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May 13. 2019

육아의 복병

육아만 힘들줄 알았지

작년 3월. 만삭이 되어 가는 배를 부여 잡고 열심히 걸으며, 다가올 육아를 위해 마음을 준비했다. 힘들다, 힘들다 소문만 무성했던 육아를 직접 겪어볼 생각에 걱정과 긴장이 잔뜩 되었다.


육아의 뚜껑이 열리고, 일년을 그 세계에 온전히 빠져들며 말이란게 얼마나 쉬운 것인지를 여실히 깨달았다. '힘들다'라는 말의 무게는 육아의 무게를 온전히 담지 못했다. 육아를 경험하며, 힘들다는 세 글자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가 아닌 평생이란 시간 동안 한 존재를 몸과 마음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품기에 버거운 것인지도.


내 마음을 벅차게 채웠던 그 말 뒤의 복병을 나는 요즘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건강'이었다. 당장 내 눈 앞에서 엉엉 울어대는 아기의 필요를 채워주느라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면서 자연스럽게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던 나의 '건강'. 챙기려면 챙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일단 내 마음의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밥도, 잠도, 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될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이 작은 아이의 울음 하나에 엉클어졌다.


그렇게 뒷방 신세로 전락했던 내 몸이 아기 돌 즈음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아프다며 자신을 주장했다. 몇 주 걸러 몇 주 병원을 돌아가며 다녔다. 그것도 매번 병원의 종류가 달라졌다.


그러다 2주 전부터 이석증이 생겼다. 다른 병은 전염성도 없고, 단지 며칠 앓으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하루종일 어지러운 이 병은 이제까지의 병과 급이 달랐다. 내 모든 생활의 질이 하락했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이 힘들어졌다.


아기가 없을 때는 몸이 아프면 그냥 쉬었다. 엄마가 되니 사정이 달라졌다. 내 도움 없이는 의식주 모두가 해결이 안되는 아기가 있다보니 어지럽거나 말거나 그 모든 일을 감당해야했다.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 안으며 주방에서 음식들과 싸워야 했고, 심심해하는 아기를 놀아주어야 했고, 때가 되면 잠들 때까지 재워줘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기가 순한 편인지라 내가 가끔씩 옆에서 누워서 숨을 돌리면, 내 곁을 돌며 한참을 혼자 놀아주었다.


'아프다'는 말을 요새 너무 달고 살아서 가뜩이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금요일 퇴근 후 남편이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했다. 집안일만 해주었으면 고마웠을텐데, 옆에 와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너 2살 때 일 기억나? 네가 지금 아이에게 하는 모든 열심, 아이는 기억 못해. 그냥 너 편하게 살아. 네가 열심히 해준다 해도 엄마가 아프거나 죽으면 안하느니만 못한 거야.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한 엄마라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내용의 요지는 이랬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지만, 남편이 열심히 일한 뒤에 하는 이야기인지라 누워 있는 내가 할말은 없는 것 같아서 일단 참았다.


다음 날이 되어도 남편의 말은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가 기억해달라고 내가 열심히 산 것도 아니었고, 열심히 도와주려 노력은 하지만 일하느라 늘 바빠 자리를 비울 때가 많은 남편으로 인해 힘든 적도 많았기에 억울했다.


억울한 내 마음을 곰곰히 돌아보다가 오후에 남편에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남편과 싸우고 싶지 않았고, 남편의 조언이 전적으로 옳다는 마음도 있었기에 말을 신중히 전달해야 했다. 우선 남편이 집안일에 나보다 훨씬 재능이 있는 건 사실이었기에 그 부분에 대한 칭찬과 존경을 표현한 뒤에 조심히 내 마음을 말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나의 열심이 잘못되었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 오빠의 조언 다 도움 되고, 인정하지만, 나에게 우선 일년 동안 수고했고, 아이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먼저 말했어야지. 나의 방향은 옳았다 생각해. 그건 후회 없어. 다만 내가 지금 아프니까 강도와 횟수는 조절해야겠지. 내 방향까지 옳지 않았다 말하진 말아줘."


이미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뒤에 한 말이어서인지 남편은 어느 정도 수긍을 해줬다. 하지만 내 요구는 더 있었다.


"수고했다 말해줘."


시키는 걸 제일 싫어하는 남편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나는 그 말을 꼭 듣고 싶었다.


"수고했다(쳐)"


왠지 '수고했다쳐'로 들리는 어투였으나 그렇게라도 들으니 어제의 억울함이 좀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남편의 말이 옳긴 했다. 육아의 가장 최우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보다 '나의 건강'이었다. 일단 내가 건강해야 육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듯 나는 내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이를 위한 내 선택은 내 생각에서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 강도와 횟수는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 내 몸이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것이 옳았다.


아이를 위해, 또 나를 위해, 내 꿈을 위해 육아와 건강의 균형을 잘 지켜가며 살고 싶다. 지혜로운 열심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제라도 내 삶의 영점을 잘 조정하고, 일상의 모든 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감사하다. 이석증으로 괴로운 나날이지만, 감사의 제목을 떠올리니 이 시간 또한 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