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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Oct 07. 2023

다시, 선 긋기 연습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사람


sns 활동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사실 sns 활동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관종의 피가 흐르기에 때로는 누군가에게 주목 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다른 이의 sns를 보며 제 삶과 비교하고 삶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제 마음이 참 싫더군요. 또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참 시간을 빼앗겨버리는 것도 아쉬웠어요. 그정도로 sns를 좋아하지 않는 제가 인스타 계정을 만들어 꾸준히 지켜보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저와 결이 맞아 자주 구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의 사장님이어서 소식을 알고자 인스타 친구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같이 올리는 사장님의 스토리를 점점 구경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 사장님과 남모를 친밀감을 혼자 쌓고 있더군요. 사실 사장님의 스토리는 그저 일상과 자기 생각을 올리는 것일뿐 별다를 건 없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점은 누군가의 이목을 끌려는 과장된 그 무엇이 없고 그저 솔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일상을 일기처럼 펼쳐나간다는 것이 달랐습니다.


5학년 사춘기 아들로 인해 자꾸만 마음이 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스러운 아들을 바라보는 마음, 작은 회사의 대표로서 느끼는 책임감, 직원들의 마음까지 걱정하는 배려심, 윤리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싶은데 전혀 윤리적이지 않은 시장에서 자신의 뜻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한 인간으로서 선하게 살고 싶고, 엄마로서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들이 그 스토리를 통해 생면부지의 저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물론 사장님의 대부분의 일상은 제가 그렇듯 실패한 일상이 대부분입니다. 아들과 잘 지내고 싶은데 실패하고, 회사를 잘 운영하고 싶은데 적자가 나고. 그런 사장님의 실패와 다시금 일어나는 마음을 보는데, 왜 제가 자꾸만 용기를 얻었을까 싶어요.


제가 인스타 계정을 파서 딱 한 사람 지켜보는 분이 그 사장님인데, 왜 내가 그 사람의 일상을 이렇게까지 구경하고 있을까 스스로 자주 되묻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에게는 멘토가 필요했던 거 같아요. 엄마이자 직업인인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길을 가려 노력하지만 자꾸 넘어지는 사람이 보고 싶었어요. 나중에 반짝 성공했다는 결과만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넘어지고 일어나는 그 생생한 광경을 바라보며 제가 넘어지는 게 당연한 거고, 다시 일어나는 것이 멋진 일이라는 것을 자꾸만 확신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사장님께 DM을 보냈어요. 예전부터 사장님께 종종 친밀감을 담은 DM을 보내곤 했는데, 오늘도 모처럼 메시지를 보냈지요. 사장님의 일상을 감동과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고, 항상 응원하고 있다고. 잘 살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사장님 또한 고맙다는 메시지와 하트를 잔뜩 보내주셨습니다.


멀리 있고 얼굴도 모르지만 저렇게 살고 싶다 생각되어지는 멘토가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제가 넘어지는 아픔들이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을 회복할 수 있는 용기가 되길 바랍니다. 제가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다시금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확신을 얻길 소망합니다. 멀리 있어도, 서로 잘 알지 못해도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이 결국 삶을 더욱 사람답게 만든다는 것을 믿습니다.




다시, 선 긋기 연습


9월 마지막 집회가 끝남과 동시에 모든 온라인, 오프라인 활동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냈습니다. 지난 7월 이후 교권 보호를 위해 여러 활동을 해오면서 내향적인 사람이 활동적으로 살아오느라 애써서 정신적 탈진이 왔습니다. 실제로 몸의 탈진도 왔는지 며칠간은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몇 개월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늘 사람으로 둘러싸여 시끌시끌했던 삶에서 홀로 고요한 삶으로 돌아가니 이제 좀 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내가 바로 서야 공동체도 존재하는 것이니 나를 탈진하면서까지 하는 활동들이 있을 때는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해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는 제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좋아도 만나는 횟수를 조절하거나 그 사람의 삶에 내가 지나치게 관여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자꾸만 돌아봅니다. 그렇게 서로의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도록 노력하고는 해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내 삶까지 마구 흔들리는 상황이 온다는 걸 경험을 통해 여실히 깨달았거든요.


제가 바라는 친구의 상은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해주되 결국 내가 하는 선택들을 존중해주는 사람, 내가 아무리 좋아도 내 개인의 삶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지나치지 않은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 아무리 서로 편해져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정중하게 예의를 지키는 사람. 저는 그런 친구를 바라고, 저 또한 제 친구들에게 그렇게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편입니다. 물론 사람인지라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제가 친구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가 더 많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필요한 기술은 인간관계에 대한 기술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인간관계 기술은 무엇일까요. 저는 여전히 정답을 모르고, 기술이 많이 부족하다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한 기술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되도록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만나보면서 부딪히고 깨지며 기술을 점점 세련되게 다듬어가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제가 다니는 직장은 그런 기술 맺기에 참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관리자, 동료교사들과의 만남, 교직원과의 만남, 아이들과의 만남. 하루종일 마주치는 사람만 수십명이니 그들과 짧게 대화하며 세상의 다양한 인간 삼라군상을 느끼며, 때로는 대화 중에 즐거웠다가 기분이 나빴다가 하면서 기술을 점점 익혀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자꾸만 말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봐야 제 안의 빅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일테니까요. 사실 저 같이 내향적인 사람에게 이런 시도들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누군가에게 말 걸기를 도전하는 이유는 어차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삶 속에서 이왕이면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싶어서입니다.


선 긋기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국 선 연결하기로 결론을 맺게 되니 재미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와 더 잘 연결되기 위하여 저는 잠시 선을 그으며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바른 선을 긋고, 즐겁게 선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결국 살아간다는 건 선을 만들고 연결하여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내 영역의 선을 아름답게 잘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많이 사랑하는


퇴근길에 서영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시간 괜찮아? 집에 가는 길에 우리 밭에 들러서 계란 좀 가지고 가.”


사실 집에 빨리 가고픈 금요일 오후였지만, 계란을 주고 싶은 서영 언니 마음이 괜히 뭉클해서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언니의 밭에 도착해서 함께 닭장에 들어갔습니다.


30여 마리의 닭이 내뿜는 냄새에 깜짝 놀랄 정도로 닭장의 냄새는 지독했습니다. 언니가 민망할까봐 꾸욱 참고 언니를 따라 졸랑졸랑 알을 품고 있는 닭에게 다가갔습니다. 훠이훠이하며 닭을 내쫓으니 방금 품고 있던 따끈한 알이 보였습니다. 오늘 아침에 낳은 알이라며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알을 모으니 어느덧 통이 수북해졌습니다.


이왕 왔으니 야채도 가지고 가라며 언니는 부지런히 대파를 뽑고 고추를 땁니다. 요즘 야채가 비싸다는 언니의 이야기에 맞아요, 얼마 전에 마트에 갔더니 상추 한 묶음이 4000원이 넘지 뭐예요? 라고 응수한 저를 보며 언니는 상추도 싸가라며 결국 비닐하우스로 다시 들어가 상추까지 따옵니다.


언니가 물로 한 알 한 알 닦아준 계란과 손질해준 대파, 고추, 상추까지 가득 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차 안에 고소한 대파향이 가득합니다. 올해 초 엄마가 돌아가신 날부터 자꾸만 제 주변을 돌며 저의 안위를 살피는 서영 언니. 남들처럼 위로의 말조차 쉽게 꺼내지 않는 언니이지만, 저는 언니의 모든 몸짓에 위로 받습니다. 언니는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훨씬 묵직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니까요. 언니 덕분에 농가에 대한 경험이 없는 저는 농부가 자식처럼 사랑으로 키운 닭이 낳은 알, 흙에서 방금 뽑힌 대파와 고추, 상추의 맛이 얼마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저의 금요일 저녁 밥상이 풍성하길 바라는 언니의 마음까지 함께 맛봅니다.


저의 삶은 언제 끝이 날까요? 엄마를 지켜보니 죽음이란 건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저는 한 없이 무력한 존재이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진심을 나누는 매일의 하루만이 그 무력감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서영언니가 제게 준 것은 계란과 야채가 아니라 오늘 하루라는 가치가 아니었을까요. 누군가와 진심을 서로 나눈 것만으로도 하루라는 시간은 가치 있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매일을 가치 있는 하루로 뒤바꾸는 것만이 제가 죽음 앞에 오는 무력감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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