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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Oct 12. 2023

버지니아 실크로드

#평양 #펜실베니아 #비단 #실크 #신라 #역사 #나침반 #잠실 

만주에서 비단 장사한 할머니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1985년은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이 있던 해이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중이라 여든 여덟의 증조 할머니가 졸업식에 참석했다.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시골 마을의 졸업식이 끝나고 담임 선생님이 내게 ’교장실‘로 가보라고 했다. 인근 마을의 어르신 한 분이 졸업생 중 한 명을 선발해 5만원씩 장학금을 주는데 받게 된 것이다. 


1985년 삼미초등학교졸업 기념사진


그녀는 교장실을 따라와 한켠에서 수여식을 지켜봤다. 돈이 든 흰 봉투가 내 손에 넘어오자 그녀는 ’한복 치마‘ 안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하얀 속고쟁이가 보였다. 교장실은 정적이 흘렀고 그녀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치마 속에서 석유 냄새를 풍기는 신문지 한 뭉탱이를 꺼냈다. 벽돌 크기보다 긴 게 둘둘 말려 있었다. 담배 한 보루였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기보다 새까맣게 어린 교장에게 신문지를 건내며 허리를 조아렸다. 어디선가 신문지 냄새가 나면 그때 멋쩍어하던 교장의 낯빛과 증조 할머니의 사례를 마친 사람의 뿌듯해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는 나보다 70살이 더 많았다. 고종 황제가 커피를 마시다 쓰러진 1898년 조선말에 태어났다. 그녀는 나라가 망하고 부모님을 일찍 여위였다. 집안 어른들이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게 하려고 12살에 20살 청년에게 시집을 보냈다. 오빠 같은 신랑 등에 업혀 울다 잠이 들었다. 그녀는 콧대가 낮고 마른 체형에 허리가 꼿꼿했다. 나라가 망하고 난리통에 자식이 죽자 속상한 마음에 담배를 폈다. 샘이 빠르고 기억력이 좋아 손주들이 빌려간 500원이라도 받아냈다. 


어느해부터 그녀는 시집온지 ’100년‘이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12살에 시집을 갔으니 112살이란 소린가!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창피하다고 말을 아꼈다. 사람들이 나에게 그녀의 장수 비결을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술, 담배, 소식, 노름'이라고 한다. 나를 앉혀 놓고 10원짜리 화투를 하려고 고사리 손에 화투장을 쥐어주고 조기교육을 시켰다. 지금도 쳐다보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살았으면 화성군수가 공무원들을 대동해 내복을 사들고 왔다. 화성군에서 가장 고령자인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차도 안다녀서 돌뿌리가 튀어 나온 시골길을 어떻게 왔는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만주에서 비단 장사‘로 큰 돈을 벌었다. '화성군 동탄면'에 산과 논 밭을 사들였다. 밤마다 돈 세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내가 유독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의 '만주 비단 유통업'과 맞닿아 있다. 어른이 돼서 그녀가 보고 싶어질때마다 '만주'를 가보고 싶었다. 중국에 답사 갈 기회를 얻어 ’만주‘를 몇 차례 갔다. 그녀가 누빈 비단 시장은 어디쯤일까.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한 러시아 국경 인근의 ’북만주‘까지 갔었다.


잠실은 누에가 사는 집


비단을 만드는 누에는 25-27도에서 생존한다. ’불‘과 ’습도‘ 조절을 갖춘 '잠실'에서 키웠다. 누에의 사료인 뽕나무는 물을 좋아해 수분 공급이 중요하고 물빠짐도 좋아야 한다. 주로 강둑, 강가 인근에서 자란다. 특히 고령토라는 ’백토‘에서 가장 잘 자란다. ’백토‘는 양반김 같은데 들어있는 ’습기 제거제‘ 원료이며 ’도자기‘를 만드는 흙이다. 뽕나무가 자라는 토양에서 '조선 백자'가 탄생 했으리라. 백토로 바른 방에서 자면 황토방처럼 치료 효과가 있다.


누에에서 뽑아낸 명주실은 ’옷감‘뿐 아니라 의료용 ’수술실‘로 쓰이고 악기에도 쓴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등의 현악기 줄이 비단이다. 마시멜로 느낌이 나는 타원형의 고치는 누에가 나방이 되기전 잠을 자는 ’갑옷‘이다. 선조들도 ’비단'을 덧대 방탄복으로 활용했다. 몸에 화살이나 총을 맞았을 때 비단이 피부속으로 같이 들어가 그것을 감싸서 비단을 같이 빼내면 외상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 비단은 몸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통풍을 해주니 오늘날 ’천연 고어텍스‘ 소재로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밤섬 살인 사건


1533년 조선 중종 때 일이다. 밤섬(栗島)에 어떤 여인이 목이 묶이고 얼굴이 깨지고 음문(陰門)에 막대기가 꽂혀 죽은 채 뽕나무 아래 버려진 사건이 발생 했다. 지금의 마포대교 인근에 밤섬은 섬이라기엔 억지가 있어 보인다. 섬에 유기된 시체는 대갓집의 사나운 부인이 질투심에 죽였을 것으로 판단해 이웃에 가까운 세 집을 탐문 수사 했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밤섬에는 '8천 2백 80주(株)'의 뽕나무가 있었다. 형식은 ’밤섬‘인데 내용은 ’뽕나무‘이다. 

 

조선시대 '마포(麻浦) 지도'를 보면 하단 오른쪽에 길죽한 밤섬(율도)이 있다. 마포라는 지명이 삼베(麻)에 강가 포(浦)인 걸 보면 비단이나 직물이 드나들고 하역하는 곳이었으리라. 태극마크를 사용하고 있는 버지니아주 방위군인 ’제29대 보병대‘의 역사가 시작된 '제임스 강'에도 밤섬이 있다. 최근까지도 조선시대 기록처럼 이곳에 사체가 유기되고 강물이 불어 익사하는 뉴스가 났다. 

     

뽕나무 스트리트

버지니아에 밤나무와 공생 관계인 뽕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뽕나무 로드, 뽕나무 스트리트, 뽕나무 에버뉴, 뽕나무 레인, 뽕나무 트레일이 있다. 실크로드라는 지명도 있는데 '제임스 타운' 정착지 입구에 '뽕나무 섬'이 있다. 이곳은  대서양에서 식민지 건설을 하기 위해 접근한 배들이 통과하던 곳이다. 


영남대 섬유공학부 조환 교수는 영어 '실크(Silk)'의 어원을 우리말 '실꾸리'로 보고 있다. 실을 감아 놓은 뭉치를 말하는데 '실꾸리'를 빨리 말하면 '실크'가 된다. 미국 사람 성씨중에 우리말 ‘비단’을 쓰는 일가들도 있다. 그들은 초기에 영국에 살다가 북미 해안가로 이주해 식민지 건설에 참여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그들은 옷에 다는 ’버튼‘을 만들던 후손이라 버튼(Button)의 스펠링이 ’비단Bidan‘으로 변형됐을 것으로 본다. 혹은 강가에 살았던 사람(dweller by the down)이라는 뜻에서 파생됐다고도 봤다. 


동남아시아에서는 'Bidan'을 '산파'나 '조산사'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삼신할머니'가 자식을 점지해준다는 속설이 있다. 아무리 작은 사찰도 '삼신각'이 반드시 있는데 하얀색 호랑이를 옆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든 그림이 있다. 주로 부모들이 자녀의 입시나 시험을 위해 기도하는 곳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비단을 직조해 잠업농을 일으킨 1대 시조 '뉘조'이다. 우리들에게는 '삼신 할머니'가 더 익숙한 이름이다. 나라에서 임금은 농사와 의학의 시조 '신농'께 제사를 지내고 왕비는 비단의 시조 '뉘조'께 제사를 올렸다. 임금이 선농단에서 농사짓는 시현을 한 것은 배우지만 왕비가 누에에게 뽕잎을 먹이는 행사를 치루고 '뉘조'께 제사 지냈다. 이때 누에를 위한 시와 노래가 연주된다. 


왕비가  누에가 애써 만든 고치를 물에 삶아 실을 뽑기 때문에 나방이 되지 못하고 번데기로 죽기 때문에 누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잠령제'를 지낸다. 죽은 벌레를 위한 제사라니!  



예전에는 신부가 신랑측에 '비단'을 예단으로 보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예단이 오갈까. 혼례가 치뤄지고 아이가 태어나 돌잔치를 할 때 비단을 만드는 명주실을 준비한다. 돌잡이를 하기전 갖가지 물품이 쟁반에 올려지는데 '명주실'을 시어머니와 아이 목에 걸고 기념 사진을 찍는다. 그저 아이가 오래 살기 염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할머니가 '삼신할머니'를 대신해 아이의 수복강령을 비는 세레머니가 아닌가 싶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비단을 '산파'로 뜻하는 걸 보면 비단을 직조한 삼신할머니와 맞닿아 있는게 아닐까 싶다. 

  

신라는 국명 자체가 '비단국'이다. 신라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라고 고백한 '소호김천씨'는 김씨인데 버지니아에 '김 버지니아'라는 여성이 기타를 치며 청어떼 노래를 부르며 산다. 우리나라처럼 성씨가 먼저 나온 착각이 들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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