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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움 Dec 20. 2021

그리움이 된 이야기

할머니 엄마



뒷벽 한쪽이 반쯤 넘어진 흙벽 집

뒤꼍엔 아름드리 팽나무     

다섯 살 아이와 낫처럼 허리 굽은 할머니가

팽을 줍고 있었다


파랗고 작은 알맹이     

아이는 팽을 먹었고 

팽은 할머니를 먹었고

할머니는 팽 속으로 들어갔다     


노란 콧물 쏙 나오면

치맛자락 끝으로 

팽 풀어주던 할머니     


아직도 거기 계신가요?     


팽그르르 굴러가는 

팽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팽나무 굽은 어깨에 눈을 얹다


검고 쭈글거리는 껍질     

웃음 짓는 할머니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을 이야기로 쓴 시입니다. 저는 어릴 때 할머니 무릎에서 자랐어요. 부모님이 계셨지만 형제들이 5남매나 돼서 둘째인 저의 자리는 늘 할머니 주변이었지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할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 아플 때 만들어 주신 맛난 호박죽, 할머니와 팽을 줍던 기억, 허리가 90도로 굽으신 할머니 등위에 물건을 올려서 장난을 하고, 말을 안 들어 속을 썩이고...


할머니는 부모님께 꾸지람을 들으면 따뜻하게 감싸주셨고 늘 저의 편이 되어 주셨지요. 아프면 보살펴 주시고 울면 눈물 닦아주셨어요.

할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어릴 때는 몰랐지요. 할머니는 저에게 엄마와 같으셨다는 것을!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유년시절이 참 처량하고 황량했을 듯싶어요. 할머니가 곁에 계셨기에 위로받고 힘을 얻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할머니는 사랑을 한없이 퍼주는 엄마이셨고 지지자이셨답니다. 

시에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습니다. '팽'이란 어린 시절의 추억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지요!

팽나무는 할머니를 의미하기도 해요.


아이는 팽을 먹었고

팽은 할머니를 먹었고

할머니는 팽 속으로 들어갔다


'팽'이라는 글자를 지우고 '추억'을 넣어서 읽으면 이 싯구의 이해가 쉬울 거예요!

나이를 먹고 아이들을 키우고 한참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야 할머니의 사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의 보살핌과 사랑이 저의 자존감의 뿌리였음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정말 감사했고 더욱 많이 그리워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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