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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y 21. 2019

나를 지키는 루틴

우울감이 큰 밤이다.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감정이 쉬이 회복되지 않는다. 원래 감정이란 것은 행동보다 느리기 때문일까. (부디 이 글을 읽는 지인분들께서 왜 우울했는지 나중에 여쭤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저 사소한 일이었고, 글을 읽은 뒤 사정을 여쭈어 보시는 게 부담스러워 글쓰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서이다.)


감정의 맥이 풀리면, 왠지 몸의 긴장도 함께 풀어진다. 그냥 스마트폰을 의미 없이 붙잡고 있거나 재밌지도 않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멍하게 보고 있게 된다. 원래는 다른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인데도 자꾸만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넋이 나간 기분이랄까. 아무것에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책에서 행동이 때론 감정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몸의 위치를 바꿔주고, 보는 풍경을 바꿔주며,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의 움직임에 대해 잠시 손을 놓게 되는 기분이다.


사실 하루의 마지막 시간은 내가 감사 일기를 쓰고,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시간이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한참을 소파에서 시간 죽이기만 하니 감정이 더 안 좋아졌다. 기분이 안 좋은 것에 더해 내가 소중한 자유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겹쳤다.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단 생각이 들어 책을 폈고, 책을 읽다가 결국 무엇이든 쓰려 노트북도 꺼냈다. 이제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이 든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반복했던 행동, 즉 나의 루틴이 안정되어가며, 내 마음도 점차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루틴은 내 몸에 새기는 무늬 같다. 일상의 소소한 루틴을 몇 가지 만들고 자꾸만 같은 시간에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몸이 먼저 기억하여 움직일 때가 있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행동 안에서 평안과 자유를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믿는 나이기에 보다 나은 나를 위한 내 작은 루틴이 쌓이다 보면 몇 년 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한층 더 가까워져 있으리라 생각한다.


루틴이 있는 삶은 소중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루틴 외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내가 좋아하는 간식 사 먹기, 일주일에 한 번은 설사 읽지 못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취향의 새로운 책을 찾아서 빌려보기, 미세먼지가 좋은 날은 무조건 밖에 나가서 산책하기 등 소소하고 즐거운 루틴도 있다.


그런 루틴이 하나 둘 모여 나의 진심 어린 삶이 되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가득 찬 내 삶이 더욱 소중해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의 루틴이 궁금해진다. 그 루틴 속에서 당신이 행복한 지도. 우울감, 혼란스러움을 이겨내는 방법은 굳건한 일상이기에. 당신의 루틴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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