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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22. 2023

연말 정산보다 마음 정산

저녁에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잠시 울었습니다. 극F인 사람이라 언제든 눈물이 세팅되어 있습니다. 생각이 깊어지면 왈칵 눈물이 쏟아져 버리네요.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 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최은영의 ’밝은 밤’ 작가의 말 중에서






오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오래도록 눈이 머문 문단입니다. 꼭 제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거 같아서 놀랐습니다. 여러 번 천천히 단어를 꼭꼭 씹으며 읽었어요. 






엄마 돌아가신 뒤 지난 1년의 시간. 어쩌면 저도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쏟아져 내릴 물주머니. 어쩜 소설가들은 이럴까. 저도 그런 물주머니로 한 해를 살았네요. 






연초에 발령을 준비하던 제게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느라 가슴 시리게 살지 말고, 그냥 같이 있자며 붙잡아준 동료들이 있었지요. 그 동료들 속에서 부대끼며 참 열심히 한 해 살았습니다. 






12월의 제가 1월의 저에게 돌아간다면 꼭 안아주고 싶어요. 꼭 땅 밑까지 푹 꺼져버릴 것 같이 가라앉는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너는 그 땅 밑에서도 씨를 뿌리고 땅을 일구며 네게 주어진 시간을 절대 허투루 쓰지 않는 아이라고. 그렇게 자란 식물은 함께 있는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 주기도 했다고.






오늘 저녁, 학교 선생님들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어요.








“내게는 지난 이 년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시간의 절반 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고 나머지 시간 동안 『밝은 밤』을 썼다. 그 시기의 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 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는 일은 그런 내가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어 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최은영의 '밝은 밤’ 작가의 말 중에서


오늘 도서관에서 이 문단을 읽는데,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꼭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요.


연초에 엄마께서 돌아가신 뒤, 지난 1년은 성인이 된 이후 보낸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한동안 밤에 잠들 때 내일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잠들곤 했습니다. 그런 날들을 선생님들 사이에서 부대껴 함께 지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했던 시기라 선생님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습니다. 교무의 성수기라 눈 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중간중간 선생님들과 아직 함께 가까이 있는 이 시간을 온전히 누려보려 노력합니다. 


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곧 크리스마스니까요. 크리스마스 앞두고 감사 인사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앞으로 시간이 더 있으니 두고두고 또 인사할 기회가 있겠지요. 


메리 크리스마스! 바쁘셔도 중간 중간 즐겁고 신나시길 소망합니다. 너무 추우니 핫초코가 절로 생각나는 날입니다. 친절함은 당에서 나온다네요. 친절한 크리스마스 되세용.








한 명 한 명의 동료가 저에게는 하나하나의 위로였습니다. 누군가의 빠른 일 처리 덕분에 마감 시간을 잘 마치게 되고,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지친 퇴근 시간에 온기를 품으며 퇴근을 했어요. 재치 있는 한마디에 와하 터지게 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진 우리반 꽉 찬 쓰레기봉투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직접 농사지으셨다는 작두콩 차 한 꾸러미에 마음이 포근해졌고, 지각한 날 조용히 아침 자습 시간 동안 우리 반 아이들을 돌보아준 손길 덕에 마음을 놓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곁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삶을 주고받으며 다시 내 몸을 얻고, 내 마음을 얻었네요. 매일이 철인 3종 경기 같이 고된 삶이었지만, 그렇게 서로의 삶이 교차하는 찰나의 순간들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있었습니다. 



학교를 옮겨야 하는 지금, 저는 사실 두렵습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과의 적응을 많이 힘들어하는 성격 탓에 이동은 미지의 두려움입니다.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어느 곳에도 내가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들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사랑이 한 방향일 수도 있겠지만요.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땅히 내가 베풀어야 하는 마음들을 베풀고 살려 해요. 저 또한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베풂을 받으며 올 한 해의 힘겨움을 이겨냈는걸요. 내년 한 해는 제게 조건 없이 머물렀던 사랑들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니 너무 두렵지만은 않네요. 빼앗길 것이 없으니까. 내가 이미 주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다음 주에는 단체 메시지 말고, 한 명 한 명에게 어떤 점을 배웠는지. 내가 왜 당신을 존경하고 어째서 감사한지에 대해서 짧게라도 메시지를 남겨봐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한 해의 마음을 보내는 마음 정산이 연말 정산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래야 저 또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을 알고 삶을 더욱 긍정하게 될 테니까요. 



한 해의 마지막을 달리는 지금. 누군가에게 마음의 정산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분명 그 사람보다 내가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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