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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wa Feb 09. 2024

<작은일터 이야기>난 청소도 괜찮아요

‘내일은 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쉬셔도 됩니다. 미안합니다.’

'헐, 이건 뭐지? 이렇게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해도 되는 거야?'


내 급료도 적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뭔가 비합리적이고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 시프트라는 것은 서로의 시간을 보장하기로 한 약속이 아닌가.

가게 입장도 이해가 간다. 할 일도 없는데 굳이 출근을 한다면 인건비나 축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오지 말라는 횟수가 잦아들자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음 시프트를 낼 때 메시지를 곁들였다.


‘저는 두 시간도 괜찮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시프트에 넣어주세요.’


그 후부터는 내 일을 다 마친 후에  홀담당 동료에게 다른 할 일이 있는지 물었다.

“난 청소도 괜찮아요, 필요하면 할 수 있어요”

레몬 자르는 일, 홀청소, 화장실 청소. 기름때 청소, 기름받이 통 비우기. 후드 분리해서 청소하기, 가스곤로 주변 청소하기 등 할 일은 많았다.

아침이면 기름이 넘쳐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기름통을 비우고 용기 안에 휴지를 깔아 두었다. 그렇게 하면  매일 휴지만 갈아도 기름통은 간단히 깨끗해졌다.

환풍기 후드를 분리했다가 다시 조립할 때는 스패너로 삐뚤어지고 튀어나온 부분을  잘 손질했다. 그러자 아귀가 잘 맞아서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일본 사람들 큰 특징 중 하나는 남에 일에 잘 관여를 안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공식적으로 부여된 임무에 대해서는 책임감 있게 잘하는데 담당이 정해지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손도 대지 않는다.

나는 아직 미숙한 대신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자진해서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까바네 상이 왔다.

“아까바네상, 오늘 여기 기름 닦았어요. 매일 닦고 있어요.”

“오~~”

“기름 용기에도 이렇게 휴지를 넣고 매일 바꿔주니까 편해요”

“아, 휴지가 기름을 빨아들이네.”

.

요즘 들어 아까바네 상도 주방바닥의 수채구멍에서 찌꺼기 걸러내기 일을 자주 한다. 내가 10개월간 가게에서 일하면서 총 두 번 봤는데, 지난주에는 두 번 볼 때마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뭔가 심경에 변화가 있는 것일까?

서로 배려하고 돕는 느낌이 들면 일하는게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 이곳은 시프트로 돌아가는 가게이므로 ‘내 것’이라는 주인 의식을 갖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래도 꽤 안정적으로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자기의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하면 잘 돌아가는 시스템인 듯하다. 베티상과 아까바네상 둘 다 성실하고 예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참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청소를 한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내일은 나오지 말아 주세요’라는 메시지는 더 이상 받지 않게 된 것이다. 가끔 할일이 거의 없는 날도 있다. 그럴 땐 당연히 얼른 할 일을 끝내놓고 청소를 한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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