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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y 13. 2019

엄마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음을

처음 호두를 만났던 때가 떠오른다. 배에서 갓 나온 호두가 미처 한 쪽 눈 밖에 못 뜬 상태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가득 어린 그 눈빛과 마주하던 순간. 호두는 엄마를 바라보느라 울지도 않았다. 그렇게 호두가 찾아왔다.


소름끼치게 벅차오르던 그 순간을 지난 뒤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왔다. 책임감을 좀 절실히 느끼는 성격이라 평상시에도 내게 주어진 역할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동안의 역할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막중한 임무를 맡은 나는 그 무게에 벌써부터 지치는 느낌이었다.


아기가 나오면 자동적으로 엄마가 되는 건줄 알았다. 그때는 '엄마'라는 단어가 그렇게 누군가를 부르는 명사라 생각되었다.


내가 느낀 '엄마'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점점 깨달았다. '엄마'는 사전적 의미인 '아이가 딸린 여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평생동안 자신이 낳은 생명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다'의 의미를 지닌 동사였다.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고, 여전히 엄마로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있다.


강렬하고 우울했던 첫 만남과 달리 호두와의 일년은 참 행복했다. 아기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 행복하고, 더 많이 웃었다. 호두 엄마로서의 삶을 진심으로 즐겼다. 누군가 내게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을 물어본다면 나는 '호두'를 낳은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하루 하루 날 바라보는 눈빛이 또렷해지고, 음마로 시작된 엄마의 발음도 분명해지며, 나를 바라보고 해사하게 웃음 짓는 모습을 보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를 바라보기만 해도, 엄마와 같이 있기만 해도 행복한 호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천성이 밝은 엄마, 아빠를 닮아서 호두는 우리의 바람대로 기쁨의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호두에 대한 소개는 호두 아빠가 돌잔치 때 했던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 아기는 저를 닮아 집안 호랑이입니다. 호두 엄마가 만든 성장 동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호두는 집에서는 밝고 웃음이 많은 아이입니다. 오늘 여러 사람 앞에 서느라 많이 울고 긴장해서 호두의 모습을 다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마음이 쳐지는 하루였지만, 호두와 있어서 오늘도 많이 웃을 수 있었다. 아기 인형 쪽쪽이를 뺏어서 물고 다니고, 엄마가 다른 일로 바빠서 그네를 못 태워주니 아쉬운지 인형을 태워놓지를 않나, 자기 전 기도를 할 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하느라 기도 손을 안했더니 내 손을 억지로 기도 손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호두의 그런 엉뚱한 행동을 볼 때마다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 호두도 행복한지 씨익 웃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 우리가 좋았다.


아기의 볼에 마음껏 입 맞춰 주는 일, 꼭 안고 사랑한다 말해주는 일, 우는 아기를 쓰다듬으며 달래주는 일. 원없이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돌려받지 않아도 상관 없는 이 넘치는 사랑을 누군가에게 마구 퍼부어줄 수 있어서 기쁘다.


호두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지 모른다. 호두에게 바라는 한 가지는 지금 받은 이 사랑을 남을 위해 베푸는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것뿐이다.


기쁨의 아이, 사랑의 아이, 호두. 천금 같이 소중한 존재가 내게 생겼다는 것이 기쁘고, 호두의 엄마로 사는 삶을 내게 선물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지금의 내 신체적, 마음적 아픔이 이 감사를 침범할 수 없다 생각한다. 삶은 마치 주변이 낭떠러지인 좁은 길과 같아서 작은 불균형에도 쉽게 무너진다. 이 길을 갈 때에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사랑과 감사가 균형을 잡는 또 다른 축이 되길 소망한다.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엄마로서의 내가 균형이 잘 잡힌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늘도 감사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어 이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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