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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그미 Sep 28. 2024

질겅질겅

어떤 경향이 표면 위로 드러나기까지는 아주 사소한 사건들이 누적되면서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강둑에 퇴적이 일어나듯 아주 점진적으로, 아주 오래 말이다. 우리 가정에서 나를 모자라고 부족하고 무관심하고 돌봄에 소질과 의지가 없는 엄마로 여기는 경향은 다양한 힘이 매일 조금씩 작용하면서 퇴적을 일으킨 결과다.  현상에 나도 기여한 바가 있다. 그저 끌려가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은 제 때에 내 마음의 소리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독이 되었다. 그래서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은 버려두고 분노에 집중했다. 의도치 않아도 뇌가 그렇게 변해버렸다.

이 부부싸움은 서로의 오랜 회피, 맞물리는 비겁함과 각자의 인내 덕분에 오래도록 미루고 미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오래 참았다. 내가 참은 만큼 그도 참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결혼한 이의 지혜라고 했다. 무리 그렇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자신의 입장을 돌보는 쪽으로 각자 수축해야만 했다. 서로를 향해 확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화했다. 그게 각자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영화<툴리>를 보고 나서 울었다. 앞으로의 내 삶이 툴리의 곤란함을 닮을 것이라는 게 두려웠다. 결혼생활로 고단한 툴리의 얼굴이 내 미래가 될까 봐, 신부의 '메리지 블루'처럼, 앞선 걱정이 물밀듯 밀려오는 바람에, 급격히 우울해졌더랬다. 우는 나를 남편이 위로해주었고, 나는 그때 '아기를 낳으면 나 혼자 하게 내버려두지 말아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남편은 그러마고 다짐했다.

아이를 낳고 남편은 나를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 마음을 외면하던 그 순간마저도, 내가 힘든 것만은 피했다는 사실이 그가 바라는 최우선이었다. 그것이 한 톨의 거짓 없이 그의 진심이라는 걸, 그와 다투면서 깨달았다.

그는 내 마음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도 화가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안할 걸 그랬어. 열심히 했는데도 화를 내잖아. 힘들까 봐 신경썼는데도. 내가 아이를 네게서 빼앗았어?"

그는 화가 났기 때문에 '어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라는 마음으로 내버려뒀다. 둘째를 어떻게 키우든, 집안일을 어떻게 하든.

그는 실제로 그동안 힘들었다고 했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피곤했고, 그러고도 큰애와 놀아줘야 하니 힘들었다고. 내가 없는 한 달 동안 그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나는 집에 없는 동안 마음의 문을 닫았는데, 그는 그동안 마음을 열게 되었다고 하니 참 씁쓸한 일이었다.

여기서 누가 더 많이 인내했는지, 누가 더 착했는지, 누가 더 마음이 컸는지 따위를 따지고 싶지 않다. 누구나 각자의 그릇이 있고 그릇이 깨지기 전에 알아서 자신을 지켜야 할 뿐이다.


"당신이 내게 아집 없이 사과한 건 처음이야."

내가 말했다.

"그동안 내 생각을 이렇게 들어준 적도 없고."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아냐. 난 알고 있었어. 단지 내가 옳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랬어."

하지만 육아에 정답은 없으니까, 라고, 그는 조용히 되뇌었다.

아, 그는 자신이 정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지만 나도 그만큼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 더 실감했다. 그동안 진심이 담긴 그의 배려를 받았음을, 그러나 존중받지는 못했음을.

배려와 존중은 분명히 다름을 알게 되었다.


동태눈깔이 된 나와 대조적으로 남편은 배터리를 하나 더 장착하게 된 사람처럼 변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씻고 출근 준비를 한 후에는 밥솥에 씻은 쌀을 안쳐놓고, 퇴근하자마자 부엌을 살피고, 냉장고를 살피고, 저녁을 준비했다. 요리만 남편이 맡아둬도 내가 집을 살필 여지가 더 많아졌다. 아이들과 놀기도 조금 더 나아졌다. 아이들이 불 앞에 선 아빠에게 자꾸 달라붙어 곤란하기는 했지만, 사실 남편이 같이 사는 타인처럼 여겨지는 터에 남편이 그런 일로 소소하게 곤란하든 말든 나도 내 알 바 아니었으면 했다.

시댁의 부름과 연락도 부쩍 줄었다. 남편이 뭐라고 말했길래 이렇게 급변하게 된 것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생각하는 우리 가족의 일상이, 넷이서 복작복작 우왕좌왕하는 일상이 되었다. 나는 우리 일정을 매일같이 시부모님과 공유하고, 자그마한 일만 생겨도 서로 만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피로를 느꼈기 때문에 이 핵가족의 홑스러움이 편안했다.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이토록 깊은 분노와 불화를 동반해야 해서 나는 또다시 자괴감을 느꼈다.


남편은 여러 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며칠에 걸쳐서, 여러 번 사과했다. 말없이 밥을 먹다 말고도 사과했다. 그 사과에 나는 숟가락도 탕 내려놓고 한숨만 푹푹 쉬었다.

"내가 화를 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은 당신이 내 화를 받아 줄 마음이 생겨서 가능하다라는 게......."

며칠 요리를 하는 수고를 들였다고 해서, 말로 사과를 해서, 괜찮아지는 마음이 아니었다. 남편이 변하고 나서야 곪기 시작하는 나의 아픔이 있었다. 곪고 터질 여지가 이제 생겼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간이 지난다고 뭐가 될 거라 기대마저 없었다. 사실은 이 정도면 남자와 여자 사이로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연애를 할 때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 있어도 관계의 다른 면이 손상되면 이별할 수 있었다.

결혼은, 좋아하는 감정이 없어진 상태에도, 관계의 여러 면이 손상되어도, 선뜻 이별할 수 없다.

나는 이 시점에 되어서야 결혼이 무서운 것인 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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