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소리 May 15. 2019

엄마가 참 반짝인다

나의 햇살, 나의 사랑

오늘도 아가의 마음속에 숨 같은 사랑을 불어넣어 본다.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고, 안아주고, 두 손을 꼭 잡고 보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기적 같은 시간이다.


아기를 도닥이며, 엄마도 도닥여줘야지 하면 조그만 고사리 손으로 등을 찰찰 두드린다. 나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그 여린 생명체가 벌써 이만큼 커서 엄마를 도닥여주고 있다.


멋모를 때는 아이를 위해 내가 희생하고 있다 생각했다. 내 금쪽같은 시간과 체력을 아이를 위해 기껏 내어주었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를 위해서라며 속으로나마 생색을 냈다. 세 돌까지라고? 그래, 세 돌까지만 버텨보자는 심산도 있었다.


뇌과학 책을 읽으면, 아기가 태어나서 겪는 모든 순간은 아이의 뇌에 빠짐없이 기록된다 한다. 비록 말 못 하고, 멋모르는 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순간이 아이의 감각을 통해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져 무의식에 기록된다. 그리고 그 무의식은 성품을 만들고, 아이의 삶을 다시금 조정하게 하는 큰 역할을 한다. 뇌의 이런 측면을 알게 되었을 때 많이 놀랐다. 이미 여러 육아서를 통해 얼핏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어도 막상 과학책을 통해 읽으니 느낌이 또 달랐다. 그래서인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최선이 아이의 뇌에 모두 기록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를 위해 더욱 힘내야겠다 생각했다.


요즘따라 뒤를 돌아보니 그건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설사 아이의 무의식에 기록된다 해도 이 시간은 이기적이게도 우선 나를 위한 시간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해 나는 지금의 내 시간을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있다. 경험상 소중하게 새겨진 추억은 힘이 셌다. 우울하고 어두운 날이 다가와도 그 추억에 기대어 이겨낼 때가 많았다. 아직 젊은 나의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점점 약해지는 내 몸과 늙고 병들어가는 부모님, 내 품을 떠나는 아이, 하나둘씩 들려오는 부고에 점점 어둡고 무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인생의 겨울이 다가왔을 때 하나씩 펼쳐볼 봄의 기억을 만들고 있다. 그 봄의 기억이 겨울바람에 시려진 마음에 따뜻한 햇빛을 비춰주길 바라면서.


아이는 떠날 것이다. 아마도 엄마 마음에 그나마 있던 정이 뚝 떼어져 미련이 없도록 모진 반항 끝에 이 품을 떠날 것이다. 내가 그래 왔듯이, 또는 이 땅의 모든 십 대가 그러했듯이. 결국 알을 깨고 나간다는 것은 그런 독립심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이가 지금 내게 베풀고 있는 조건 없는 이 사랑은 이제 아이의 마음속으로 점점 숨어 들어가 속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향내처럼 바뀌게 될 것이다. 마치 엄마가 필요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구는 못된 모습 속에서도 나는 개코처럼 그 향내를 반드시 찾아내야겠지. 그리고 이해하고 믿어야 할 것이다. 아이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것을.


앞날을 예견한다는 것이 우울하지만은 않다. 나도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아이의 삶을 함께하며, 나 또한 아이가 주는 사랑과 아픔에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겠지. 성숙한 사람이 될 나를 기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루마다 달라지는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며, 아이의 성장이 사랑스러우면서도 아쉽다. 내일은 더 많이 사랑해줘야지. 눈을 맞추고 사랑한다 여러 번 말해줘야지. 진심을 담아 꼭 안아줘야지. 아이의 뇌에 강한 햇살을 남겨주어야겠다.


나의 딸, 나의 햇살. 엄마의 삶을 비춰주는 네가 있어 엄마가 참 반짝인다. 고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