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생겨먹은 모녀의 세상 모든 일 각자 리뷰 : 장마
/ 비 올 때 들을 근사한 플레이리스트 있었으면
“누구나 가슴에 삼천 원쯤 있는 거예요!”
이 대사를 기억나는지. 원래는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 있는 거예요"였던 드라마 대사.
라디오 작가로 일할 때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누구나 다 있다는 삼천 원이 나한테는 없는 기분.
내가 말하는 삼천 원은 꼭 상처를 뜻하진 않는다. 상처뿐 아니라 웃음이나 아련함까지 아우르는, 소위 ‘사연’이 나에겐 없다는 얘기다. 특히 비 오는 날에는 더 그랬다. 라디오에서 비올 때 듣고 싶은 음악을 신청해달라고 하면 문자 올라가는 속도가 달라지고, 비에 얽힌 추억을 들려달라고 하면 그 짧은 문자로도 빵 터지거나 찡하게 만드는 사연이 넘쳐났다. 그에 비해 난 어떤가. 사람들의 문자를 보며 ‘캬~ 다들 시인이네!’ 하며 감탄만 할 줄 알았지 ‘비올 땐 난 말이야…’하며 분위기 잡을 ‘삼천 원’ 같은 건 꺼내놓을 게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도 열심히 들었고, 7년 동안 울고불고해가며 연애를 했건만 그렇다. 가슴에 삼천 원 하나 없는 사람이 어쩌자고, 툭하면 다른 사람 가슴에 남은 삼천 원을 문자 주제로 일삼는 라디오 작가를 하며 살았는지… 참나.
엉뚱하게 튀는 얘기지만, 그건 어쩌면, 내가 빨래 건조기를 사지 않는 거랑 같은 맥락에 있는 얘 긴 거 같다.
건조기를 사지 않은 건 탄소발자국을 줄이려는 신념이거나 근검절약 정신으로 중무장돼있기 때문은 아니다. 뭐랄까. 그저 일 벌이기 싫은 심리에 가깝다고나 할까.
건조기를 들여놓을 생각을 한다 치면, 어느 회사 제품이 좋은지 알아봐야지~ 가격 알아봐야지~ 같은 회사 것도 더 싸게 파는 데를 조사해야지~ 주변 사람들 후기도 들어봐야지~ 디자인도 따져봐야지~ 그거 사면 어디에 들여놓을지 궁리해야지~ 생각만 해도 숨이 차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써먹곤 하는 생각. ‘에이 뭐… 없이도 살았는데!’
덕분에 난 없이 사는 거 투성이다. 식기 세척기도 없고, 의류관리기도 없고, 폼나게 쓴다는 다이슨 청소기도 없다. 일을 벌이기 싫어서 어쩌다 미니멀이다. (아! 고백한다. 미니멀은 주로 고가의 전자제품에 한한다. 나의 자잘한 빈티지 물건 수집은 누구 못지않은 맥시멀이다)
얘기가 좀 멀리 돌아왔는데, 아무튼 일 벌이기 싫어하는 삶의 태도 탓에, 내 가슴의 적립금은 삼천 원에 못 미치는 거 같다. 조목조목 따지고 들면 그런 일이 아예 없진 않겠지만, 많은 순간 나는 모험을 피하고 고스란히 나를 버닝 하는 일을 두려워해 왔다. 겁이 나서. 실패할까 봐. 책임지기 싫어서. 지금 이대로도 딱히 나쁘진 않으니까.
그 덕에 싫은 소리를 듣거나 남들과 으르렁대는 일은 적었지만, 라디오에 사연을 보낼 만큼 일생일대의 사건도 없었고, 비 오는 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볼 일도 남기지 않은 거 같다. 대체로 안온한 삶. 하지만 시시한 인생. 이런 내가 주인공이 될 상인가? 에이 그럴리가요.
또다시 돌아온 장마.
라디오에는 비에 얽힌 신청곡이 늘고 빗소리에 생각나는 추억 때문에 촉촉한 사연이 많아지겠지.
지금이라도 뭘 남기려면 이 비를 뚫고 나갈 궁리라도 해봐야 하나? 아~ 그랬다가 옷 젖고 빨래 많아지면 골치 아픈데. 난 건조기도 없는 걸.
/ 가뭄 얼른 가라
장마엔 빨래가 안 마른다. 삼일을 널어놔도 어딘가에 습기가 남아있는 찝찝한 기분을 빨래와 함께 개켜 넣어야 한다. 밖을 나서면 신발 틈 사이로 물이 들어와 걸음걸음이 질퍽해진다. 우산을 써도 옷은 축축해져 땀 흘린 피부에 감기고 가방은 조금만 방심해도 죄다 젖어버리니 신경 써야 한다. 우산을 든 손은 번잡스럽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우산의 물기가 다리 한편을 촉촉이 적신다. 가장 싫은 건 냄새다. 무거운 공기 탓에 흘러가지 못한 냄새들이 코끝에 머무른다. 사람들의 땀, 점심때 먹은 순두부찌개, 옥상에서 핀 담배, 바싹 말리지 못한 셔츠 등등. 이름 모를 사람들의 tmi가 밀려 들어온다.
어렸을 때부터 비 오는 날을 안 좋아했다. 첨벙거리며 뛰어다니던 시절엔 좋아했겠지만 중학교 이후로는 확실히 아니다. 깍쟁이 같은 성격이 한몫한 거 같다. 엄마는 젊은 애가 낭만도 없다 그랬다.
비가 낭만적인 건 맞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암울한 하늘은 새벽 감성을 오전 10시에 SNS에 적어도 괜찮을 거 같은 용기를 준다. 위험한 행동이지만 사람들도 비가 오면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이것도 비를 풍경처럼 봤을 때 얘기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빗속을 뚫고 출근한 직장인들은 미쳤냐고 댓글을 달 거다.
비 싫어하고 장마는 특히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장점을 꼽아보자면, 숨 쉬기가 편하다. 만성비염을 달고 사는 나에게 장마철 호흡은 수영장에 뛰어든 두 다리 같다. 땅바닥에 꽉 붙어살던 다리가 물속에 들어가면 자유롭게 나풀거리듯 비가 오면 내 콧속은 꽉 막힌 요금소에서 하이패스가 된다. 코로 힘껏 들이쉰 숨이 눈썹 사이까지 차오를 때 행복도 함께 차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 약속을 미룰 수 있다. (마인드가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변명을 들어보시라.)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익숙하든 낯설든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내 세계는 미약하게라도 커져간다. 이 확장은 책이나 영화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무례한 사람과의 만남도 기분은 버려도 데이터는 얻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 쓰는 에너지는 무한으로 나오지 않는다. 확장은 즐겁지만 피곤하고, 대체 불가한 만큼 리스크가 있어서 뒤돌면 피곤하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된다. 최근엔 귀가 후 한참을 꼼짝 못 한 일이 부지기수였다.
일 년 스케줄 중 교류에도 방학이 필요하다. 빈도를 줄이는 게 아니라 통으로 멈추는 시기가 필요하다. "우리 장마 끝나면 만나자" 그야말로 만능 문구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고 부차적인 설명 필요 없이 한 줄로 끝나니깐. 방학을 위한 최고의 변명. 장마야! 고마워! (사실 안 고마움)(아니야 가뭄 해결해줬으니까 고마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