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Apr 29. 2019

왈츠 삼총사

가족의 탄생. 남편과 나로 시작된 이 가족의 탄생은 결혼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진정한 탄생은 호두가 태어나며 시작되었다. 남편과 둘이 지낼 때는 단짝 친구와 함께 산다는 생각으로 살았던지라 우리가 가족이야라는 자각이 별로 없었다. 셋이란 숫자가 주는 묘한 안정감 때문일까? 아이라는 우리의 돌봄이 간절히 필요한 존재 때문일까? 호두가 태어난 이후로 '우리는 한가족!'이라 생각되던 순간이 꽤 많이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진한 한가족의 기운을 느낀 하루였다. 삼총사가 되어 어디든 함께 갔다. 교회를 다녀와 낮잠을 자려 준비하는데, 엄마, 아빠가 자신의 범퍼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 호두를 위해 남편과 범퍼 침대에 누웠다. 엄마 배를 이랴 이랴 타고 신났다가 아빠 배로 거슬러 올라가 또 이랴 이랴 타다가 또다시 엄마 배로 가는 호두는 매우 신이 나있었다. 평소 집안일로 바빠 둘 중 하나는 집안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 세 가족이 그렇게 노곤노곤 낮잠을 잤다. 자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밤에는 자기 전에 호두와 왈츠를 추었다. 요새 춤추는 걸 좋아하길래 내가 입으로 왈츠 곡조를 부르며 같이 손을 잡고 춤을 가르쳐주니 호두가 정말 좋아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이를 자랑하며, 함지박만 하게 입을 벌리고 웃는 딸을 보니 기분이 좋다. 호두가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이번에는 나와 호두 아빠가 둘이서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 호두가 손뼉 치며 좋아했다. 아빠와도 추었다가, 엄마와도 추었다가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잠들었다.


호두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육아는 내게 뭔지 모를 안개가 자욱하게 느껴지는 어려운 과제지만, 하루만 바라보며 살기로 마음먹고나서부터는 육아에 대한 짐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긴 육아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부담감에 한숨이 나오지만, 오늘 하루만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진다.


지금 우리 아이의 이 모습을 최대한 눈에 많이 담아 두기,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아이가 이를 보일 정도로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기, 아이의 감정을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미세먼지가 나쁘지만 않다면 밖으로 나가 최대한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하루에 내가 아이와 하고 싶은 일들이다. 대부분의 하루는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오늘 교회 영아부 예배 소모임에서 호두의 담임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말 잠깐이에요. 다시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기가 어렵더라고요. 사랑스러운 내 자식인데, 왜 그렇게 미울 때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의 이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최대한 만끽하세요."


호두는 아직 고집이 세지 않다. 웬만하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하는 나이. 우리의 의견 충돌이 없는 나이. 그리고 호두 마음속 엄마의 존재감이 매우 큰 나이.


아직은 호두의 마음 공간에 내가 차지하는 공간이 많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인지! 호두의 마음속에 친구, 선생님, 인형 등 호두가 사랑하는 것들을 하나씩 담아간다는 건 기쁘고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점점 내가 다른 것들에 우선순위가 밀려간다는 것은 조금은 서글픈 일일 것 같다.


사랑스러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시기인 호두. 이 시기의 호두를 눈에, 마음에 많이 담아두고 싶다. 오늘 우리가 췄던 행복한 삼총사의 왈츠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고사리손으로 엄마 손을 꼭 잡고, 엄마만 바라보며 웃어대던 예쁜 호두. 쉬지 않고 흘러가는 이 추억의 물결이 너무나도 아쉽지만, 호두와의 추억은 내 삶을 이미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호두가 내 삶에 선물해준 이 풍요로움은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가져갈 좋은 보물이 될 것이다.


태어나줘서 고맙고, 나를 보며 웃어줘서 고맙고, 점점 멀어져 가더라도 아름다운 어른으로 성장해 갈 호두를 곁에서 응원해줄 수 있는 위치라서 고맙다.


호두가 내게 준 정말 많은 선물을 평생을 통해 갚아나가는 은혜 갚는 까치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왈츠가 울려 퍼지던 밤. 예쁜 밤, 맞잡은 손, 그리고 미소. 아이를 키워간다는 건 그동안 몰랐던 놀랍고 멋진 세계를 하나씩 배워간다는 것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가 똑똑해서 좋으시겠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