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김천씨 #박혁거세 #신라 #경주김씨 #역사 #뉘조 #비단 #서릉씨
2011년 7월 내몽골 답사를 갔을 때 일이다. ‘치치하얼(하얼빈 서북쪽 위치)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재중동포 '전창국 교수'와 식사를 했다. 식당에서 둥근 식탁에 모여 답사 일행과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분이 밥그릇을 입에 바짝 대고 젓가락으로 긁어 드시는 모습을 보고 쳐다보게 됐다. 눈이 마주치자 급히 그릇을 내려놓아 죄송했다.
그분은 중국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살았는데 경상도 말씨를 썼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조선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북한 말씨, 즉 함경도 억양을 쓴다. 어떻게 경상도 말씨를 하시는지 여쭸다. 1930년 일본이 만주국 건설로 경주가 고향인 조부모와 일가친척들이 끌려 왔다고 했다. 그분의 조부모가 ‘되놈말(중국말)’은 안 배우겠다고 해 어렸을 때부터 ‘경상도 말씨’를 듣고 자랐다는 것이다. ‘치치하얼’에 그런 동포만 해도 20만 명이 넘는다.
어쩌다 태어나보니 '경주 최 씨' 아빠밑에 태어나 ‘경주 김 씨' 증조할머니와 '김해 김 씨'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경주 이 씨' 남편을 만나 '경주 이 씨' 아들을 낳았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경주 김 씨' 아니면 '경주 이 씨', '전주 이 씨', '밀양 박 씨'다. 신라의 수도 경주 출신들과 ‘김이박‘이 대다수다. 어느 학자가 백제와 고구려 성씨가 남아있지 않은게 의아하다고 했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 금천의 후예고 성을 김”이라고 했다. 김수로왕과 김유신의 비문에도 자신들은 “헌원의 후예이고 소호의 자손이다”라고 했다. 소호의 어머니는 비단을 창시한 1대 여자 시조 '뉘조'이시다. 아버지 '황제 헌원'은 중국의 1대 시조라고 하는 분이다. 아들의 성이 김 씨라고 했으니 아버지도 김 씨 아니겠는가. 중국인들은 신라인들과 시조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몇 년 전 ’아마존 쇼핑몰‘에 우리나라 중소 제품을 소싱해 판매를 했다.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내가 올린 한국 화장품과 스포츠웨어를 구매하는게 신기했다. 회사통장에 달러가 들어오는 날이면 외화벌이 한 몫 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해외 온라인 쇼핑몰은 결제 금액이 100%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부 금액은 '환불'을 대비해 남겨두고 서너달에 걸쳐 입금됐다. 유통업을 할 때 최소 1년 동안은 재고와 판매 대금 회수 기간을 버틸 '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물건이 판매되면 사입을 해서 이중으로 돈이 나가는데 통장에 돈이 마르기 시작했다.
시행착오 끝에 재고 부담이 없는 한국 문양과 무늬를 이미지로 만들어 '파일‘로 판매하려고 전환했다. 그중에 오색 구름과 ’봉황'이 수놓아져 있는 단청을 출력해 매일, 매시간 들여다 봤다. 봉황은 왕조에서 쓰던 상징인데 돈벌이에 쓰는게 내심 걸렸다. 이색적인 그림을 외국 사람들이 좋아할까? 봉황 그림을 출력해 액자로 걸려고 할까? 상품성이 있을지 판단이 안 섰다. 이미지를 올려서 판매 상품으로 등록하는데 '상품 설명'을 뭐라고 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오색구름 속 봉황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했다. 달러를 버는데 이쯤이야!
옛날에 공자가 '담자'라는 사람을 만나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소호는 새의 이름을 따서 관직의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어째서입니까?”
담자가 대답했다.
“저의 조상이라 제가 그 까닭을 압니다. 우리 고조인 소호씨 지摯(폐백, 비단을 뜻함)가 즉위할 때 마침 봉황이 날아왔습니다. 이 때문에 백관의 장관들에게 새 이름으로 관직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는 공자의 일화를 모아 놓은 책 '공자가어'에 있는 내용이다.
위 내용으로 보면 소호의 이름은 '김지'이다. 순수 한글 이름으로 '김비단'이다. 그가 왕 위에 오를때 '봉황'이 날아들어 문무백관의 관직명을 새이름으로 붙였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 '황제 헌원'은 오색구름으로 관직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청운씨, 진운 씨, 백운 씨, 흑운씨, 황운씨인데 오방색상으로 알려진 색동이다. 오색 구름은 아버지와 함께 했던 공신들을 상징하고 봉황은 소호 자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아마존에 팔려고 했던 봉황 그림의 윤곽이 잡혔다. 벼슬길에 오른 대신들은 비단에 '구름과 번개와 봉황이 수놓아진 흉배'를 가슴에 패치하고 공무를 봤다고 덧붙이면 되겠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 주변은 온통 봉황으로 덧칠해져 있다. 장례식장의 근조기에 ’봉황‘이 글씨를 감싸고 있고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같은 대회명을 붙이고 상장이나 임명장 테두리에도 두 마리의 봉황이 마주 보고 날개와 꼬리 깃털을 늘어 뜨리고 있다. 내가 결혼할 때 받았던 성혼선언문 표지에도 봉황 그림이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헌원'과 '소호'를 상징하는 그림을 쓰고 있다. 몇 천년째인가. 모 아니면 도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외할머니가 '한글'을 깨치고 가야 한다며 전해지는 속담처럼 부엌에서 낫을 놓고 기역자를 알려주셨다. 그녀는 무학이었고 서당 툇마루에 앉아 어깨 너머로 배웠다고 했다. 어린시절 한글 자음의 순서가 왜 기역, 니은, 디긋, 리을인지 궁금했다. 리을이 먼저 나올 수도 있고 니은이 먼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봉황 단청을 공부하면서 자음의 4번째 리을(ㄹ)은 '김 씨'라는 한자가 나온 배경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4천년전 청동기 유물에 삼각형 모양의 집을 뜻하는 형상에 리을(ㄹ)이 배치된 문자가 김씨라는 것이다. 이 리을(ㄹ)은 새을(乙)을 뜻하며 자식(子)이라는 뜻이 있다. 누구의 자식을 말하는가. 소호 김씨는 구름으로 관직명을 정한 아버지 황제와 비단을 직조한 어머니 '뉘조'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도서 문자로 나타난 하나님 참조)
소호의 어머니가 창업한 비단은 누에고치가 4번 잠을 자고 나서 실을 만든다. 이때를 4령이 아니라 '5령 누에'라고 한다. 잠을 다 자고 나면 마시멜로 같은 타원형의 고치를 짓기 시작한다. 그것을 삶으면 비단실이 되고 그대로 두면 고치 속에 있던 누에가 딱딱한 갑甲(숫자 4를 상징)을 뚫고 나와 누에나방이 된다. 새(乙)가 되면서 암수를 찾아 짝짓기를 한다. 암컷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500개의 새까만 알을 낳고 죽는다. 국가가 이 종자씨를 농가에 보급해 잠업을 장려했다.
주역을 강의하는 어떤 분이 하늘을 나타내는 천간인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인'에서 숫자 4를 뜻하는 갑이 먼저 나왔을까 의아해 했는데 누에고치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4번의 잠을 기준으로 삼았던게 아닐까 싶다. 딱딱한 고치인 갑옷을 뚫고 나오면 사람을 덮어주고 입혀주는 비단실이 나오고 4번의 잠을 자야 누에 나방이 되어 알을 낳기 때문에 의미를 뒀던게 아닐까.
어렸을 때 빠진 어린이처럼 '공기놀이'에 미쳐 친구네 집에 눌러 앉았었다. 1단에서 4단을 거쳐 마지막 손등에 공깃돌을 올려놓을 때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손바닥을 쫘악 뻗었다. 한데 모아 꺾기를 해서 점수를 내는 짜릿함을 어디에 견줄까. 선조들은 누에처럼 네번의 잠을 거쳐야 결실이 생기는 일생을 공기놀이에 담았던게 아닐까. 윷놀이도 4개의 막대기를 이용해 4번째 배를 뒤집혀 나온 '윷'의 이름으로 놀이명을 정했다. 다섯 번째 모와 네 번째의 윷은 무늬가 모두 동일해 큰 점수이다. 오늘날 라스베이거스와 강원랜드의 빠징코 놀이가 윷놀이를 보고 착안한 게 아닐까. 뭔가 그럴듯하다.
103세에 돌아가신 증조할머니가 쪽진 머리에 꽂았던 비녀가 다른 말로 '잠'이다. 누에가 잠잘 때 고개를 치켜들고 잔다. 머리를 들고 잠을 자는 누에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 비녀이다. 긴 머리를 땋아 돌돌 말아 잠으로 꼭 묶었던 것이다.
내가 결혼식을 올리고 폐백을 드릴 때 옷과 머리를 장식해 주시는 분이 따로 있었다. 오색의 끝동을 달고 새의 날개처럼 넓은 활옷을 입고 큰 비녀를 꽂아 금박을 수놓은 댕기를 말아 앞으로 늘어 뜨렸다.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고 나면 그 화려함과 고상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마존에서 돈 좀 벌겠다고 애쓰다가 의미를 알고 나니 옛날 것을 무조건 내다 버리기에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아깝다. 선조들이 농사지은 누에와 비단으로 신랑, 신부를 장식하고 자녀를 낳아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는 '폐백'이 당일 결혼하는 부부들에게 재활용되고 있으니 그나마 만분다행이다. 밤, 대추를 절수건에 던지며 결혼식의 긴장감과 피로를 씻어준 재기 발랄한 관례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난생사화는 유명하지만 같은 날 태어난 왕비의 탄생 신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는 '아리영정'이라는 연못에서 청룡이 나타나 왼쪽 갈빗대에서 푸른빛의 알을 낳아 그곳에서 나왔다. 용을 상상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청동기 금문에 의하면 용은 누에를 뜻한다. 누에의 신성함이 세월이 흘러 용으로 변천한 것이다. 4번의 잠을 자고 난 어른 누에는 푸른빛을 띠고 있는데 자식을 낳는 여인을 상징한 것 아닐까.
기독교인들이라면 하나님이 남자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여성을 만들었다는 신화를 듣게 된다. 박혁거세의 왕비가 청룡의 왼쪽 갈빗대에서 나온 이야기와 유사해 요즘 같으면 표절 시비가 붙을만 하다. 성경에는 고구려 동명성왕 일화와 비슷한 것도 있다. 기독교 국가 미국에서 신라의 탄생 신화뿐 아니라 성씨와 유물에서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사실이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사서의 설명과 부합되는게 있어 신기했다.
태극마크를 사용하는 버지니아주 방위군이 수호하고 있는 '제임스 강' 끝이 V자 모양이다. 이곳에 '리치먼드'라는 도시가 있는데 워싱턴 DC와 2시간 거리에 있다. 이곳에 유서 깊은 장소가 몇 군데 있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메이몬트‘라는 연회 장소이다. 12만 2천4백17평에 달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저택이자 공원인데 유서 깊은 주택 박물관과 수목원, 정원, 마차 컬렉션, 토착 야생 동물 전시관, 어린이 농장 등이 있다. 그곳에 가운데 물이 흐르고 화살처럼 휘어진 양쪽 계단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 구조물이 있다.
경주시 배방동 남산 서쪽에 대한민국 사적 1호 ’포석정‘이 있다. 물길의 모양이 마치 전복을 뒤집어 놓은 모양과 같아 전복 포(鮑)자를 썼다. 총석정, 화석정처럼 돌로 만든 정자이다. 산골짜기의 물을 끌어다가 길을 내고 정자를 지어 연회 장소로 사용했다. 이곳에서 문무백관이 품계에 따라 열을 지어 앉아 물에 술잔을 띄워 마시면서 시도 짓고 노래도 부르며 즐겼다.
아이들과 전국으로 역사 답사를 다닐 때 한번 찾아가 봤는데 아담해서 운치가 있었다.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먹고 노느라 신라가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고 보는 애석한 곳이다. '메이몬트'의 돌계단 연못을 보니 신라 포석정을 묘사한 기록이 떠올라 신묘했다. 빅토리아 시대 건물인데 우리에게 익숙한 팔작 지붕 형태의 정자가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