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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30. 2023

누군가에게는 상처, 누군가에게는 추억


2022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파르르 마음이 떨립니다. 저에게는 악몽 같던 한 해였습니다. 무려 1년이 지난 뒤에야 2022년에 대한 소회를 남길 만큼 건드릴 수 없는 큰 상처가 된 한 해였습니다. 



2022년 여름에 아이의 귀에 진주종이라는 종양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아이 나이가 5살이었는데, 보통 돌이나 두돌 이전의 아가들이 중이염 체크를 하다가 발견되는 경우가 흔하다 합니다. 선천적인 질병인데, 쉽게 말하면 종양이 점점 소리뼈 3개를 잡아 먹어가고, 그 소리뼈가 다 녹을 경우에는 청각 장애가 되는 병입니다. 빨리 발견하여 수술할수록 청력이 온전히 보존되는 무서운 병이지요. 저희 아이처럼 늦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고, 설사 5살에 발견되었다 해도 대부분의 청력이 손실되는 경우도 많다 했습니다. 



아이가 건강했습니다. 감기가 잘 걸리지 않았지요. 소아과를 갈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귓 속을 볼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또 안타깝게도 아이의 종양 위치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 속에서 그리 자라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고요. 



7월에 의사로부터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소아과 선생님이 마치 제가 그동안 아이를 자주 소아과에 데리고 오지 않아 아이의 병이 이렇게 악화되었다는 식으로 혼내셔서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을 오래 갖기도 했지요. 나중에야 대형 병원에 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 병이 그렇듯,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이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요. 



진주종 분야에서는 권위자가 계시는 분당차병원을 수소문해서 알아본 뒤 연락했는데, 감사하게도 두달 안에 수술날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 건강에 좋지 않아 많은 부모가 괴로워한다는 CT검사도 받게 되었고요. 수면 마취까지는 시키고 싶지 않아 5살 아이에게 5분만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엄마랑 장난감 사러 간다고 여러 번 다짐하고 아이를 눕혔어요. 엄마가 옆에 있었지만 무서운 하얀 통 안을 왔다 갔다하며 눈만 꿈뻑대는 호두를 보는데 그냥 눈물만 났습니다. 그거와 별개로 검사가 끝나자마자 장난감을 사러 신나게 달려가는 녀석을 보며 안도하기도 했지만요.



9월이 되었고, 아이 수술을 위해 미리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병원 생활이 고되게 느껴질까 투정과 응석을 부려도 무조건 받아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병원 편의점 쇼핑을 시시때때로 했습니다. 몸보다 큰 병원복을 입고  링겔을 끌고 다니는 녀석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했습니다. 



어른들은 부분 마취를 하는 작은 수술이지만, 5살 아이에게는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큰 수술이었습니다. 전신마취 주사약이 들어가면 아이가 눈뜬 채로 죽은 것처럼 마비되는 것이 큰 충격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지라 너무 무서웠습니다. 호두는 참 고마운 딸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신나게 놀아서인지 너무 피곤해서 아이가 마취가 들어가기도 전에 수술 전 대기실에서 잠들었습니다. 



"아이고, 참 착하다."



간호사님께서 잠든 채 전신 마취에 들어가는 아이를 칭찬해주며 아이의 침대를 끌고 들어가셨습니다. 대부분의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전신 마취가 얼마나 무서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지 이미 동의서를 읽어보았기에 수술을 기다리는 내내 떨었습니다. 



전광판에 "9번 수술실, 5살, 김00, 수술중"이라는 문구가 떴습니다. 수술실 앞 대기의자에 남편과 앉아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수많은 수술 환자의 평균 나이가 대부분 50~80대였던 걸 본다면 5살이라는 나이 자체가 파격적이었지요.



"아니, 저 아이는 뭔 병이길래 5살에 수술이래?"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시가 되어 가슴을 파고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를 부르는 간호사님을 따라 수술 후 처치실에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아직 잠들어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깨지 않으면 되니 잘 지켜보고 아이가 깨면 이야기해달라는 말을 듣고 무서워서 계속 기도만하며 아이를 지켜보았습니다. 몇 분 후 자꾸만 깨려고 노력하지만 쉽게 깰 수 없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호두야, 엄마야, 엄마. 호두야, 엄마 여기 있어."



그 몇 분이 너무 길게 느껴졌습니다. 수술로 퉁퉁 부은 아이 얼굴을 만지며 엉엉 울었습니다.



퇴원 후 집에서의 시간도 쉽지 않았습니다. 몇 주간 감기에 걸리면 절대 안되는 상황이라 어린이집에 갈 수 없었고, 먹어야 할 약만 10개가 넘어가 아이의 약을 챙기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가족에게 상처가 되었던 시간이 지나고 12월. 몇 번 글로 적었지만, 엄마가 뇌경색으로 갑자기 응급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 몇 주 뒤 돌아가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반년 안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2023년은 이런 일들로 인한 상처를 오랫동안 가만가만두며 회복을 기다린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다 회복하려면 멀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두르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와 침대에서 자기 전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데, 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나 지난 번에 진주종으로 수술했을 때 있잖아. 그때 너무 재밌었어. 링겔 맞는 것이 신기했고, 엄마랑 편의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좋았어. 엄마가 나 과자랑 장난감 맨날 사줬잖아."



엄마랑 매일 한 침대에서 비좁게 붙어 자고, 병원을 탐방하며 신나게 놀던 일이 아이에게는 마치 여행처럼 신나는 일이었나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시간이 누군가에는 추억이 될 수도 있는 것이구나. 나에게는 아프고 괴로웠던 시간이라도 수술 당사자였던 내 딸에게는 그저 엄마랑 꽁냥꽁냥하며 즐거웠던 시간으로 남았다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무한정 사랑을 주었던 외할머니를 너무도 그리워하는 딸이라 매일 밤마다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게 그리워 몸서리치는 사람을 가졌다는 것 자체도 참 행운인 일이지요.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는 걸요. 비록 함께 한 시간은 적었어도 5년의 시간동안 정말 무한한 사랑을 헌신하며 딸아이에게 쏟아낸 엄마를 저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우기를 마음을 푹 적셔가며 보낸 나의 딸은 평생 잊지 못할 사랑을 마음 속에 새겼습니다. 



시간은 모두의 마음에 다른 기록을 남깁니다. 딸 아이에게 그 모든 것이 사랑에 대한 기록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이제는 저도 그 모든 기록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수술하는 딸 아이가 조금도 힘들지 않도록 헌신했던 나의 사랑, 자신의 딸을 판박이처럼 닮은 손주에게 딸한테 잘해주지 못했던 미안함을 닮아 무조건적인 사랑을 건네 주었던 우리 엄마의 사랑. 그 모든 건 사랑의 기록이 맞네요. 



저는 연말이라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샘이 고장나 시시때때로 자주 눈물이 납니다. 동시에 딸 아이를 보면 어떻게 이런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나에게 왔나 싶어 행복감에 자주 뻐근합니다. "엄마에게 와줘서 너무 고마워."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하며 딸아이에게 제 뻐근함을 설명하지요. "나는 엄마 딸로 태어나서 정말 좋아."라고 말하는 천사 같은 6살 호두 덕분에 또 행복하고요. 그렇게 많이 슬프고 자주 행복한 연말을 보내는 중입니다.



불행은 또 다시 살금살금 저에게 다가오겠지요. 삶이란 그런 거니까요. 그러나 모든 불행을 마침내 사랑으로 바꾸는 삶의 놀라운 힘을 저는 믿습니다. 결국 사랑은 우리를 살게 합니다. 



어릴 때부터 큰 수술을 하고, 엄마를 잃은 우울한 엄마와 지내느라 녹록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내는 내 딸 호두가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살듯, 저 또한 딸 아이를 보며 용기를 내어 살아갑니다. 



결국 사랑. 사랑이 모든 것을 덮을 거라 꿋꿋이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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