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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09. 2023

존경이란 감각



따뜻해서 슬픈 나날


잠깐만 밖을 나갔다 와야 하는 상황이라 패딩도 안 입고 잠깐 밖에 나갔는데, 너무 따뜻해서 놀랐어요. 17도까지 올라가는 날이래요. 개구리가 봄인줄 알고 착각해서 알을 낳았대요. 곧 추위에 얼어죽을 알과 올챙이들이 안쓰러워 마음이 쓰이는 날이에요. 저는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지구의 황금기(인간 관점으로)를 온몸 가득 느껴본 사람인데, 우리 아이와 내 제자들이 어른이 된 세상은 어떨까. 이 아이들이 너무 걱정이 되네요. 아이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적어도 1인분의 환경 보호는 책임지며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미나를 위하여


김슬아 작가에게 배운 표현인데요. 저는 어제의 나는 예나(예스터데이의 나란 뜻), 오늘의 나는 지나(지금의 나란 뜻), 미래의 나는 미나라고 부릅니다. 세 자매는 매우 긴밀히 얽혀 있어요.


어제부터 아이가 아빠와 멀리 여행을 떠나서 저에게는 지난 저녁부터 지금까지가 황금 휴가였으나 부지런히 놀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고 간간히 놀며 지냈어요. 지나가 너무 행복하면, 미나가 매우 고통받을 거 같아서요. 미나에게 행복의 조각을 보내주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네요. 그래도 지나도 소중하니 시간이 작게 걸리는 즐거운 일들을 종종 했습니다. 그렇게 예나와 지나와 미나가 되도록 사이좋게 지내게 하기 위해 노력해요. 어느 한쪽으로 행복이 몰리면 나머지 두 명이 고통 받으니까요.


어쩌면 제게는 워라벨보다 더 중요한. 세 자매의 밸런스. 그 밸런스를 잊지 않으며 지나는 하루를 힘차게 보냅니다.





열등감의 시간을 지나


평상시 제 마음은 많은 물건을 규칙 없이 쌓아놓은 방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 모든 것을 멈추고 오래도록 생각해야 해요.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을 해석하고, 유형에 맞게 분류하며 정리해야 다음 행동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거든요.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게 오래도록 있는 제 모습을 가족들이 답답해할 때가 있어요. 저에게는 꼭 필요한 부팅의 시간이 저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치 하릴없이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좀 얄밉게 보여도 제 마음은 청소가 자주 필요한 편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학교에 저와 정반대의 후배가 있어요. 그 후배를 보고 있노라면 셕셕셕, 착착착이란 단어가 생각나요. 무엇을 하든 명쾌하고 다음 걸음, 다음 걸음을 굳이 오래도록 생각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확답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후배를 바라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냐는 생각을 몇 번 했는데,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속에서 ‘나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 나는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야.’라는 반론이 메아리치더군요. 그렇게 몇 번의 열등감이란 언덕을 지나고 나니 저란 사람이 이해되기 시작했어요.

 



나는 생각의 흐름이 느린 사람. 오래오래 생각해야 하지만, 그렇게 정해진 것들에 대해 분명한 확신이 있는 사람.

 



후배로부터 느끼는 열등감은 참 쓰라린 경험이었어요. 그래도 열등감을 느낄 때마다 제 안의 변호인이 툭 튀어나와 제가 가진 장점과 유일함을 외쳐대니 오히려 저에 대해서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림자를 보아야 내가 가진 형태를 분명히 볼 수 있죠. 후배와 함께 일하는 시간 동안 저는 저란 사람이 가진 형태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이란 감각


업무와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로 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어제는 서영 언니와 함께 밥을 먹으며 한참 서로의 힘듦을 하소연했네요. 왜 이렇게 교사로서의, 학교 안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을까. 서로를 걱정해 주고 푸념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네가 떠나면 어쩌지?

저는 이제 5년 차가 되어 학교를 떠납니다. 벌써 제가 없는 학교를 걱정하는 언니의 마음이 고맙고 미안해요. 앞으로 제가 가야 할 학교에서의 삶도 결코 녹록하지 않은걸요. 무엇보다 그곳에서는 서영 언니가 없지요.

 



걱정스러운 마음이 점점 차올랐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서영 언니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의 기쁨과 감사함을 절대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절박함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언제든 열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서 언제든 문을 열면 언니를 볼 수 있어요.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미래가 두려워도 그 미래에 지금의 행복을 뺏기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드니 발령 생각이 날 때마다 자꾸만 자신에게 말해줍니다. 서영 언니가 있어서 진심으로 좋아. 언니랑 같이 근무한 게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야.

 



 

표정과 언어를 가진 존재인 우리는 서로를 향해 표정을 짓고, 말을 하며 서로를 알아갑니다. 웃으면서 좋은 대화를 하고 있어도 왠지 꺼려지는 사람이 있고, 슬픈 표정으로 어려운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더 호감을 갖게 되는 사람이 있죠. 그런 걸 보면 사람은 표정과 언어란 겉껍데기만으로는 결코 다 이해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이 돼요. 영혼을 가졌기에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오감으로 느낍니다. 표정과 대화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많은 것들을 그 순간의 공기와 미묘한 감각으로 느끼죠.

 


오감으로 느끼는 서영 언니는 제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참 좋은 사람이에요. 서영 언니와 있을 때 우리 사이에 흐르는 공기에 대해 명확히 언어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14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저를 걱정하고, 제가 당도한 문제들을 마치 자기 일처럼 화내고 고민하는 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80억 명의 사람이 사는 이 지구에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하늘의 별 따기이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인정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서영 언니의 무엇이 나를 이끄는 것일까? 바쁜 워킹맘이라 사람을 만날 시간이 무척 적어서 정말 소수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는 내가 서영 언니는 꾸준히 만나는 이유는 뭘까.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하는 사람. 자신보다 훨씬 약자인 사람이라도 마치 강자를 만난 듯 존중하는 사람. 세상은 돈과 명예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어려움을 나누어야 할 때 동생들을 위해 큰 덩어리의 골칫덩이를 당당히 차지하는 사람.

 



14년 동안 바라본 서영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서영 언니는 조용하고 교실 안에만 머무는 사람이라 많은 사람이 서영 언니의 참모습에 대해 잘 모릅니다. 서영 언니와 두 번이나 같은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서영 언니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만나는 인간 삼라군상들 속에 있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정답일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철저히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 자신의 편안함만 추구하느라 모든 일에 태만하여 동료를 힘들게 하는 사람, 두뇌 회전이 좋아 영양가 있는 일들만 골라 하는 사람.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데 성실하게, 배려하며 살아가는 삶이 뭔 의미가 있나, 저 사람들이 더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데. 어리석은 저는 자주 흔들립니다. 그럴 때마다 서영 언니를 떠올립니다. 언니는 저처럼 이렇게 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함께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을 가졌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언니 삶은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요.

 



남들 보기에 번쩍이는 것 없는 삶이라 해도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서영 언니처럼 살아보고 싶어요. 잘 부탁하지도 않는 언니이지만, 언니가 하는 부탁이라면 램프의 지니가 되어 뭐든 들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고집 센 나란 사람의 마음을 이 정도로 움직이는 거 보면 언니는 참 특별한 사람이 분명해요.

 



존경받는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어요. 많은 사람에게 존경 사람은 싫어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다는 건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니까. 제가 의미 있다고 인정하는 소수의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진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라 딱 그 정도가 좋을 거 같아요.

 



몇 주간 얌체 같은 사람들을 바라보느라 조금은 지친 시간을 보냈어요. 그 시간을 감기처럼 겪으며, 저렇게는 정말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누군가에게 환멸의 감정을 선사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아요. 나를 만나는 누군가가 따뜻함과 존경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하고, 저를 또 만나고 싶어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제가 겪는 이 지독한 감기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겠죠. 뭐든 결과보다 과정이 더 즐겁고 소중한 것이니까. 지긋지긋해도 이 시간 속에 숨겨진 보석들(서영 언니 같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발견하며 지내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꼭 가져야 하는 감각이 있다면 존경할 만한 사람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이라 생각해요. 그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을 멘토로 삼으며, 갈림길에 들어설 때마다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감각.

 



내게 있는 존경이란 감각을 닦아보는 주말입니다. 다음 주에는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는 결국 서로를 존경해야만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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