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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wa Feb 09. 2024

나의 로즈마리

보라색 꽃을 애타게 기다리며

" 올해는 꽃이 안 피려나? 왜 이리 꽃망울이 적지? 이상하다..."

'혹시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무모한 짓을 한 건가?'


집을 드나들 때마다 집 앞에 심어져 있는 커다란 로즈마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심란하다.

특히 2년 전쯤부터는 내 어깨가 으쓱할 정도로 보라색 꽃을 한가득 피워 뽐내던 로즈마리가 올해는 왠지 꽃망울도 적고 꽃을 피울 기미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에게 로즈마리가 온 것은 벌써 십 여년 전이다.

딸아이의 한 살 기념으로 꽃집에서 작은 화분을 샀는데 죽을 둥 말 둥 가늘게 자라다가 다행히 살아주었다. 그러다가 조금 커져서 현관 앞에 작은 터가 있어서 옮겨 심었는데, 딸과 같이 누가 더 크나 경쟁하듯이 잘 크고 있다.


로즈마리는 두 종류가 있다. 옆으로 퍼지면서 자라며 가지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종류와 나무처럼 위로 쭉 쭉 뻗으며 자라는 종류다.

살 때는 뭔지도 모르고 향기가 좋은 허브라서 샀는데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꽃의 색깔은 대체로 보라색을 띠는데 그것도 가지가지다. 아주 연한 보라색부터  푸른색이 강한 보라색까지..


우리 집 로즈마리는 내 생각으로 그냥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싶다.  

'왕족 혈통'

우스운 말 같지만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위풍당당하다.

동네를 다니면서 집 앞에 심어놓은 작고 큰 로즈마리를 꽤 보았지만 우리 집 로즈마리는 좀 특별하다.


우선 키가 아주 크게 자랐다. 원래는 밑동에서부터 가지가 많이 뻗어 옆으로 크게 퍼졌는데, 내가 티브이에서 나무처럼 크게 키우는 로즈마리 농장을 보고 그걸 흉내 낸다고 옆가지를 쳐내서 점점 위로 자라게 되어 지금은 키가 나보다 크게 되었다.

근데 문제는 게으름 피우다가 초반에 모양을 잘 잡아주지 못해서 가지가 휘어져서  모양이 삐뚤빼뚤 이상해졌다. 키가 너무 커지자 밑동이 휘청 거려서 지금은 줄로 묶어서 잡아주고 있다.


또 하나 내가 엄청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꽃 색깔이 아주 세련되고 화려한 보라색이라는 점이다. 여러 로즈마리를 보아도 우리 집 로즈마리 만큼 멋진 보라색을 본 적이 없다.

작년에는 정말 너무 행복했다. 가지가지 작은 꽃망울이 잔뜩 맺히더니 화려한 보라색꽃이 나무 전체에 가득 피어서 탄성이 나올 정도록 아름다운 꽃을 피웠던 것이다.

집을 드나들 때마다 로즈마리의 꽃과 향기에 취해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꽃이 적다. 꽃망울도 적다.

마음 한구석이 켕기고 죄를 지은 기분이다.

아마 나의 탓인 것 같아서다.

내가 가지치기를 너무 심하게 한 것이 원인인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 가지를 많이 잘라 버린 것 같다.

티브이에서 로즈마리는 바람이 통하게 가지를 잘 쳐주는 게 좋다는 말을 들을 후에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가지를 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더 죄책감이 느껴지는 건

가지치기를 하던 날 남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가위를 든 내 손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분노의 가위질을 했지만 로즈마리는 금방 풍성한 모습으로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래도 내가 좀 심했나 보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보라색 꽃들의 향연을 이번 겨울에는 아직 누리지 못하고 있다.

미안해서 마음이 걸린다.

나의 격한 감정의 칼로 로즈마리를 해한 것 같아서이다.


나는 좀 더 온화한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에게도 로즈마리에게도 내 힘과 권위를 과도하게 휘둘러 해를 가하지 않도록..

안 하느니만 못하지 않도록..

지금 로즈마리가 서 있는 자리는  이사 왔을 때 나무가 심어져 있던 자리다.

원래는 크게 자랄 나무인데 왠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밖에 심어놓은 나무가 그냥 죽는 경우는 좀처럼 없는 일인데....


나의 로즈마리가 그 자리를 잘 채워주고 있다.

너무 크게 자라서 힘들게 할 일도 없을 것이다.

다음에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도 피워 줄 것이다.

허브의 강한 향기로 해충도 막아줄 것이다.


꽃말에 보니 로즈마리는 약으로 쓰기도 하고

'나쁜 액을 막는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역시 내 안목이 좋구나, 액을 막으려고 집 앞에 떡하니 심어놓고 나무처럼 크게 키워놓았네. 액이 못 들어오겠다. 하하하'

잘 맞아 떨어지는 상황이 우스워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웃어버렸다.

다른 나무도 꽃도 별로 관심이 없는데 로즈마리에게는 이상하게 끌리는 게 있다.

여러모로 로즈마리는 나에게는 좀 특별한 꽃이다.


*덧붙이는 글


꽃이 안 피는 게 내 탓으로 생각하고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하며, 작년에 핀 꽃 사진을 보고 싶어 앨범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날짜를 보니.. 3월 중순이 아닌가!

이런! 내가 날짜를 착각하고 있었군. 한 겨울이 아니라 살짝 추운 3월이었어.  그럼 못 핀 게 아니라 아직 안 핀 거구나?

나도 참 덤벙이라니깐.

내가 널 너무 기다렸나 보다.

아무튼 난 이제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고 편안해졌다.

올 3월에 또 얼마나 화려한 자태로 나를 매혹시킬까.

설렘 가득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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