 쓴 입맛을 가지고 실장님과 웃으며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거절하지 못한 스스로를 혐오하며. 그리고 앞서 말했듯 후배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오래도록 가슴 아파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가 거절해야 할, 혹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야 할 순간은 얼마나 여러 번 찾아올까. 삶이란 놈은 원래 만만한 것이 아니므로 잊힐 때마다 들락날락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 모르겠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까끌까끌하다.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지. 불합리함을 거부하고, 신념을 지키며 나라는 사람의 색깔을 분명하게 지키고 살아갈지. 당연히 내가 살고 싶은 사람은 후자이다. 





지금 나는 삶의 중반전에 들어섰다. 하하 호호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그런대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삶의 마무리를 향해 가며 분명한 방향을 세워야 할 때이다. 하루가 갈 때마다 늙어가는 것에 그치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를 지나며 좀 더 자신만의 색깔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의 목소리를 내며, 또 약자이기에 내가 대신 목소리를 내주어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며. 그렇게 세상의 유일한 나라는 목소리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나는 미움의 옷을 입고, 내가 원하는 삶으로의 한 걸음을 내디뎌 본다. 









+ 제가 무척 사랑하는 가수 강아솔이 신보가 발매되었습니다. 

그중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이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다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고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다

나는 나를 외로이 버려두었지



https://youtu.be/APoADxHgwBo?si=PYAHGEVC7Zx5QckD




얼마 전 있던 그녀의 콘서트에서 이 신곡을 듣고 저는 많이도 울었습니다. 

저는 미움받고 싶지 않아 제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며 스스로를 늘 외롭게 놔두었죠.

인생 후반전은 좀 더 미움받고, 좀 더 스스로와 잘 노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도 혹시나 내 글이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내 글을 좋아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으로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하며 제 글을 읽어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궁금해하고 겁내했죠.

이제 그런 일들도 그만하려 합니다.

저는 제 글이 누군가에는 위로가 될 거라 믿어요. 

그리고 그 한 분을 위해서라면 저는 글쓰기를 놓지 않을 거예요.

늙을 때까지 오래도록 누군가의 위로가 되는 글을 고이 접어 비행기를 날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할게요. :)

글로 또 만나요. 끝까지 읽어주신 당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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