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상반된 두 단어의 조화
육아는 우아함과 참 거리가 먼 단어다. 우아함의 뜻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우아하다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고상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
기품
인격이나 작품 따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품격
간추려 말하면 우아함은 품위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며 아름다운 것이다.
매일 아침 아기의 칭얼댐에 눈을 떠 눈곱도 덜 뗀 눈으로 밥을 차리고, 지독한 냄새와 함께 똥기저귀를 갈아주며, 쌀 포대만큼이나 무거운 녀석을 드느라 팔뚝 근육을 과시하고, 아기 단장하느라 내 단장할 시간도 없이 헐레벌떡 뛰어 나가는 육아. 아무리 생각해도 우아함과는 참 맞지 않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육아의 우아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육아의 우아함을 말하기에 앞서 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근방의 병원이 모두 불친절하고, 다녀오면 심히 기분이 좋지 않아서 결국 20분 거리의 다른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나 보다. 친절하고 넉넉하게 아이와 엄마를 대하는 의사 선생님의 태도 덕분인지 병원이 늘 만원이다.
직장인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라 생각한다. 아직 찌들지 않은 순수함과 열정을 가진 신규이거나 원래부터 타고난 품성이 좋거나 오랜 경험에 의한 득도(?)로 마음의 평화를 잘 유지하거나. 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사실 좀 헷갈리기는 하지만, 세 번째와 좀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넉넉한 사람을 볼 때는 참 기분이 좋다. 그런 넉넉함은 꽤나 견고해서 상대방이 흔들어대도 곧 탄력 있게 원 상태를 회복하고는 한다. 안정감 있는 모습은 함께 있는 사람마저 평온하게 만든다.
난 그 선생님께 우아함을 느꼈다. 저렇게 의술을 펼칠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이제까지 보아왔던 의사들 중 대다수는 반복되는 진료에 찌들어 있는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의사를 폄하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의사 외에 다른 직업에서도 찌들어 있는 표정을 가진 사람이 참 많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 또한 매일 반복되고 매일 징징대는 아기들 틈 속에서 꽤나 힘든 상황일 거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힘든 상황에 압도되지 않고, 나만의 박자를 잃지 않은 채 여유롭게 넉넉히 진료를 해나 가시는 것 같다. 그 모습이 그렇게 우아하다.
우리 아파트 담당 택배 아저씨의 이야기 또한 소개하고 싶다. 이분은 진짜 프로페셔널한 분이다. 내가 아는 직장인 중 이분만큼 프로페셔널한 분을 찾기가 어렵다. 늘 정확한 시간에 정확하게 안내 문자를 보내고, 내가 택배를 받았는지도 정확히 확인하며, 발송할 택배가 있을 때는 늘 하루 안에 다 처리해주신다. 한 번 짜증 나는 표정 없이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시는 이분을 볼 때면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운 날에는 이분께 특별히 더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직업에 정성을 다하고, 진심을 담는다는 것이다. 성경에 내가 참 좋아하는 말씀이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골 3:23)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우선순위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다.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께 하듯 하라는 의미는 정말 최고의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세상적으로 해석해본다면 내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사람에게 대하듯 하란 의미다.
지인에게 들은 농담인데, 지인은 아기 돌보다 힘들 때면 이 아기가 내 상사의 아기라 생각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었지만, 생각보다 그 말의 여운이 오래갔다. 내 상사의 아기라면 어찌 아기에게 화내고, 윽박지르고,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상사가 두려워서라도 아기의 징징댐을 온 힘을 다해 참아낼 것이다.
환자에게 적당히 대해도 적당히 돈 벌 수 있다. 택배를 대충 배달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내 아기니까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아무렇게 대해도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보고 있는 눈이 있으니 그건 바로 내 눈이다. 내 눈은 그 모든 걸 담고 있다. 내가 담은 것은 곧 내 자존감의 재료가 되고, 앞으로의 삶의 씨앗이 된다. 정성을 다하고, 진심을 담은 경험은 어떻게든 내 속에 뿌리내려져 어떠한 꽃이든 피우게 된다.
육아의 우아함은 엄마의 전문성이 빛을 발할 때 드러난다. 아기의 똥 묻은 엉덩이를 씻길 때, 밥을 떠먹여 줄 때, 울고 있는 아기를 대할 때 정성을 다해서 한다면 그것만큼 우아한 행위가 있을까. 냄새나는 엉덩이를 씻기면서도 얼마든지 우아할 수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행동이라면 말이다.
너무 이른 출근과 너무 늦은 퇴근이 아쉬운 직장생활이지만, 나는 이 직장생활에 직업적 소명 의식을 갖기로 했다. 정성을 다하고, 진심을 담아 동작 하나하나에 우아함을 결합할 것이다. 나의 정성을 영혼에 담뿍 담은 내 아이가 세상에 나가 자신의 정성으로 다른 사람에게 최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우아한 엄마가 우아한 아이를 기르고, 우아한 아이는 또다시 우아함으로 상대방을 감화시키고, 상대방 또한 우아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고 싶다.
우리는 더 우아해질 수 있다. 우리가 믿는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