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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그미 Oct 19. 2024

에필로그(2)

지금도 엄마가 되는 중이다.

아들, 나의 첫 아이. 그의 태명은 솔라였다. 게임 '다크소울'에서 게이머들에게 감동을 안겨 준 캐릭터의 이름을 따 왔다. 한참 그 게임을 하던 남편이 '솔라'라는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산책하던 길에 나는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쏙 든 나머지 선언했다.

"좋아. 우리 아기의 태명은 그 솔라를 본받도록, 솔라라고 짓자."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사실은 꽤 진중한 것이 말의 무게다. 우리는 이 말을 기억했고 다시는 어떤 단어도 태명을 들먹이며 갖다 붙이지 않았다. 솔라는 초봄에 깃들어 가을에 태어났다.

태명을 이렇게 매니악하고 복잡하고 비장하게 짓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무리 아이를 기다렸어도, 아이를 잘 키우려고 마음먹었어도, 태명부터 이렇게까지 어려운 맥락을 가질 필요가 있었을까.

아이를 너무 열심히 키우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까지 된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그러나 한 가닥의 실이어도 꼬이면 꼬이는 대로 복잡한 매듭이 될 수 있다.


아들, 나의 솔라를, 내가, 못마땅하게 여겼다.

종종, 자주, 그랬다.

해주고 싶은 것만큼이나 가르칠 것도 많다고 생각하는 게 부모 된 나의 마음인지라, 그랬다.

아이가 식탁의자에서 처음으로 일어선 날이었다. 모두들 깜짝 놀랐고, 안전을 위해 앉으라고 하긴 했지만, 일단은 축하해 주라면서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날 모두가 식사하다 말고 일어선 아이에게 박수를 쳐 준 꼴이 되었다. 이제 아이는 밥 먹다 말고 일어서는 것이 하나의 놀이가 되었다. 입식 식탁에서 자주 일어서는 영아는 위험했고, 그래서 아이는 거실 좌탁에서 따로 식사를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아이는 좌식 탁자에 앉아서도 종종 일어나 밥을 먹었다. 론, 돌아다녔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잊을 만하면 밥상으로 돌아왔다. 한 술, 입에 머금고 또 일어섰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을 아주 일찍부터 아주 중요하게 가르치고 싶었던 내 마음과는 정반대였다.

내 마음만큼 잔소리하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내가 아이를 몰아붙이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말렸다. 입을 다물어야 식탁을 둘러싼 공기가 편했다. 나만 안 편했다. 그게 값이 쌌다.  


어머님과 남편은 아이의 감정을 지나치게 돌봤다. 어머님은 아예 아이를 울리지 말라고 나를 말리는 날이 많으셨다.

아이가 울면서 감정을 해소하고, 울다가 자기가 겪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다음에는 더 나은 방법을 써 보도록 하는 것도 육아에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우는 즉시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해서 마냥 좋은 육아는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이가 울다가 정서적인 충격이 생기고 트라우마가 남고 뇌발달이 저해될까 봐 아이가 우는 것을 되도록 피한다는 것이 어머님과 남편의 생각이다.

트라우마가 될 정도의 울음은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집에서 있는 일이지, 우리 집에서 아이가 우는 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의 울음에 대응하는 어머님과 남편의 자세는 내가 생각하는 정상 범주보다 지나쳤다.

내 아이가 장난감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우는 따위 일로 정서적 트라우마 같은 것을 가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체 그런 아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아이가 물 달라,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를 빨리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해서 뇌의 충격을 받게 될 정도로 사는 게 힘든 아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안전하고 청결한 환경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내 입장에서 아이가 고개만 돌려도 원하는 걸 짐작하고 물이며 간식이며 갖다 주는 건 소위 '시녀 육아'였다.


아이는 어른이 울리고자 마음먹지 않아도 울었다. 표현하기 위해 울었다. 그게 생물로서, 인간으로서, 본능이다. 울음을 다루는 법이 본능에서 출발하되 문명한 언어와 갖춰진 인격이 될 때까지, 돌봄과 교육은 계속 필요하다.

해주고 싶은 만큼 못 해주고, 가르치고 싶은 만큼 가르치지 못한다고 생각해 괴로웠던 것이, 다른 것은 바꿀 수가 없고 나밖에 바꿀 수가 없어서 더 많이 싫어하고 더 못마땅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들을 미워한 건 아니었다. 아들의 미운 행동을 막아야  하는데, 그때가 참 싫었다. 아들에게 가르치려고 할 때마다 그걸 방해하는 모든 것들의 맥락이 떠오르고 그에 따른 반감이 따라붙은 채로 아들을 대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그 감정이 싫었지만 그건 자괴나 자기 비하나 자기혐오를 일삼아서 떨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기분이 나빠졌을 때,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면, 아이는 활짝 웃다가도 표정을 굳히곤 했다. 나는, 점점, 더 빨리 아이와 멀어지고 있다.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건강한 독립을 이루는 속도가 아니라, 우리 사이의 교환이 이루어질 수 없는 속도로. 아, 끔찍하다.

감정에 제동을 걸어준 건 지난 8월의 별거와, 친정 엄마의 조언이었다.

"너, 어머니한테 하고 싶은 말을 못 했다는 건 둘째 치고, 그 때문에 해소하지 못한 감정을 남편과 아들에게 풀고 있잖아. 그것만은 그만해야 돼."


처음엔 억울했다.

왜 나만 불만이고, 나만 바꾸고 싶어 하고, 아무도 내 말을 안 듣고, 나만 인내하는데, 이제는 분노를 푸는 방법마저 지혜롭기까지 해야 하는가?


그동안에 남편이 나에게 일관되게 요구한 것은 한 가지였다.

"아이랑 조금 더 놀아 줬으면 해."

나는 아이들에게 적당히 놀 물건을 쥐어 주고, 몸을 일으켜 내 할 일을 따로 하는 편이다. 남편은 아이의 놀이를 지켜봐 주고, 도와주고, 어떻게 노는지 알려주고, 놀이 상대가 되어 주고, 들어 올려 주고, 자주 데리고 산책을 시켜 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아빠를 좋아한다. 남편이 내게 지적하고 싶어 한 건 이런 것들이었다.

우리 부부를 지켜보던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를 낳은 후,  부부는 각자 힘들어하더라. 여자는 자기 마음대로 못해서 힘들어하고, 남자는 자기만큼 하지 못하는 여자를 힘들어하고. 각자 너무 힘들어하더라.


여전히 아이에게 장난감을 보여준 후 일어나 설거지를 하러 가고, 그러다 아이에게 들켜 붙들리고, 아이가 울면 달래주는, 그런 순간이 여러 번 반복되곤 한다.

그럴 때 반성한다. 아, 남편 말을 잘 들어야지.

설거지가 급한 게 아닌데, 조금만 놀아주고 일어나도 되는 것을.

이른 아침 아이들이 잠에서 깨어 내 몸 위를 굴러다닐 때, 굳이 버티고 버텨 얕은 잠을 계속 자면서 생각한다.

네 엄마는 이런 사람이다. 너네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라. 일곱 시 전에는 나 못 일어난다.


시간이 많은 것을 도와준다. 버티고 있으면 그렇다. 그렇다고 시간이 공짜로 흐르지는 않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수레에 태우고, 끌고, 밀고, 오후에 그들을 맞아 반기고, 간식을 주고, 함께 마트 공원에 가고, 나쁜 행동에는 호통을 치고, 좋은 장난은 함께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장난감 탑을 쌓고, 미끄럼틀을 타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아이 곁에 있는 순간에 우리는 이런 식으로 행복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마당에서 뛰놀다가, '이제 가자'는 내 말에 수레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나는 그걸 보며 '잘했어!'라고 외치고, 무릎을 굽히고 앉아 팔을 활짝 벌린다. 아이는 활짝 마주 웃으며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싸우기도 했다.

-유튜브 많이 봤잖아. 그만 봐. 아니야. 이제 줘. 그만!

나는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아들, 이제 울지 마. 오래 울었어. 기분이 나쁘단 건 알겠어. 왜인지는 말을 해야 알아.

나는 아이와 함께 망신당하기도 했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했지! (이런 날은, 정말 뒤통수가 따가웠다.)

나는 아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하며 기다렸다. 이런 식으로.

-숟가락 들고. 네가 할 수 있어. 왼손으로 밥그릇을 잡아야지. 밥그릇 도망 못 가게. 오른손이 이제, 떠, 밥을 딱! 떠. 그렇지. 옳지, 잘했어! 맛있지? 엄마랑 하이파이브!

시간은 무위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마다 남편이나 어머님의 사랑을 의식하거나 극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나를 알리는 데에 집중했다. 너의 엄마인 나는 너와 이런 것을 하면 좋아한다, 이런 것을 싫어한다, 이런 너를 말리고 싶다. 이런 너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아주 나다운 엄마가 되었다.


이제 더운 날씨를 지나 선선한 가을로 접어든다.

"쇼핑몰에서 아들이 엄마를 여러 번 찾더라."

아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동안 옷 구경을 하고 돌아오니 남편이 일러 주었다.

이제 내가 안 보이면 아들이 엄마가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한단다.

드디어, 그의 마음속 한 자리를 내가 가졌나 보다.


"요즘은 아이에게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아빠, 엄마, 아기, 나, 이렇게 말해요."

언어치료 선생님이 알려 주셨다.

"그다음엔 할머니, 할아버지. 처음에는 가족 물어보면 아빠, 할머니였어요."

'할머니 밀려났어, 힝.' 선생님은 그렇게 너스레를 떠셨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집에 가는 길이 그렇게 평탄하고 좋았다.

아이에게 우리 가족의 존재가 이제야, 제대로 자리 잡게 되었구나 하고.

그렇게 나는 내 아이, 솔라에게 엄마가 되고 있다. 이미 엄마가 되어 있지만, 여전히 엄마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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