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Dec 16. 2023

나만의 서사를 써내려 가는 일

한 해 동안 교무부장으로 살며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올해는 교무 2년 차라 일이 손에 익을 법도 한데, 여전히 버거운 걸 보니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스스로 물었습니다. 교무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교무를 맡았을 때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가 오랜 시간 스트레스받으며 할 일들을 내가 약간의 노력으로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차가 쌓이다 보니 어쩌다 이런저런 부장을 해온 경험, 배운 기술, 학교 전체를 보는 시야를 잘 이용해 보면 어떨까. 나의 작은 배려가 누군가에게는 큰 안정감, 학교에 내 편이 있다는 마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교무 업무를 해나갔던 시간은 괴롭기도 했지만, 동료들과 만들었던 시너지들은  유의미했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정답을 맞히기보다 성장을 선택했던 일. 모두가 괴로운 상황에서 목소리는 내야 했던 일. 같은 일도 어떻게 간단히 할 수 있을지 서로 머리를 맞댔던 일. 학교 선생님 한 명 한 명 모두 장점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의 장점을 부러워하면서도 배우려 했던 일. 그 상황 속에 있을 때는 몰랐으나 빠져나와 보니 소중한 시간이었네요.


생각해 보니 교무는 리더가 아니라 펠로우에 가까웠고, 모든 업무의 담당자들을 잘 펠로우 해주며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정확하게 공을 패스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합을 맞춰 만든 골은 서로의 성장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막대한 교무 업무의 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6살 아이에게 온전히 퇴근 시간을 내어주는 제게 그 많은 업무량을 소화할 재간은 없었지요. 제가 택한 방법은 그저 관례적인 일들은 대강하고, 모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일은 신중히 하며 완급 조절을 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 안에 도저히 일을 마칠 수가 없었거든요.


돌아보니 모든 일을 잘 해냈다 할 순 없네요. 처음부터 목표가 모든 일을 잘 해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큰 문제 없이 한 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자는 작은 목표가 있었고,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거라지요. 어쩌면 교무의 일은 도구였고, 저는 그 도구를 통해 여러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어요. 때론 그 관계가 힘들었고, 또 어떤 때에는 유쾌해서 진하게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은 제 안의 사람 도감에 여러 종류의 사람을 채우는 시간이었어요. 수많은 사람과 살다 보면 여러 돌발 상황이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의 사람 도감을 펼쳐 보고는 해요. 이럴 때는 내가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실패했었지? 그렇게 살펴보다 보면 예전보다는 좀 더 세련되게 행동할 수 있었어요. 결국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길은 여러 사람을 겪어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교사에게 대혼란의 시기입니다. 매해 동료의 구성과 학년, 업무가 바뀌기에 뽑기 판 앞에 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지요. 매년 실패하면서도 늘 꿀 업무를 꿈꾸는 저를 보며 친구들이 비웃더군요. 네가 경력이 몇 년 차인데 꿀 업무를 꿈꾸냐며. 꿀 수는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떤 동료와 일해야 할지,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저 어떤 상황 속에 있든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시간이든 주인공으로서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면 또 다른 우정, 새로운 경험치를 얻게 될 테니까요. 저에게는 그런 마음들이 이 혼란의 시간을 견디게 하는 위로네요.


실패하더라도 내게 찾아올 새로운 우정을 꿈꾸는 저는 여전히 대책 없는 로맨티스트인 것 같습니다. 좌절하더라도 매일 기대를 품고 살고 싶어요. 기대 없는 삶은 내일을 살아갈 이유조차 잃게 하니까요. 힘내자는 말도 버거운 시기. 누군가의 비웃음 따위에 굴하지 않고 꿈을 꿉니다. 겨울의 꿈이 봄을 만들 듯 제 인생에도 봄 같은 시간이 또 오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존경이란 감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