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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an 23. 2024

그냥 전화해 봤어요

그냥 전화해 봤어요     

“재이 언니, 뭐해요.”

“응, 티비 보지. 왜 전화했어? 무슨 일 있어?”

“그냥 전화해 봤어요.”     


통화 말머리 단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그냥’이다. 카톡으로 대화할 때도 대화의 시작을 열 때 가장 좋아하는 단어 또한 ‘그냥’이다. ‘목적’이 있는 연락, ‘필요’에 의한 연락이 당연시되는 세상에서 ‘그냥’으로 시작되는 모든 연락은 소중하다.      


내가 ‘그냥’ 전화를 거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꼭 이렇게 전화를 받는다.      


“왜 전화했어?”     


누군가에게 이유를 묻기 미안해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약 3분여 정도 내가 왜 전화했는지 빙빙 둘러 묻는 탐색의 대화를 하곤 한다. 누가 봐도 ‘탐색!’이라는 게 느껴지는 대화.     


난 정말 그냥 전화했다. 대부분의 내 전화는 그냥일 때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그냥 그 사람이 계속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 나 또한 누군가가 내가 그냥 생각나서 전화하길 원한다.      


모든 목적을 초월한 ‘그냥’. ‘그냥’의 다른 말은 사랑이라 생각이 든다. 아무런 손익을 떠나서 그 사람과 그냥 전화하고 싶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의미이니까. 때론 내가 밥을 다 사줘도 좋으니 제발 ‘그냥’ 나를 만나만 주었으면 하는 관계가 사랑이 아니고 뭘까.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삶의 많은 선택에서 중요한 가치를 고려하게 된다. 내가 가장 제일로 생각하는 가치는 ‘사람’이다. 이 선택이 ‘사람’을 더 나아지게 하고, 살리는 선택인지를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매일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것 같은 일상이지만, 그 일상 속에서 예상 못한 감정을 선물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물론 감당 못할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관계도 많다. 나 또한 매년 얼굴을 바꿔가며 인생의 새로운 ‘빌런’이 두둥 등장하곤 한다. 매년 환경이 달라지는 직장이어서 그런가 보다. 그런 빌런들의 지뢰밭을 기꺼이 통과하며 자꾸만 사람에게 다가가며,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일에 도전하는 이유는 뭘까.      


사람의 자유의지는 한 사람에게 매분 매초 종잡을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한 사람의 면면이 난 참 재미있다. 그런 선택 속에서 현명하고 아름다운 선택을 하는 이를 발견하는 건 내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이라 할 수 있다. 그저 옆에서 바라만 봐도 가슴이 찡하다고 할까.      


상황이 극단적일수록 좋다. 어떤 이를 관찰할 때 그 사람이 가장 짜증 나고, 가장 손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특히 눈여겨 관찰한다. 평상시에 아무리 좋은 사람이었어도 그런 순간에 얼굴색을 달리하는 사람은 더 이상 신뢰하기가 어렵다. 물론 그 순간에도 멀쩡하다면 사람이 아니지만,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컨트롤하며, 성숙한 선택을 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는 정말 ‘대박!’이라고 외치고 싶어 진다. 어떻게든 그 사람과 친해질 궁리를 해보며 말이다. 그런 순간에서 나 또한 성숙한 선택을 하기 매우 어렵다. 누군가 나를 본다면 꽤나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이것 하나만은 생각한다. 지난번보다는 성숙한 선택을 하기. 이미 경험한 것에 있어서는 꼭 성장을 보이기.      


오랫동안 두고 보면 볼수록 항상 더 나은 성장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를 키워가는 사람은 참 매력적이다. 그런 친구들에게는 정말 밥값을 수업비로 내서라도 함께 대화하며 그 친구의 삶을 배워지고 싶어 진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사는 삶의 진수를 하나씩 모으는 것. 내 삶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취미 중 하나다.     

 

사람이 좋고, 사람이 싫다.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렵고, 사람에게 간절히 감동받고도 싶어 진다. 군중 속에서는 여전히 침묵이 더 편한 나이지만, 보석 같은 누군가를 발견한다면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거는 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 속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건 무서운 일이지만, 소중한 한 사람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으니까.      


난 여전히 삶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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