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가장 아끼던 화분을 중고거래로 팔았다.
둘째 아이가 베란다에 가면 자꾸 그 화분의 장식돌을 파헤치고, 입에 넣는데 지금의 우리 집에서는 화분을 지킬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다.
관엽식물 거래를 일삼아하는 듯한 업자를 거절하고, 응답을 늦게 하다가 거래를 거절당하고, 그 후에야 만난 구매자는 이제껏 두 번을 사 본 이 식물이, 계속 죽었다고 했다.
부디 잘 키워달라는 당부를 했다.
요즈음 식물 돌보는 내 정성이 예전만 못하다. 내가 처음 목질화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은 햇수로 4년째 자라온 세이지 덕분이었다. 세이지는 본래 다년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벌써 세 번 겨울을 나며 잘 버텼다. 그 기특한 나의 작은 나무가 요즘 과습으로 고생한다. 많이 힘들어하는데, 새 흙으로 북돋워줘야 하는데. 탈이 나기 전에는 뭐라도 할 테니 조금만, 조금만 견뎌 달라고, 화분을 스칠 때마다 마음속으로만 말해본다.
그런 무심한 믿음이 상대를 지치게 하고 관계를 상하게 하는 것인데.
내가 내 세이지의 강인함을 믿되 그 세이지가 계속 건강하고 강인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데.
조금 더 미루다간 세이지가 스러지고 말 것이다.
내 마음이 이번에 그랬듯이.
아들에게는 오히려 조금 무심한 믿음을 가질 것을 그랬나.
언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더라도, 나는 너의 엄마이고 너는 나의 아이이니, 어느 시점에서든 우리는 굳건할 것이라고 믿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나.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도 나는 이토록 화내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불안해서, 버텨서, 이 자리로 올 것이다. 내가 낳은 자요, 어머님이 기른 이가 되어 있는 그 일상의 질감과 감정의 밀도와 기묘한 힘의 관계를 다른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내 불안이 그렇게 굳건하고, 신뢰는 가여울 정도로 얄팍해서, 그 탓에 포기할 생각을 했다는 점이, 아이에게 미안하다.
평생 숨겨야 마땅한 일일지도 모른다. 상처받을지도 모르니.
너의 엄마가 되는 것을, 나는 빼앗겼다고도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마음에서부터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아이야,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방식으로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불완전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너를 사랑하려고, 이상하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도 노력해 보았다는 것을, 나중에 흐릿하게나마 설명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생겼던 너와 나 사이의 틈을 앞으로의 시간으로 채우면서 너를 지탱할 수 있는 어떤 힘 있는 무엇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너를 향하는 나의 마음이 너에게 해롭지 않도록, 자주 다듬어볼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틀리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나를 믿어서, 그가 그를 믿어서, 우리는 흔들렸다. 나는 아주 많이 흔들렸다.
기어이 그가 휘어졌다. 나를 위해, 아니 나와 삶을 살기 위해 그는 그 자신을 꺾고 기울였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쓰든, 그는 내 글을 기다린다고 한다.
사실은 어느 때보다 열심히 글을 쓸 수 있었다.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글을 쓰는 동력이었고, 그렇게 쓴 글을 그는 읽었고, 그 후에야 내가 터뜨리는 분노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써 가면서 바꾸고 싶었던, 돌리고 싶었던 그의 생각이 나를 향해 조금은 방향을 바꾸었으니, 글을 쓸 이유는 이제 다한 것일까.
그는 내 글에 일일이 감상을 말하지 않는 대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새벽에 쌀을 씻어 안친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최선을 다한다. 예전보다 훨씬 더 열심히 정리한다.
이제는 어머님의 도움을 '편하지 않아?'라고 내게 묻지 않는다.
나는 내가 도움 받고 싶은 만큼만 도움받는다. 이제는 어머님께서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 대로 모두 받고만 있지 않는다.
받고만 있지는 않는다. 이 부분에서 해방감이 든다. 아는 사람은 알 감정이리라.
나는 감사하고 싶은 만큼만 감사한다. 내가 어머님께 보내는 감사에 이제는 그늘이 없다.
요즘 나는 가끔 남편에게 치댄다. 몸을 갖다 대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건다.
때때로 남편의 생각이 궁금하다. 아직도 그의 생각이 궁금하다. 나에게 사랑의 종말이란, 상대방이 더 이상 궁금해지지 않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묻는 것들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런 남편이 가끔 재미없지만, 그런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는, 나는 머릿속에 육아밖에 없어서 말이야."
뭐, 잠들기 직전인 아이들이 굴러다니면서 턱과 배를 발로 차고 있는데 결혼 10주년쯤 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을 만도 하지.
그는 내가 솔직해서 좋다고 한다. 푼수끼가 있는 점이 좋다고 한다. 숨기는 것이 있는 것보다, 안 해도 되는 말을 굳이 해버리는 게 차라리 낫다고 한다.
술 마시고 막말을 할 때 정말 별로였다고 한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벌써 헤어지자는 말을 다섯 번쯤은 했다고 한다.
그건 내 잘못이 맞다. 그렇게 말할 만큼 화가 나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 말한 나는 무례했다.
남편이 나를 몰라주고 나를 궁금해하지 않을 때, 그래서 불안해지면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야겠다.
그러면 당신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줘야 한다.
그는 식물을 돌볼 줄 모른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 화분에 물을 주는 행위를 해 가면서 집안에 풀을 살려두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없으면 나 대신 물을 줄 줄은 안다.
그는 잘 모를 것이다. 그가 나를 향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말하고 알리는 것이, 나와 꾸리는 사랑과 삶이라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거라는 점을.
나 역시 그가 솔직하게 말해주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걸 궁금해하긴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알고 있어.'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하곤 제 할 일이나 계속하며 얄밉게 굴지도 모른다.
알면 잘 좀 하지.
나는 완벽한 사람과 완벽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제껏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잠든 남편의 얼굴은 참 곤해 보인다. 나이 들어 간다는 게 보인다. 나도 이만큼 나이 들었겠지, 싶다.
바람이 분다. 아이들은 조용히 숨 쉬며 잔다. 하루가 지구를 따라 맴돌고 지나간다. 오늘 우리는 하루 더 늙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