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애팔래치아 #체로키 #인디언 #사투리 #산스크리트어
친정 오빠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다. 복숭아를 먹거나 만지기만 해도 입 주변이 붉게 변하면서 가려워 했다. 분홍빛 달콤한 과육을 한 입 베어 먹으면 입안 가득 침이 쏟아진다. 목구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속도는 한 두개로 부족했다.
복숭아의 황홀한 맛은 ‘복사꽃’을 봤을 때와 다르지 않다. 분홍과 흰색의 오묘한 조화가 눈의 시신경을 자극해 복사꽃 나무 아래 양 손을 들고 흥분하게 만든다. 시골에서는 과수원을 하는 아저씨가 양동이에 담아준 복숭아를 철마다 먹었다. 뜨거운 퇴약볕 아래 무거운줄도 모르며 S자로 난 흙길을 걷다가 쉬면서 침을 삼키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말에 서울로 전학을 오면서 '이중섭'의 작품으로 만난 ‘복숭아’는 지금도 선하다. 서대문 호암미술관에서 ‘이중섭 작품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 미술 숙제가 있었다. 15살에 난생 처음 혼자 버스를 타고 정거장마다 확인하며 내릴 곳을 놓치지 않으려고 몇번이나 확인하며 갔다.
햇볕이 들지 않는 건물의 갖가지 화확 냄새와 시야를 좁히는 낮은 조도에 가슴이 콩콩 거렸다. 이중섭의 ‘황소’는 의무적으로 봐야 했는데 시골집 외양간에서 여물을 씹던 순한 표정의 소가 아니였다. 붉은 빛의 거친 붓 선이 우렁차고 억세 보였다.
담배를 싼 은박지에 그린 작품과 아이들에게 엽서로 복숭아를 먹이는 아버지의 재치에 마음을 뺏겼다. 조롱박처럼 생긴 큰 복숭아를 가운데 두고 발가벗은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껴안고 즐거워 하는 모습은 그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게 했다. 복숭아는 새들도 좋아해 밭 옆에 뽕나무를 심는다. 새들이 복숭아를 먹으려다 오디를 먹으러 가기 때문이다. 복숭아와 뽕나무, 복뽕 세트다.
미의회 도서관(Library of Congress)에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기증한 ’한국어 교재(Corean Manual)’가 있다.
https://archive.org/details/coreanmanualorph00scotrich/page/n1/mode/thumb
1893년도에 제임스 스코트(1850-1920)가 저술한 "한국어 문법 및 상용 회화집"은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가 펴낸 영한 사전에 이어 두 번째로 나왔다.
첫번째 한자 옆으로 4가지 발음 기호가 있다. 한글은 ‘부디스트 코리언(Buddhist Corean)’으로 분류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왜 ‘불교도 고려어’라고 했을까. 두번째는 재패니즈 소리와 세번째 상하이, 네번째는 '잉글리쉬'가 아니라 '코리언Corean'으로 돼 있다. 서양 사람들 입장에서 'English'가 아니라 왜 '고려어'라고 했을까? 세계 공영어인 영어를 당시에는 '고려어'라고 불렀나?
'부디스트 코리언'은 교재 151페이지를 보고 이해가 갔다. 한글은 ‘산스크리트 자음(Sanscrit Consonants)’이라고 표기했다. 동서양의 언어 뿌리라고 하는 '범어'가 변천을 거듭해 지금의 '한글'이 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서기 4세기부터 15세기, 19세기까지 '한글의 변형 과정'을 단계별로 기술해 글씨 쓸 때와 인쇄할 때 모양이 다른 것도 알 수 있었다.
동양철학자 ‘강상원 박사’가 뉴욕대에서 법화경 번역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옥스퍼드대에서 100년에 걸쳐 연구한 ‘산스크리트어 사전’을 보다가 우리나라 팔도 사투리가 자꾸 튀어 나와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범어는 유럽과 아시아의 부모가 되는 말인데 그 뿌리가 우리나라 사투리라는 것이다. 강상원 박사는 몇해전 병환으로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강의가 유튜브에 남아 있어 아쉬움을 덜 수 있다. 표준어를 만들어 놓고 사투리를 쓰면 조금 뒤쳐진 사람으로 보이는 풍토가 있는데 '로얄랭귀지'라는 역사를 알고 나면 팔도 사투리가 달리 보인다.
산삼이 발에 채이는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가장 유명한 뷰 포인트가 ‘블루릿지’이다. 우리말로 '푸른산등성'이 정도 된다. 블루릿지를 설명한 관광 안내에 옛날에 체로키 인디언들이 그곳을 'Sa-koh-na-gas'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라면 ‘사고나거스’로 들리며 사투리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https://blueridgemountainstravelguide.com/blue-ridge-mountains-of-north-carolina/
애팔래치아는 8개 주를 관통하니까 수많은 봉우리가 겹겹이 펼쳐져 있다. 주름이 많은 치마처럼 파도가 넘실대는 산맥 같고 푸른빛이 감돌아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데 산은 '초록색' 아니던가? 왜 '그린릿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체로키 부족이 '사고나거스'로 불렀던 이 산봉우리 인근에 “Lee Country”라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 ‘인디언 머리‘라고 하는 얼굴 모양의 거대한 바위가 체로키 유적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산길 도로 위에 지붕처럼 튀어나온 '인디언 얼굴'을 보면서 신라 때 이야기가 떠오른다.
서기 879년,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 놀러 나갔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져 길을 잃었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자 신하들이 ”좋은 일을 행해 이를 풀어야 한다”고 해서 인근에 절을 세우기로 했다. 그러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흩어지면서 동해의 용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그들은 왕의 덕을 칭송하며 춤을 추고 풍악을 연주했는데 일곱 아들중 한 명이 왕의 수레를 따라 서울로 들어와 정사를 도왔다. 그의 이름이 ‘처용(處容)’이다.
오늘날 처용은 가면을 쓰고 추는 '처용무'와 '처용가'로 전해지고 있는데 가면을 보면 얼굴빛이 짙은 구릿빛에 눈코입이 크고 우람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옛 사람들은 처용무를 추면 사방의 악귀가 물러나고 왜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봤다. 버선발을 사뿐거리며 긴 장삼을 안에서 밖으로 물러나라고 하듯 추는 모습이 고전 무용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사서에 의하면 개운포에 '사람 얼굴 모양'의 처용암이 있다고 하는데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에 있는 처용암이 있다. 대왕암처럼 바다에 암석이 올라와 있는 형태다. 체로키 인디언들은 사람 모양의 얼굴 바위에 대해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성씨 1위는 김씨(20%), 2위는 이씨(14%)이다. 리(李)는 복숭아 나무, 오얏리를 말한다. 도원의 결의, 무릉도원, 도화살, 도화꽃 할 때 ‘도’가 복숭아 표면에 잔뜩 난 털처럼 셀 수 없이 아주 많은 무리를 말한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도원의 결의를 다짐했는지 모른다. 연대 세브란스 병원의 주역인 ‘언더우드’도 리씨를 영어식으로 풀어쓴게 아닐까.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남부군을 이끈 장군이 '로버트 에드워드 리(Robert Edward Lee)'이다. 일명 '제너럴 리(General LEE)'로 '이장군' 쯤 되는데 리씨 지명과 리씨 학교, 리씨 회사명이 많아 흥미롭다. 동서 횡단 철도만큼 유명한 동서 고속도로 이름에도 있다.
인디언 머리가 있는 Lee country에서 동부와 서부를 잇는 메인 고속도로명이 ‘더 리 내셔날 하이웨이The Lee national highway’ 이다. 영어 선생 아들인 남편에게 ‘더 리 내셔날 하이웨이’를 번역하면 ‘리 제국 고속도로’ 아니냐고 물었더니 어의 상실한 표정이다. 미국 동부와 서부 남부 등에는 리 자치주가 무려 12개가 있다.
Lee County, Alabama / Lee County, Arkansas / Lee County, Florida / Lee County, Georgia / Lee County, Illinois / Lee County, Iowa / Lee County, Kentucky / Lee County, Mississippi / Lee County, North Carolina / Lee County, South Carolina / Lee County, Texas / Lee County, Virginia
‘리 내셔널 하이웨이’는 1920년대 초 생겼다고 하는데 2021년 리 하이웨이(Lee Hwy) 이름을 모두 변경했다.
Lee는 고속도로, 철도뿐 아니라 항만, 교각, 남북전쟁에 사용한 총 이름도 있다. 1,2차 세계 대전에 보급된 산탄총 이름은 '리 엔필드 넘버4(Lee Enfield No4)'이다. 태극마크를 단 버지니아 군인들이 리 이름을 단 탱크와 전차를 몰고 리 총을 쏴대며 리 폭탄을 투하하고 리 통신망을 썼다. 이노무 LEE 정체는 뭘까.
버지니아주 아래 왼쪽에 ‘테네시주’가 있는데 'Lee 대학'이 있다. 미시건과 플로리다 등에는 'Lee 초등학교'도 있다. 리(LEE)는 항만, 교각, 선박 등 중장기 기초 산업 전반에 깔려 있다. 화가 이중섭은 발가벗고 물가에 노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아들이 죽자 복숭아를 그린 그림을 관에 많이 넣어주며 슬픔을 삭혔다고 한다. 리씨는 이름 자체가 '복숭아 나무'를 뜻하기 때문에 그가 살던 고향에는 복숭아 꽃이 만발하고 더워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기며 복숭아를 끼고 살지 않았을까.
리 발음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일제가 만든 두음법칙으로 '이'를 고집할 이유는 없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리'로 발음했다면 미국의 '리'와 묘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영어의 리(LEE)가 어떤 뜻이 있는지 모르지만 복숭아를 단서로 세계에서 복숭아 생산지로 유명한 곳을 찾아보니 플로리다주 위에 있는 ‘조지아주’다. 그곳은 ‘복숭아 주’일 정도로 주 자체가 복숭아 천국이다.
그곳은 하루 평균 기온이 25도에 달해 미국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이다. 풍부한 일조량과 낮은 생활비, 야외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여행이나 유학, 워홀을 간다면 그곳이 어떨까 싶다. 그런데 우연은 나뭇가지가 뻗은 것처럼 다른 우연으로 접어 들었다. 미국의 언어 분포도 지도를 보면 버지니아주와 조지아주는 영어와 스페인어 다음으로 '한국어'가 3위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