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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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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움 Nov 27. 2021

집에 들어가는 방법을 잊어버리다니

열려라 참깨

공동 현관 앞에서 나는 '열려라 참깨' 하며 한 참을 우물쭈물 당황하고 있었다. 문 여는 방법을 갑자기 황당하게 까먹은 거다. '비번 + 종'을 평소처럼 무의식적으로 순서대로 눌렀는데 아무리 해도 문이 안 열리는 거다. 두세 번 반복하다 '아니 이게 아니었나? 그럼 어떻게 하는 거지?'

도무지 다른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가 텅 빈 느낌! 갑자기 바보가 되었다.

양 손에는 마트에서 사 온 무며, 두부, 간장, 고무장갑이 나체인 채로 들려 있었다. 외출하다 돌아오는 길에 산 물건이라 봉투도 없이 낱개로 들고 온 터이다. 내 집 현관 앞에서 집엘 못 들어가고 연신 비번을 눌러대고 있는 꼴이라니,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누가 보면 도둑이라고 수상히 여길 판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는 시간이고...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 받는다.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에 쿠팡에 공동 현관 번호를 등록했던 방법이 떠올랐다. 그래 맞아 "종 + 비번"이었지! 

종을 터치하고 비밀번호를 차례대로 누르니 굳게 닫힌 대문이 알리바바의 마술처럼 스스륵 열린다. 참 내, 너무도 당연히 열려야 하는 문인데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어이가 없어서 압력솥에 피시식 김이 빠지듯 웃었다. 치매도 아니고 대체 머리가 어찌 된 거야, 포맷해버린 컴퓨터처럼 이전 기억이 먹통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 집에서 산 지가 5년인데 종종 한 번씩 이런 일이 있다. 오늘처럼 문 여는 순서를 잊은 적이 한 번 있었었고, 비번 차체를 까먹었던 적이 두어 번 있었다. 그 이후 비번은 자동 암기가 되어 있긴 하지만, 행여 또 먹통이 될 때를 생각해서 누르는 순서를 패턴화 하여 기억해 두었다. 이제 문 여는 순서도 '종 비번'이라고 이미지 패턴화 해 두어야 할까 보다.


어릴 때 엄마도 광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성이시는 모습을 가끔 본 적이 있다. 마당에서 놀다가 "엄마 왜 그러세요?"하고 물으면 "내가 뭐하러 여기 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실 때가 있었다. 한데 내가 그렇다. 냉장고를 열고서 왜 열었는지 까먹는다던지, 베란다에 갔다가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서 있는다던지 말이다. 핑계하기를 '아이를 하나씩 더 낳을 때마다 기억력이 감퇴되었다'라고 푸념처럼 말하곤 한다. 

그럴 때 응급처치로 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뭐하려고 했지? 하며 그대로 서서 머리를 헤집지 않고 얼른 행동을 원상복귀시킨다. 냉장고를 열기 전처럼 문을 닫고, 베란다에 오기 전 원래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무엇을 하려 했는지 금방 생각이 난다.  




깜박깜박하는 건망증, 순식간에 두뇌를 홀라당 화이트 칠해버린 것처럼 정보가 지워져 버리는 막연함, 나이를 먹어가는 당연한 현상일까?

[서현 정신의학과]에 따르면 건망증 증상을 겪는 현대인들이 많다고 한다. 건망증은 갑작스럽게 기억이 나지 않는 현상으로 뇌에서 기억을 가져오는데 잠시 이상이 발생한 것을 말한다. 건망증은 크게 주관적인 원인과 경도 인지장애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관적인 원인으로는 스트레스나 음주, 노화 등이 있는데 인지기능은 정상의 범주라 한다. 경도인지장애는 최근 발생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우울증, 불안감, 고혈압, 당뇨, 흡연, 암 등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인지 기능이 약간은 저하되지만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으며, 두 가지 원인 모두 치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다. 아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휴~ 다행이네!


이런 현상이 잦다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나의 증상은 주관적 원인에 해당하여 심각해보이지는 않는다. 우리 엄마들과 선배 언니들의 모습에서도 많이 봐왔던 터라 그러려니 하며 위안을 받는다. 잠깐 맛보는 씁쓸한 현상이지만 아마도 치매가 오거나 기억상실에 걸리면 긴 시간 이런 암담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무지 내가 뭘 하려 한 건지, 앞에 있는 물건이 뭐하는 물건인지, 어디를 갔다가 거기가 어디인지 당최 생각이 안 난다면 얼마나 막연하고 불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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