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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y 28. 2019

아기의 바다

오늘 회식이 있다는 남편의 말과 함께 아침을 무겁게 시작했다. 요즘따라 낮잠이 한 번으로 줄고, 2시간 정도 자는 호두. 하루종일 아이를 혼자 보면서 삼시 세끼를 챙겨 먹이는 것이 부쩍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할줄 아는 것이 많아지니 더 귀여워지고, 더 떼가 늘었다. 어떤 면에서는 육아가 쉬워졌고,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려워졌다. 결국 육아는 늘 더하고 빼면 0이 되는 듯 싶다.


호두는 손톱 깎는 일을 제일 싫어한다. 조금이라도 깎을라치면 마치 엄마가 몇 대 때린 것 마냥 통곡을 하며 운다. 나를 닮아 손끝, 발끝이 매우 예민한 아이라 자는 도중에 깎으면 일어나므로 결국 울더라도 깨어있을 때 깎아야 한다. 오늘도 통곡하는 호두를 살살 달래며 겨우 겨우 깎았다. 다 깎은 뒤 손톱 가위를 달라고 하길래 줬더니 신이 나서 본인이 발톱을 깎는 척 한다. 방금 전까지 울던 아이는 어디 갔는지. 신나서 깎는 시늉을 열심히 하는 녀석의 모습이 귀여워 옆에서 동영상을 찍었다.


아이를 재우고, 이런 저런 집안일을 끝낸 뒤에야 비로소 소파에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하루종일 발을 동동 구르며 다니다보면 소파에 편하게 앉는 것이 사치일 때가 있다. 육퇴 후 모든 책임에 자유한채 소파 깊숙히 몸을 파묻을 때는 얼마나 행복한지. 노곤노곤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왠지 기분 좋다.


문득 아까 열심히 발톱 깎이 놀이를 하던 아기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동영상을 틀었다. 분명 내가 직접 눈으로 보며 촬영한 영상인데, 보는 내 마음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아기가 아까보다 더 작아보이고, 더 어려보였다. 왜일까. 신기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이 꽤 자주 있었다. 지친 하루 끝에 잠든 아기의 깨어있는 모습이 궁금하여 영상을 보다보면 분명 낮에 직접 본 장면인데도 생소한 느낌으로 마음에 다가오곤 했다.


왜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낮의 내 마음에 대해 돌아본다. 아기의 끼니를 제 때 챙겨줘야 하는 마음, 그때그때 처리해야만 하는 집안일의 타이밍을 살피는 마음, 내가 조금만 다른 일을 해도 놀아달라고 우는 아기를 걱정하는 마음, 이 긴긴 시간을 대체 뭘하고 놀아줘야 할지 막막한 마음, 요즘따라 잘 씹지 않으려 하는 아이의 식습관과 아토피, 알러지를 걱정하는 마음. 수많은 마음이 얽히고 설켜 내 마음과 몸을 지긋이 짓눌렀다. 무거운 마음을 질질 끌고 살아가다보니 아이의 귀여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아기를 재우고, 집안일을 마친 뒤 여유롭고 노곤한 마음으로 다시금 깨어있는 아기의 영상을 보니 그제서야 지금 내 아기가 얼마나 작은지, 오후에는 미처 못 본 아이의 중얼거림과 행동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참 많이 컸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너무 어리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온전히 만끽해도 모자라는 시기에 나는 너무 많은 혹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고 있다.


물에 뜰 때를 생각해보았다. 온몸에 힘을 빼고 모든 것을 다 물에 맡긴 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가만히 있어야 물에 서서히 뜬다. 현재를 즐기는 육아 또한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다. 크고 작은 근심이 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려놓다보면 육아라는 바다에서 서서히 뜨는 날도 오지 않을까.


아이가 정말 예쁜 시기이다. 동영상을 보니 더욱 그렇다. 이 예쁜 시기에 아이가 예쁘다는 것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가 아쉽다. 내 마음에 자꾸 힘을 주게 되는 사소한 걱정, 근심에 대해 자꾸만 기도하며 하나씩 힘을 빼나가야겠다.


어제 읽은 책에서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기에 하루 하루 잘 살아내는 수 밖에 없다는 구절을 보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나와 아기의 삶. 그저 오늘 서로를 바라보며 진심을 다해 웃고,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며, 이 시간을 즐기려 하다보면 되지 않을까.


내일의 나는 조금만 더 힘을 빼고, 물에 뜨는 마음으로 아기의 바다에 뛰어들고 싶다.


사랑하는 호두야, 너의 바다에 내일도 엄마를 초대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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