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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쇼 Oct 09. 2023

미국 심마니와 고려인삼

#심마니 #인삼 #진생 #고려인삼 #애팔래치아 #미국 #버지니아 #역사

인삼과 닭백숙


어렸을 때 대기업 건설 회사에 다니던 외삼촌이 시골집 뒤 야트만한 언덕에 양계장을 만들었다. 닭 수백마리가 자기 몸체만한 철장에 갇혀 벽돌처럼 쌓였다. 돈이 떨어졌는지 음수 시설을 만들지 않아 외할머니와 나는 우물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 날랐다. 닭 들은 자기 몸체만한 뜬장에서 고개를 내밀고 살았다. 계란을 수거하는 일도 내 몫이었는데 금방 낳은 알에 코피같은 혈흔과 털이 묻어 있어 만지기 싫었다.


면연력이 떨어진 닭들은 매일 죽어 나갔다. 저녁밥 지을 무렵 가마솥에 삶아 낸 닭은 내게로 넘어와 풀 뽑듯 털을 잡아 당겼다. 물컹한 촉감과 비린내, 젖은 털이 손에 닿아 비위에 거슬렸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복날이 되니 익숙하게 삼계탕 끓일 준비를 했다. 목이 잘려나가고 털 하나 없이 연한 분홍색 맨살을 드러낸 생닭을 사서 마늘과 인삼과 황기를 넣고 끓였다. 아파트에서 에어컨도 없이 불을 때니 더운 열기와 냄새를 빼느라 애를 먹었다. 재료가 뭉개지도록 끓여 식구들을 먹이고 나면 더위를 맞이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아들이 집 근처 아이스링크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아이스하키 선수가 됐다. 어릴적 경험을 발휘해 인삼을 넣은 삼계탕을 끓여 몸 보신을 시켰다. 선수들 입에는 하나 같이 홍삼팩을 빨고, 홍삼정을 물고 있었다. 아들이 슬로바키아로 아이스하키를 배우러 갔을 때 그곳 외국 코치들에게 자연스럽게 홍삼을 선물했다. 동네 친한 언니가 외국인 사돈에게 선물을 의논할 때도 홍삼으로 결정했다. 남편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사람들도 손에 들린 것도 홍삼이었다. 전국민 홍삼으로 대동 단결이다. 중간이 없다.


1920년 2월 20일자 동아일보에 인삼은 


"인삼은 옛날부터 중국의 유일무이의 영약으로 성대하게 사용했고 세계 인삼의 소비지로 유명하다. 인삼종에는 일본 인삼과 미국 만주(米國滿洲) 인삼이 일반 한약으로 재배하는 것이고 조선산 소위 고려인삼은 일상 음료 증답용으로 부호대관 사이에 상비되는 것이다." 

 

한약재로 쓰이는 인삼은 '일본 인삼'과 '미국 만주 인삼'에서 재배한 것을 쓰고 조선의 '고려인삼'은 특별한 선물용으로 부호대관 사이에 주고 받았다는 것이다. 약재용과 선물용이 구분돼 '고려인삼'이 품질면에서 우수했던 것이다. 고려인삼은 7배나 높은 가격을 받아 부정한 상인들이 나타났다. 


일본이나 미국산을 고려인삼으로 속여 팔았다. 그런데 인삼을 재배한 미국 만주(米國滿洲)는 어딜 얘기하는 것일까. 한약재로 일본산과 미국산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지만 부호대관들이 주고 받은 선물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구나 싶다.


미국에서 수출한 '중국산 고려인삼'


마포의 한 연구소를 다닐때 였다. 중국 관광객을 실은 대형 버스들이 ’고려인삼‘ 건물 앞에 정차해 교통이 마비됐다. 민원을 해결하러 온 경찰차까지 갇혔다. 여행객들은 창문하나 없이 육덕진 인삼 그림이 그려진 건물로 빨려 들어갔다. 인삼덕에 우리나라 외화벌이가 쏠쏠하겠구나. 기특했다.


나는 종종 사실과 다르게 내 맘대로 생각하고 결론 내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외화벌이와 상관없는 곳이었다. 중국 관광객이 들어가는 건물은 중국인들이 운영하면서 중국산 제품을 파는 곳이었다. 자국민들이 쓴 돈을 자국 상인들이 회수해 가니 그들은 일 꾸미고 돈버는 재간이 남다르다.


2013년 동아일보에 기재된 기사에  경력 25년의 심마니 '토마스 셰퍼드'가 나온다. 그는 할아버지를 따라 미국 동부에 직선으로 뻗어 있는 2,400km의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산삼을 캤다. 동아일보 특파원이 그를 따라 산삼을 캐러 가는데 동행했다. 토마스는 3분도 안돼 심드렁하게 말했다.     


“여기 있네요”     


애팔래치아 산맥을 산행한지 5시간 동안 약 30개의 산삼을 캤다. 50년된 것, 40년 된 것을 줄줄이 캤다. 우리나라 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은 미국의 1만분의 1도 안된다.


웨스트 버지니아에 사는 어느 한인 부부가 애팔래치아 산맥 인근을 산책하다가 산삼을 발견하는 장면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는데,


"여기 보이시죠? 이게 산삼이예요. 빨간 앵두가 촘촘히 붙은 산삼꽃을 벌레가 먹고 있네요"


길가에서 발견한 산삼을 무심하게 알려주고 그대로 떠난다. 산책하다 볼 수 있는 미국 산맥의 위용이라니 장난해.

 

거상 임상옥과 캐나다 인삼


마포 “고려인삼” 건물에서 중국인들 손에 들려 나오는 '인삼'의 국적은 미국이다. 전세계 인삼 수출국 1위가 미국이며 90%를 중국이 소비한다.


산삼은 배수가 잘되고 햇빛 투과율이 낮아야 한다. 인삼밭에 시커먼 차양막이 비스듬히 세워진 이유다. 잎이 넓은 활엽수 아래서 자생하는 인삼은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참피나무와 같은 곳이 안성 맞춤이다. 단풍나무 하면 ’캐나다‘이고 참피나무하면 ’미국‘이다. 세계적인 인삼 농장이 캐나다 동부 온타리오와 북미에 있다. 


캐나다 인삼과 미국 인삼은 1700년대부터 프랑스 상인을 통해 중국에 수출됐다고 알려졌다. 어렸을 때 사극에서 봤던 거상 임상옥이 중국 상인들 앞에서 인삼을 태우며 그들을 굴복시키는 장면은 통쾌 했었다. 그당시 프랑스 상인들이 가져온 캐나다산과 미국산이 고려 인삼과 유통되고 있었다.

 

미국내 인삼 재배 지역

금산레인


동아일보 기사와 세계적인 인삼 대국답게 미국에는 ’진생 레인(Ginseng Ln)‘이 있다. 버지니아 '캘러웨이'와 '킹조지'에도 있고 노스캐롤라이나의 '엘킨'과 미네소타, 캘리포니아에도 있다. 버지니아와 웨스트 버지니아 경계에는 '진생 마운틴'이라는 산이 있고 뉴욕 북부에 있는 헤이든 주립공원에는 4.3km에 달하는 '진생 마운틴 길' 이라는 등산로가 있다. 영어의 '진생'은 한자로 '금삼(金蔘)'이다. 


왜 '금삼'이라고 했을까? 언제부터 도로명과 산 이름, 산책로 지명으로 '금산'을 사용했을까? 


흥미로운 점은 '고려'라는 도로명도 있다.   


1894년 8월13일자 프랑스 신문 <르 프티 파리지앵>에 실린 청일전쟁 개전 소식을 듣고 술렁거리는 서울 모습이 있다. 여러나라의 다양한 인종과 복장을 한눈에 그렸다. 8월17일에는 1만 2천 명의 일본군이 청나라를 공격한다. 삽화 그림 아래 제목은 ’코리아(Coree) 사건’이다.


프랑스 신문에 실린 '코리아 사건'


고려의 '려(麗)'자는 나라와 지역명으로 쓸 때는 '리'로 발음했다. '고려'가 아니라 '고리'이다. 그당시 사람들은 '고리'라고 발음해서 '코리아'가 된 게 아닐까 싶다. 프랑스 신문에 표기된 '코리(COREE)'에 착안해 인삼과 한 세트인 '고려길'도 있을까? 가정하에 찾아 보니 버지니아주와 그 밑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 'Coree 드라이브', 'Coree 트레일', 'Coree 웨이', 'Coree 로드', 'Coree 스트리트' 등 20군데가 넘는 '코리길'이 있다. 


미국의 인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국내 인삼 역사'를 서기 1,766년 미국이 독립정부를 구성하던 이전 시대로 끌어 올리고 싶어도 '인디언 역사'에 부딪히는 딜레마에 빠진다. 미국인들에게 인삼 재배를 전수해준 사람들은 인디언들일까. 그들은 인삼의 원산지를 5000년 전 '중국 동북부 산간지방'으로 보고 있다. 


서너번 중국 동북부 지역에 답사를 다녔지만 그곳에 사는 중국 아이들은 '산'을 TV로 배운다. 그정도로 산이 없는 벌판이어서 산삼이 자생할 환경을 갖춘 '산맥'을 찾기 어렵다. 대국의 학자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중국 동북부 지방을 가보면 그들나라에서 찾는게 합당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2미터 짜리 신라 인삼


신라시대 723년 04월 기사를 보면 당나라에 ‘인삼’을 보낸 기록이 있다. 799년 07월에는 무려 2미터짜리 인삼에 관한 기사도 있다. 농구선수 서장훈만한 높이의 인삼이라니 스타워즈의 깡통 로보트인 알투디투처럼 한국판 SF 소설에 인삼이 걸어다니며 활약하는 캐릭터로 만들어 볼 만하다.


고려 때 인삼은 '원나라, 명나라, 왜'에 보낸 기록이 나오고 조선시대에는 대마도, 일본에 쌀과 콩, 인삼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각국 사신들에게 인삼을 공물로 하사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거나 보양식 선물로 인삼을 떠올리는 것은 오래된 릴레이 유전자다.


인삼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휴대하기 간편하고 무게가 가벼워 독립운동 비용을 마련하는데 용이했다. 나라가 패망하던 24살의 이기환 청년은 경기도 개성부 송도면의 명망있는 자제이다. 집안이 고려인삼을 유통하는 거상이었는데 장개석과 손문이 설립한 황국군사학교에 입학해 의열단이 된다. 그는 인삼을 말린 ‘백삼’을 파는 사업을 하며 독립 자금을 댄다.


독립운동가 이기환

그는 나라가 패망하자 고향 개성을 떠나 지나支那 안동현安東縣으로 넘어간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4,857명에 대한 일제 감시 대상 인물들을 촬영해 신상 카드를 만들었다. 1920~1940년대에 일제 경찰이 제작한 감시 자료는 1980년대에 우리나라 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국사편찬위원회로 이관돼 등록문화재 제730호로 등재됐다. 그는 중절모를 쓴 반듯한 모습의 사진으로 남았다. 어디선가 인삼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미국 만주(米國滿洲)에서 인삼이 났다는 기사를 보면서 '만주' 지명을 찾으니 뉴올리언즈 위에 미시시피주 만추 법원과 텍사스에 만추로드, 샌안토니오, 알라스카까지 '만추'는 있었다. 배우 탕웨이와 현빈이 주연한 영화 '만추(晩秋)'는 늦가을을 뜻하는 한자다. 영어는 발음만으로 원 뜻을 알 수 없으니 일단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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