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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주 Jun 23. 2022

빙수야 팥빙수야

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빙수

엄마 (68년생)

/ MBTI는 모름. 알려줘도 자꾸 까먹음.


집안에 날파리가 보이고 청바지가 더워지기 시작하니 때가 됐다. 빙수 먹을 때.


요즘 빙수무척 화려하다. 토핑도 다양하고 이름도 길어지고. 취향 따라 성격  따라 빙수 먹는 스타일도 많이 다르다고 하니, 빙수 먹는 법을 MBTI 유형 나누듯이 해보면 어떨까 궁리해봤다. 이걸로 자신을 돌아보자던가 상대방을 이해해보자는 기특한  같은  없다. 그냥 날도 후텁지근하고 늘어지기 쉬우니 잠깐 머리나 식혀보자는 거다.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MBTI 타입은 4개의 알파벳으로 결과를 보여주니까 빙수 타입도 그래야   같았다. 그래서  문항에 필요한 영어단어들을 생각해봤다. 아우 머리야. 이게 뭐라고 머리까지 싸맬  있나? 그냥 손쉽고 무식하게  난관을 돌파하기로 했다. 영어 단어 말고 우리말 단어의  글자를 알파벳으로 따기로.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고 피곤해하지 마시길. 편하게 따라 하면 된다.


당신의 빙수 타입 고! 고!


첫 번째 질문!

빙수를 먹을 때 당신은 모양을 유지하며 먹는(D) 타입? 아니면, 어 먹는(S)  타입? (이게 바로 손쉽고 무식한 난관 돌파법이다. 떠먹다와 섞어먹다를 그대로 영어로 표기했을 때 첫 글자를 딴 D와 S.^^;)

나의 경우, 누군가 빙수가 나왔을 때 숟가락을 들고 휘리릭 섞으면 야속한 기분까지 든다.

‘아니 어떻게 묻지도 않고 이럴 수가 있어?’

나랑 나눠 먹는 사람이 아니라 옆 테이블에서 그러고 있으면 속으로 혀를 끌끌 찬다.

‘에잉 빙수 먹을 줄 모르는구먼’  

나는 탕수육도 찍먹이고 카레를 먹을 때도 그대로 떠먹는 타입이니 그럴 수밖에. 호감 가는 사람이 빙수를 야무지게 비빈다면.. 글쎄? 슬그머니 마음 한구석을 접을 거 같다. 빙수 하나에도 편견을 꺼내 드는 나. 아직 멀었다. 어쨌건 나의 결론은 D.


둘째!

첫 번째 질문과 관련된 질문일 수 있다. 빙수 먹을 때 당신은 한 그릇을 기꺼이 딴사람과 이 먹는(G) 타입? 아니면, 되도록 자 먹는(H) 타입?

이게 답이 쉽진 않다. 요즘 빙수가 너무 비싸서. 하지만 만약 가격 문제가 아니라면 난 무조건 1인 1빙이다. 남편이나 딸이 아니면 아무리 친해도 따로 먹고 싶다. 국물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됐다. 누구는 배불러서 혼자 못 먹는다는 말도 하던데 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입에서 스르르 사라지는 빙수가 대체 왜 배가 부르단 거지?

나의 선택은 H.


셋째!

당신은 통 팥빙수 (J) 타입? 아니면, 일 빙수(G) 타입? (과일은 fruit이란 너무나 쉬운 단어가 있음에도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과일’에서 G를 땄다. 대체 무엇을 위한 일관성인지)

대학시절 학교 앞에 딸기빙수를 파는 분식집이 있었다. 대부분 팥만 얹어먹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빙수는 특별한 별미로 꼽혔다. 친구들도 다들 좋아했지만 난 그냥 그랬다. 팥밥부터 비비빅까지 모든 팥을 사랑하던 팥 마니아로서 팥 특유의 텁텁한 맛을 과일향으로 가리는 게 별로였다. 이젠 비주얼부터 맛까지 럭셔리 하이테크 과일빙수가 등장했지만 나의 취향은 여전히 정통파를 고집한다. 나의 답은 J.


마지막 질문!

5만 원이 훌쩍 넘는 호텔 빙수까지 등장한 요즘, 입맛에만 맞는다면 당신은 기꺼이 비싼 빙수(B)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기(P) 할 것인가?

난 사실 돈 쓰는 데 쪼잔하다. 어릴 때 집안 경제가 몇 번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기억 때문인지 과감히 돈을 쓸 항목과 그렇지 않을 항목을 꽤나 고심해서 나누는 편이다. 안타깝게도 빙수는 후자에 속한다. 입맛대로 한다면야 배가 아프거나 말거나 몇 그릇 뚝딱 해치울 만큼 팥빙수를 사랑하지만, 밥값보다 훨씬 비싼 빙수는 아무래도 망설이게 된다. 김종국 씨 아버지 같은 경제 철학을 갖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난-. 그래서 P.


정리하면, 나의 빙수 유형은 DHJP.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나라는 사람이 슬쩍 보이기도 한다. 경제적으로나 입맛으로나 큰 모험을 못하는 타입. 은근 속 터지는 스타일 -.,-

자 그렇다면 당신의 빙수 유형은 어떠신지.




딸 (97년생)

/ 빙수바이럴마케터


팥빙수 하나 들어가요!

계산을 보던 직원이 손님이 적립카드를 찾는 틈을 타 외친다.

제일 바쁜 토요일 오후 1시

얘는 커피 내리느라 바쁘고 쟤는 주문 나가기 바쁘니 이번 차례는 나다.

허리를 굽혀 재빨리 재료들을 꺼내고 냉동실에서 우유얼음을 꺼내 제빙기에 넣는다.

탈탈탈탈

제빙기가 갈면 그릇을 돌려 얼음을 소복이 쌓아 올린다.

잠깐 멈추고 팥과 연유를 숨겨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다시 얼음을 탈탈탈탈

어라? 얼음이 다 갈렸는데 모양새가 요상하다.

유리문에 붙어있는 홍보용 이미지에 비해 얼음이 턱없이 낮다.

젠장 날이 더워 얼음이 실시간으로 녹아 모양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억울하다. 그치만 이대로 갔다간 점장님이 백 시킬 테니 얼음을 하나 더 꺼내 깐다.

탈.. 탈... 덜그럭

제빙기가 헛돈다. 그새 녹아 표면이 물렁해진 얼음은 잘 안 갈린다.

어떻게든 쌓아 올렸으면 연유를 드리즐하고 팥을 얹는다.

관건은 팥. 열심히 볼륨감 만들어놓곤 팥 한번 잘못 올렸다간 다 내려앉는다.

사상누각이 아니라 빙상누팥

얼음의 사이드를 따라 조심조심 팥을 올리고 핀셋으로 인절미도 총총 올리면 완성.

슬쩍 주문현황을 보니 주문 들어온 지 6분 12초. 준수하다.

조심조심 빙수를 픽업대에 건네주고 재료 원위치하고 제빙기 설거지하고 백 바 (back bar) 닦고 뒤를 돈 순간

망고빙수 하나 들어가요!


지난여름 나의 이야기다. 얼음을 갈 때면 빙수를 출시한 본사에 저주를 퍼부었다. 손 많이 가고 오래 걸리고 냉장고에 차지하는 자리도 많고 한번 하면 주변을 다 어지럽히는 극강의 비효율 메뉴를 내놓다니. 지들이 안 만든다 이거야? 그렇다고 빙수를 미워하거나 싫어해본 적은 없다. 당연하지. 나의 소울푸드인데.


사근사근한 얼음이 연유에 촉촉이 젖어 알알이 살아있는 팥을 감싼다. 속은 짜릿하고 입은 달달해진다.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이 희귀종은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의 느끼함과는 다르다. 텁텁하지 않은 차가움이 습한 한국의 여름엔 딱이다. 빙수는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교류를 일으킨다. 집에서는 배달시킬 수도 있지만 밖에서는 혼자 사 먹기란 쉽지 않다. 혼영 혼밥 혼술은 있어도 혼빙을 본 적이 있는가? 비록 취향과 방식의 차이로 상대와 틀어질 수 있을지언정 누군가를 필히 동반하게 한다는 점에서 빙수는 가족적이다. 한국의 정서에도 탁월히 맞는다.


한여름 대중교통에서 피곤한 얼굴에 흐트러진 머리, 까만 슬랙스를 입고 어딘가 달달한 연유 같은 냄새가 나는 젊은이를 본 적 있는가. 그가 자리가 없어 서있다면 슬쩍 자리를 양보해주자. 그녀는 오늘도 한국의 정체성을 만드느라 열 일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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